아수나로 약속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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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나로
2020-06-23
조회 7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한 사람이 된 다음에 바꾸라고요?

 



  활동을 하다보면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나중에 출세해서 더 쉽게 바꿔라.” 라거나 열심히 공부해서 능력 있는 사람/권력자가 된 다음에 바꾸는 게 낫다.” 같은 말인 것 같아요실제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고아닌 분도 있겠죠여러분은 그런 말을 들을 때어떻게 대처하시나요혹은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활동/운동이 우리가 보고 싶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 한다면그 활동의 한 방법으로 출세를 선택하면 성공하는 걸까요이 글에서는 갸우뚱거려지는 이 주제를 가지고 활동/운동은 어때야 하는지어떤 방식이어야 할지무엇을 향해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여러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성공-출세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대통령교과부 장관교육감저명한 교수.검사변호사정치인...등등을 떠올리셨나요? “출세해서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서 바꾸라고 할 때의 그 능력 있는 사람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거나 돈이 많은 사람이거나 뭔가 있어 보인다거나(학력이 높다거나어쨌든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사람이겠죠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주목받고그럴 듯해 보이고힘을 발휘하는 것처럼 보이지요그렇다면 그 높은 사람이 되어서올바른 정책을 만들고사회적 목소리를 내면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뚝딱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물론 그것도 하나의 방법일거예요!


   하지만 그런 방법이 성공할’ 가능성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쉽지 않답니다우선 지금 사회에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한 것부터가 그렇지요일단 학력이 좀 되어야 하는데그러려면 일단 입시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될거고요그 좋은 학력을 가지고도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고시라던가고시라던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질 필요가 있을거고요돈도 좀 모아야 할테고요한마디로 1%가 되어야 하는데1%1%만 들어가지보편적인 모든 사람이 1%가 될 수는 없잖아요무튼 그 1%가 되어사회적 지위를 얻고올바른 정책을 펴서그 정책을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만큼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개인은 약하지만 조직은 강하다


   이런 질문을 하실 분이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아무런 사회적 지위가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냐.” 이렇게 살펴보면 어떨까요만약 어떤 사람이 어렵게어렵게 그 자리에 올라가서(1%가 아니더라도 무튼 대충 출세해서성공한 사람이 되었어요그리고 세상을 바꿀 정책 혹은 말을 펼칠 정치적 권한(권력-사회적 지위)을 갖게 되었어요아마 그 사람은 개인으로서는 성공했을 수도 있어요하지만 그러한 정책이나 권한이 지속되는 것은 그 개인의 힘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에요뒷받침하는 여러 사람들조직이 함께 하는 것이지요만약 그 개인이 혼자 이루고 성취한 일들이 있을 때그 개인이 떠난다면 어떻게 될까요예상치 못한 사고(?)를 만나 여러 일들이 실패한다면만약 그 개인이 마음을 바꾸게 된다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이 사회에서 개인은 약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어떤 일이든 그 개인이 혼자 이뤄낼 수 있는 일은 거의 없고있다 하더라도 꺾이기 쉬운 것이라는 겁니다의지가 꺾일 수도 있고중간에 실패할 수도 있고시간도 오래 걸리고... 한 개인이 만약 떠나면그 일도 같이 사라지기도 하지요.  


   하지만 여러 사람이 모여서 함께 움직이는 공동체조직은 어떨까요우리가 얘기하는 운동은 어떨까요운동은 개인만큼 쉽게 망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물론 처음 시작하기는 힘들거예요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고얘기하고설득하는 작업이니까요그러나 그렇게 해서 어렵게어렵게 어떤 운동이 모이면시작되면사람들이 움직이면한번 만들어지면쉽게 사라지기 힘들어요. ‘개인이 아닌 개인들이 모인 집합체공동체조직은 상대적으로 단단하고큰 힘을 발휘하기도 합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결국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는 것은


   그럼에도 아직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을 것 같아요.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냐계란이 깨지기만 하는 거 아냐?” 계란으로 바위를 치기만 하면계란이 깨지겠죠하지만 수백개 수천개의 계란들이 바위를 통째로 흔든다면 어떨까요? 수많은 계란들이 힘을 모아서 바위에 달려든다면? 혹은 계란이 깨지더라도 부딪치는 데는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계란이 있었다는 흔적, 바위를 움직이려 한 용기를 남기는 것이니까요.


   실제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서, 잘못된 점을 바꾸겠다고 했어요. 그러나 현실을 봐도 이런 생각이야말로 참 '비현실적'인 꿈일 때가 많아요. 사실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소리를 하려면, 한 개인이 아무리 스스로를 아무리 강하게 만들려고 해도 계란일 뿐이라고 하는 게 맞을 거예요. 소위 서울대를 나왔다거나 공부를 많이 했다는 정치인들이 많지만, 그 사람들이 과연 자기 힘으로 세상을 더 좋게 바꾸고 있나요? 힘 없는 사람들을 대변하려는 정치인은 정치인들 안에서도 따돌림을 당할 때도 많죠. 좋은 사람이 교육감이 되었다고 해서 자기 혼자 힘으로 학교를 바꿀 수 있을까요? 이른바 '민주진보교육감'이라는 사람들이 교육감이 된 경우를 보아도, (애초에 그 사람이 교육감이 되는 과정도 그 사람 혼자의 힘이 아니지만) 그 사람들 혼자 힘으로 학생인권을 신장시키거나 하지 못해요. 교육계의 관료주의, 교장, 교사, 학부모들의 영향력, 의회의 견제, 교육부의 방침, 입시교육구조 등 여러 가지 것들 때문에 교육정책을 결코 마음대로 할 수가 없죠. 특히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수 사람들의 변화, 그리고 아래에서부터의 운동이 없다면 제대로 세상을 바꿀 수가 없어요.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조직된 사람들의 힘입니다. 68혁명여성들의 참정권 투쟁투표권 쟁취 투쟁 등등. 68혁명이 일어났을 때프랑스에서는 아주 보수적인, '드골' 정권이 자리를 잡고 있었지요그러나 시위가 계속되었고결국 드골 정권은 교육제도의 변화 등 사람들의 요구를 수용하게 됩니다지금 프랑스독일 등등 많은 유럽국가들의 복지정책이나 대학평준화 등 많은 부분이 그렇게 이루어졌다고 하지요많은 사람들이 요구하고 투쟁했기 때문에 그것이 정책에 반영되는 것입니다많은 사람들의 요구가 없다면 그 사람들을 위한 정책도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그냥 어느 날 갑자기 한 개인이 나타나 툭 하고 던져주는 선물’ 같은 것은 없습니다흔히 얘기하는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그 정치/정당을 지지하는 (대중)운동의 힘이 있어야 정치가 실질적으로 힘을 발휘하는 것이지요.


 

졸졸 따라오는 이왕이면을 넘자!


  “그래다 필요한 일이다하지만 그럼에도 이왕이면 출세하는 게...” 쉽게 놓을 수 없는 이 이왕이면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걸까요? ‘이왕이면’ 안에 전제되어 있는 욕망은 대체 뭘까요쉬운 길안정적인 길로 가려는 우리의 욕구가 아닐까요많은 사람들은 안정을 추구한다고 해요불편한 것보다 쉬운 것을 선택하고자 하지요. 물론 그것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 아닐까요?  ‘하나의’ 출세하는 길이 아닌 여러 가지 다양한 길이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출세해서 바꾸겠어!라고 말하기보다는 '아래에서부터' 변화를 만들어가기 위한 일을 해야 해요. 우리가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있고,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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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나로
2020-06-23
조회 7

청소년운동은 왜 ‘정치적’인가?


 “아수나로는 청소년인권단체인데 너무 정치적인 거 아니에요?”

가끔, 아주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때로는 같은 청소년에게, 때로는 비청소년(어른)에게, 때로는 다른 단체의 활동가에게, 때로는 그냥 오가는 시민에게 듣곤 합니다. ‘청소년’이니까 너무 정치적이면 안 된다는 건지, ‘인권단체’니까 너무 정치적이어선 안 된다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쪽이든 나는 "너무 정치적"이라거나, "정치적이면 안 된다"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아수나로는 정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모든 사회운동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는 정치로 만들어지고 꾸려진다.


 우리 사회에는 청소년들을 차별하고 억누르는 문화와 제도들이 널리, 그리고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학생 놈들이 공부나 해야지.”부터 시작해서, “너희는 아직 미성숙하니까.”라는 마법의 논리까지. 또한, 청소년이 학교에 있을 시간에 학교 밖을 돌아다니는 것이나, 아예 학교에 다니지 않는 것을 문제시 삼는 것, 청소년의 게임 이용을 제한하는 것 등, 단지 청소년이란 이유만으로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치부하고 권리를 제한하고 억압하는 것입니다. 아수나로는 이런 것들에 맞서 이러한 사회를 바꾸기 위해 활동합니다. 그런데, 사회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봅시다. 우리는 같이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회를 구성하고, 사회 체제를 만듭니다. 사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고민하고, 규칙을 세우는 등 사회의 기본적인 틀을 만들어서, 사회를 운영합니다. 우리가 태어났을 때는 대개 이미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대충 만들어져 있었겠지만, 그 사회 시스템은 계속 사람들에 의해 변화합니다. 사람들은 시스템을 만들고 없애고 바꾸면서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조율하고 결정하는 등 사회가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고, 그 속에서 살아갑니다.


 바로 이런 과정을 “정치”라고 합니다. 사회를 만들고 운영하는 과정, 사회적 문제에 대해 결정하는 과정이 바로 정치인 것입니다. 이런 정치를 통해서 사회의 법체계를 만들고 원칙과 방식을 정하는 등 기본적인 사회의 틀을 세웠고, 그 이후에도 정치를 통해서 사회를 운영해왔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정치는 없을 수가 없습니다. 사회는 정치를 통해서 만들어지고 꾸려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사회는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사회가 정치를 통해 만들어지고 꾸려지므로, 결론은 간단합니다. 정치를 통해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잘못된 것이 있다면, 그건 정치를 통해 만들어진 것일 테고, 그 사회를 운영하고 있는 여러 정치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것일 테니까요. 그렇기에 그런 잘못된 것을 없애고 고치고 바꾸는 것 역시 정치를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역사적 사례들을 살펴봐도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 오랫동안 남아있던 호주제 역시 여성운동 활동가들이 수많은 정치적 활동을 한 결과 폐지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당연히 여기는 지하철역 엘리베이터나 저상버스 같은 교통약자를 위한 시설도, 많은 장애인 활동가들이 정치적 활동을 해서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오랜 시간 이루어졌던 군사 독재 역시 민주화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활동을 통해 없앨 수 있었습니다. 1980년대에 이루어진 민주화 운동에서는 “대통령 직선제”(대통령을 사람들이 직접 투표해서 뽑는 제도)가 가장 큰 주장이었습니다. 대통령을 사람들이 직접 선출할 수 있도록 해서, 정치를 이미 권력을 가진 독재자들이 마음대로 하지 못하도록 하려 했던 것입니다. 이렇듯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것이 그 수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변화를 원한다 그렇기에 정치적이다


 정치는 사회의 결정 과정에 목소리를 내고 참여하고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억눌리던 사람들은 가장 먼저 ‘정치적 권리 보장’을 요구하곤 합니다. 과거 유럽, 미국, 그리고 한국에서도, 여성, 노동자, 흑인들 등이 ‘정치적 권리 보장’을 요구하는 운동을 했었습니다. 사회에서 차별받고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은 정치적 권리를 잘 보장받지 못합니다. 정치를 통해 무언가를 결정하고 사회를 꾸려가는 과정에서 따돌림 당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에 차별과 폭력 등의 문제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차별당하기 때문에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데도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되며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의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청소년이 계속해서 입시경쟁교육에 갇혀있는 것이나 통제와 감시의 대상으로 취급당하는 것, 기본적인 인권마저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모두 청소년이 정치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수나로는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보장’을 요구합니다. 청소년 당사자들이 이 사회의 운영에 참여할 수 있고, 참여해야지만 이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권리와 이익을 보장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지금보다 더욱 정치적인 존재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정치를 두려워하거나 더러운 것이라고 하고, “청소년은 비정치적이어야 한다.” 또는 "청소년은 정치적으로 중립이어야 한다."고 하는 건 이상한 생각입니다. 그러한 생각들로 인해 청소년들은 정치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사회의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칠 수단을 잃게 됩니다. 때문에 사회의 일부 구성원들을 정치에서 제외한다는 점에서 해당 생각들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생각입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선 정치적인 방법을 통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 청소년들은 정치 사이의 벽을 깨고 적극적으로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합니다. 청소년들은, 스스로 정치의 주인이 되기 위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적극적으로 이 사회에 청소년들의 인권을 이야기하고 만들어 나가는 정치를 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정치”라고 하면 대개 정당이나 선거, 국회 같은 것들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정치를 이야기 하다간, 그런 데 이용당하기 쉬울 거라고 지레짐작합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이 스스로의 인권을 주장하면서 거리에서 캠페인을 하고 시위를 하는 것도 모두 정치적이고, 청소년들이 자기 친구들과 사회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같이 활동하는 것, 학교에서 등교시간을 몇 시도 정할 때 의견을 내는 것, 인터넷에서 글을 올리고 댓글을 다는 것 등이 모두 정치적인 활동입니다. 작게라도 이 사회의 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소년의 정치는 어려운 것이,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청소년들의 삶 그 자체가 정치적인 것이며 그 시작은 청소년들의 손이 닿는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히 정당이나, 선거, 국회 같은 걸 꺼려할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닐까요? 그런 것들도 사회와 정치의 중요한 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일상적 영역의 정치를 벗어난 제도적 차원의, 우리 사회 전체에 영향을 끼치는 정치 또한 '일부 특별한' 사람들의 것이 아니며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됩니다. 때문에 아수나로는 정치적이기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아니, 아수나로는, 청소년은 정치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고, 정치적 성격을 가져야만 이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인권을 보장하고자 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습니다. 청소년의 목소리로 정치를 해야지만 이 사회를 조금 더 청소년의 인권을 보장하는 곳으로 바꿔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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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나로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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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취재, "청소년인권"을 더듬어보다


 많은 사람들이 다들 그 이름을 한 번씩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청소년인권". 특히 아수나로에서 활동을 하려고 하는 사람, 청소년운동을 하려고 하는 사람이라면 못 들어봤을 리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청소년인권"이 대체 뭔지 좀 자세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청소년인권"이란 어떤 건가? 이제부터 그 모습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1) 첫 인상


 청소년인권의 첫 인상으로 사람들은 "학생인권"을 가장 많이 꼽습니다. 학생인권이 청소년인권의 첫 인상이 되곤 하는 이유는, 첫째 청소년들 중에 80~90%가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기 때문이고, 둘째 학교에서 학생들의 인권을 그만큼 눈에 띄게 무시하고 침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두발복장규제, 체벌 등 직접적이고 몸에 확 와 닿는 폭력을 겪곤 합니다. 또한 학교 안에서의 여러 차별들, 기본적인 민주적 절차나 언론․표현의 자유를 무시당하는 일들, 그리고 보충수업 강요나 수업에 대한 불만 등, 자기가 인간답게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불합리하거나 불공평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 청소년인권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이 안에는 학생들 사이의 폭력이나 차별, 괴롭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첫 인상은, 이른바 "청소년보호주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16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밤12시 이후에는 온라인게임을 강제로 차단하는 '셧다운제' 같은 것, 청소년들은 밤10시 이후에 찜질방 출입을 금지하는 제도 같은 것들입니다. 넓게 보면 "이게 다 너희를 위한 것", "너희는 아직 어리니까"라고 말하면서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뜻대로 하려고 하는 것도 "청소년보호주의"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청소년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의 제도와 행동들이 청소년들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 청소년들을 과도하고 불합리하게 통제하기만 하는 것 같을 때, 불만을 느끼고 청소년인권을 만나게 되곤 합니다.


 세 번째로, 일하는 청소년들이 겪는 여러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 등의 모습에서 청소년인권의 첫 인상을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비교적 수가 적은 편인데, 왜냐하면 대한민국 법률상 만15세 미만은 정식으로 임금을 받으며 일을 할 수 없고 만15세 이상이여도 이것저것 제약이 있기 때문에 일하는 청소년들의 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청소년들은 법에서 정한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못 받고 일을 하거나, 안전하지 못한 일 등을 하거나, 반말․욕설을 들어가며 일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청소년들이 인권 문제를 직접 겪는 현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얼굴을 "청소년노동인권"이라고 부르곤 합니다.


(2) 좀 더 친해져보면…


 하지만, 청소년인권은 그리 단순하지 않고, 여러 얼굴들이 있습니다. 더 알아 가면 알아갈수록, 깊이 있는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학생인권의 모습과 좀 더 친해지며 깊이 사귀다보면, 교육제도의 문제가 드러납니다. 수업 방식, 교과서의 내용, 시험 같은 교육정책 하나하나를 학생의 인권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입니다. 또한 대학입시와 취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그저 시험만 보게 하고 경쟁시키고 줄 세우는 교육, 그리고 학교 서열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는 것도 청소년인권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실제로 UN아동권리위원회 등에서 한국의 경쟁적 교육환경이 인권 침해라고 지적했고, 청소년인권운동의 주된 과제 중 하나는 "입시폐지"입니다. 좀 더 청소년인권과 가까워진 많은 사람들은 결국엔 "학교"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의문에도 이르게 됩니다.


 청소년보호주의 역시 다채로운 모습이 있습니다. 예컨대, 청소년들에게 술․담배 판매를 금지하는 건 어떨까요? "건강에 나쁘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지만 청소년인권과 친해질수록,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보게 됩니다. 청소년에 버금가게, 또는 그보다 더 술․담배가 유해할 수 있는 환자들, 노인 등의 술․담배는 금지하지 않습니다. "건강에 나쁘니까" 외에 다른 기준이 있는 것이죠. 청소년은 미성숙하다거나, 청소년들은 어른들의 말을 들어야 하는 존재라는 등의 기준. 이처럼 사회적 차별과 권력 관계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청소년인권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그 표정을 잘 살펴봅시다. 그러면 책이나 영화를 심의해서 나이에 따라 못 보게 하는 제도에선 문화적 권리가 보일 것이고, 정치적 권리 등도 언뜻 보일 것입니다.


 청소년노동인권 역시 좀 더 그 안쪽을 살펴보면 청소년들의 돈과 생계 등에 관한 권리, 말하자면 경제적 권리에 연결됩니다. 청소년들은 돈을 벌 수 있는가? 청소년들이 부모․보호자․친권자와 무관하게 자신만의 돈을 갖고 쓸 수 있는 권리는 어떤가? 일하지 않고도 최소한으로 먹고 입고 싸고 자며 살 수 있는 권리는 사회에서 책임져야 하지 않나? 청소년노동인권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면, 거기에서 우리는 우리 사회의 복지제도라거나 가족 제도의 문제, 노동과 생계의 문제 같은 풍부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가족의 문제도 청소년들이 살면서 많이 겪는 청소년인권 문제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가족을 너무나 당연히 좋은 것, 지켜야 할 것으로 생각해서, 그 속의 인권 문제를 잘 눈치 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보호자․친권자들이 자식들에게 휘두를 수 있는 권력 ― 체벌, 감금,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일, 진로에 간섭하고 강제로 명령하는 일 등등 ― 은 작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게 청소년인권 문제라는 생각들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자식이 부모․보호자의 소유물이라는 식의 생각은 당연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이런 가족의 문제는 청소년인권의 수많은 다른 얼굴들과 연결되어 있는,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이는 주거권이나 경제적 권리, 독립적 생활에 대한 권리 등으로도 얘기해볼 수 있습니다. 아동수당, 학생수당, 생활보조금, 기본소득, 주택 정책 등등 여러 가지 '복지 정책'들도 머리카락처럼 무수히 많이 붙어 있습니다.


 이 모든 청소년인권의 다양한 얼굴들 중에서도, 특히 잘난 체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얼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정치적 권리입니다. 선거권은 만19세 피선거권은 만25세로 되어 있는 현재의 선거 연령 기준을 낮추자고 주장하거나, 청소년들의 정당 가입을 비롯한 정치적 활동을 하는 것을 비롯해 시위/집회 등에 참여하며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는 것 등을 금지하고 통제하는 제도와 문화에 대해 비판하고, 청소년들이 정치적 힘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는 얼굴입니다. 정치는 우리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지 결정하는 과정이고, 청소년들이 정치적 권리를 가지게 되면 다른 여러 청소년인권의 얼굴들에도 힘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적 권리의 얼굴은, 그렇게 잘난 체하는 얼굴입니다. 하지만 정치적 권리가 보장된다고 해서 다른 모든 권리들이 자동적으로 보장되는 것은 아니며, 정치적 권리 또한 다른 권리와 연결된 문제를 어느 정도 극복하지 못하면 이루어질 수 없는 권리란 것을 잊으면 안 될 것입니다.


(3) 청소년인권의 몸통


 물론 청소년인권에는 더 많은 얼굴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쟁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평화권이나, 지문날인 및 주민등록번호 제도 등등에 문제를 제기하는 정보인권, 빈곤․장애․성소수자․이주 등 많은 소수자 청소년들의 다양한 권리, 청소년들의 사랑할 권리 등 성적 자기결정권 같은 것들입니다. 그 많은 얼굴들은 여러분이 청소년인권에 대해 알아가고 친해져가는 과정에서 발견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청소년인권은 대체 무엇일까요? 우리는 청소년인권의 많은 얼굴들을 밝혀냈지만, 그 몸통에 대해서나 출생, 성장에 대해서는 아직 취재하지 못했습니다. 청소년인권의 여러 분야와 영역, 현장들이 청소년인권의 '얼굴'이라면, 청소년인권의 사회적․역사적인 배경과 의미는 그 '몸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 본격적으로 청소년인권이 태어난 시기는 보통 20세기(1900년대) 초중반 정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전부터도 청소년인권은 이미 그 모습을 슬쩍 슬쩍 보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것과 같은 '자본주의' 사회가 본격적으로 발달하던 18세기(1700년대)에 아동․청소년들이 공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던 모습들, 그리고 '학교'가 만들어지고 지금과 같은 '가족'이 생겨났던 역사 속에서 청소년인권 문제가 나타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근대에 들어서 사람들이 "아동"과 "청소년"을 구분하고 따로 취급하는 순간부터, "청소년인권"은 자연히 태어나게 되어 있었습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을 당시에 근대적인 학교가 세워지고 도시화,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청소년인권과 관련된 문제들이 나타났습니다. 때문에 일제시대 당시부터 청소년들은 학교에서의 체벌이나 폭력적․차별적인 교육 등에 대해 문제제기하고 저항했습니다. 이는 1980년대의 민주화운동 등을 거치며 계속 이어져온, 일종의 청소년인권운동이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청소년(이른바 "미성년자")의 위치를 결정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제도, 학교와 가족입니다. 청소년은 가족 아니면 학교, 그 둘 중 하나에나 둘 모두에 속해 있어야만 하는 존재인 것입니다. "가족과 학교를 통한 연령별 불평등과 계급 불평등의 제도화, 그리고 국가에 의한 체계적 통제는 아동기를 읽어내는 키워드이다."(배경내, 「근대 자본주의 사회와 아동 - 아동 인권의 완전한 실현을 위한 조건의 탐색」(2003))


 근대의 자본주의 사회는 청소년이 사회에 필요한 군인, 노동자 등으로 자라나고 통제를 받아들이게 하도록 합니다. 학교의 두발복장규제나 여러 시간에 대한 통제 등이 군대의 모습, 공장이나 통제적인 일터의 모습과 닮아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미성년자'들을 미성숙한 존재로 구분지음으로써 '성인'들은 성숙한 사람이라는 자격을 얻게 되고, 사회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약자인 다음 세대 ― 청소년들에 대해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을 가지게 됩니다. 이처럼 청소년들을 미성숙한 존재라고 규정하면서, 자유를 가지지 못하고 가족과 학교의 보호와 통제를 받아야 하는 사람들로 간주하는 사회야말로 청소년인권 문제가 일어나는 배경이자 원인이고 구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인권의 몸통은 아주 굵직합니다. 청소년인권 문제는 단지 어른들의 편견이나 세대 간 문화 차이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운영되어야 하는지, 학교(교육)는, 가족은 어때야 하는지, 성숙과 미성숙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인지, 청소년들은 어떤 사람으로 자라야 하는지, 우리 사회의 경제 구조 등은 어떠한지를 결정짓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청소년인권을 알아가고 친해진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 어떤 사회가 인간적이고 좋은 사회인지 생각하고 질문을 던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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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나로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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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이란

 

체벌이라는 단어는 '몸에 직접적·간접적으로 고통을 주는 모든 벌'을 총칭합니다. 체벌의 목적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자신의 사고를 상대에게 관철시키기 위해 행해지는 경우가 많죠. 체벌은 보통 상하가 뚜렷하게 구별되는 권위적인 관계에서 발생하므로, 사실상 모든 조직체계에서 보여 질 수 있습니다. 가령 가정에서 친권자가 자녀를 훈육하면서 고통을 주는 방식을 사용한다면 체벌이 됩니다. 군대에서도 마찬가지로 선임이 부하에게 이른바 교육적인 목적으로 고통을 주는 방식을 사용한다면 체벌이 되는 것이죠.

 

아수나로가 주목하는 것은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체벌입니다. 이러한 체벌은 '관습적인 권위관계에 있는 자(교사)가 훈육을 목적으로 자신의 보호(또는 교육) 하에 있는 아이들에게 의도적으로 신체적 고통을 주려는 일체의 시도1)'로 정의될 수 있습니다. 훈육이 의미하듯, 학교에서 발생하는 체벌은 학교나 교사가 학생에게 자신의 교육목적을 수용시키기 위해 직·간접적인 고통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죠. 그 '교육목적'은 주로 규칙이나 벌점 같은 수치화와 시각화가 가능한 도구로 나타나는 경우가 다수이며, 개인적인 일정 기준 이하를 달성한 학생들에게 가해지기도 하고(시험 점수가 낮다던가), 주관적인 기준에 근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체벌이 단지 신체를 때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리적 도구나 신체의 일부를 사용해 상대에게 고통을 가하는 직접적인 행위 말고도, 엎드려뻗쳐, 오리걸음, 운동장 뛰기, 머리 박기, 오래 서 있거나 무릎 꿇고 있기 등 직접적인 신체접촉을 하지 않으면서 고통을 주는 방법도 있죠. 보통 앞의 체벌을 직접체벌, 뒤의 체벌을 간접체벌이라고 합니다. 직접체벌은 직접적 접촉을 통해 고통을 주는 것이고, 간접체벌은 여러 방식의 행동제약으로 육체적인 피로감 혹은 고통을 주는 것이죠. 직접이든 간접이든, 중요한 것은 모두 어떠한 사고를 주입하기 위해 가해지는 체벌이라는 것입니다. 체벌을 금지하고 거부한다는 것은 직접체벌과 간접체벌을 모두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한국에서의 체벌

 

한국의 문화와 체벌은 깊은 관계로 엮어져 있습니다. 고려시대부터 한국의 문화는 중국에서 전래된 유교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고, 유교는 제자가 지식과 예법을 전수하는 스승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을 중요한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런 가르침에서 가장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교습법이 체벌이죠. 역사적으로 한국에서는 미성년을 교육하는 기관에서 학생들에게 체벌을 가했는데, 흔히 떠올리듯이 회초리로 손바닥이나 허벅지를 때리는 것 등입니다. 미술 교과서에 나오는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 중 '서당' 편이 그것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죠. 하지만 당시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객관적인 측면이 굉장히 강했습니다. 스스로 '순종' 하는 대상이 '훌륭한 스승' 이라면, 반대로 그 스승이 비상식적이고 비논리적인 탈선을 행하거나 제자에게 가한다면 즉시 그 관계를 청산할 수도 있었던 것이죠. 일종의 계약적인 관계에서 성립되는 자유로운 순종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관행은 적어도 근대화 시기 사립학교와 공립학교가 건설되고, 학생들이 근대적 교육을 받기 시작할 때 까지도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스승과 제자간의 관계가 자유로운 순종에서 체벌이 극대화된 무조건적인 복종으로 왜곡된 것은 일제시대를 거치고 난 후부터입니다. 이 시기는 학교 교과서에도 자세히 소개가 되어 있죠. 중일전쟁과 연이은 태평양전쟁을 개전시키면서 일제(일본제국)은 조선민족을 대상으로 한 전쟁동원이 절실하게 필요했고, 그래서 제 3차·제 4차 조선교육령으로 본격적인 황국신민화와 민족말살정책을 펼쳤다는 대목입니다. 그러면서 일제는 학생들에게 강제적인 궁성요배, 황국신민서사 암기, 신사참배, 창씨개명, 일본어 의무사용 등을 도입했다고 하죠. 교과서에서는 주로 이러한 정책들을 민족주의적인 관점에서 분석해 '조선민족의 치욕' 정도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이것은 '강제' 라는 점에서 한 인간에게 양심적인 충돌이 발생하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조치입니다. 당연히 자유롭게 내버려두어야 할 문제를 무분별하게 강요하는 것이니까요.

 

이러한 비상식적인 조치를 바른 말 없이 받아들이게 하려면 폭력이 동원된 방법이 가장 편하죠. 그래서 일제는 1930년 후반부터 조선의 학교에 근대적인 규율(체벌)방식이 가미된 군사문화를 도입하기 시작합니다. 보통 군사조직은 상명하달이 철저하게 이루어지고, 이유가 무엇이든 반드시 수용해야 하는 권위적인 문화가 발달되어 있죠. 일제는 이 문화를 학교에 접목시켜, 교육체계가 교육당국 - 교장 - 교사 - 학생의 철저한 계급적·일체적 제도를 지향하게끔 합니다. 교육문화를 병영화 한 것이죠. 이 관계 사이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할 권위적인 요소를 삽입시키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반인권적인 조치라도 광범위하게 허용했습니다. 이것은 모두 최종적으로, 학생의 통제를 통한 사상화(전체주의적)를 기하기 위한 것이었죠.

 

우리가 지금도 볼 수 있는 학내 체벌의 모습이 이 시기에 전부 생겼습니다. 가령 지각을 하면 단체로 얼차려를 받고, 교복의 단추가 단정하지 않다며 정문 앞에서 죽도로 맞거나, 아침조회에서 복창이 크지 않다고 남겨서 뜀뛰기를 한다거나, 두발검사 시 길이가 길다며 엎드려뻗쳐를 하는 것 등이죠.(참고로, 등교시각 엄수, 아침조회, 두발제한, 복장규제 등은 모두 당시 일본군의 병영문화에서 유래 된 것들입니다.) 이 시기에는 창씨개명을 하지 않거나 수업료를 내지 않은 학생에게 교사가 공개적으로 구타를 하기도 했습니다. 모두 ‘교육목적’을 이루어내기 위해 직·간접적인 고통을 주었던 것이죠.

 

해방이 되었음에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발생한 반공주의로 인해 여전히 남한에서는 국민의 일치단결을 목표로 한 전체주의적 문화가 우세했습니다. 일제시대에는 '황국을 위한 거국일치(擧國一致, 온 국민이 하나가 됨)'를 위해 전체주의가 강요되었다면, 한국전쟁 이후에는 '민주주의를 사수하고 공산당을 무찌르기 위해' 온 국민의 일사불란한 전체주의적 단합이 필요했던 것이죠. 모든 조직에 복종적 문화가 도입되었고, 학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면서 학교에는 가장 간단한 방법으로, 일제시대의 학교문화가 그대로 전해져 내려와 체벌이 행해졌죠. 이러한 체벌 문화는 군사독재정권이 집권하고 국가적인 병영화를 추진하게 되면서 그 수위가 더 심각해졌습니다.

이렇게 해서 지속된 체벌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래의 자료는 2009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전국단위로 실시한 ‘2008년 이후 중고등학생인권 실태조사’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체벌경험에 대한 응답 (중학생)


1주일 1회 이상

1달 1회 이상

1달 1회 미만

드물게 경험

경험없음

무응답

52.1%(342)

15.5%(102)

8.7%(57)

14.9%(98)

5.8%(38)

2.9%(19)


 

체벌경험에 대한 응답 (고등학생)


1주일 1회 이상

1달 1회 이상

1달 1회 미만

드물게 경험

경험없음

무응답

49.9%(681)

14.0%(191)

9.5%(130)

19.9%(272)

5.1%(70)

1.5%(20)


 

2008년 이후 체벌, 언어폭력 변화에 대한 응답 (중학생)


체벌강화

체벌약화

언어폭력강화

언어폭력약화

24.2%(159)

5.2%(34)

13.4%(88)

3.8%(25)

변화없음

모름

무응답

29.0%(190)

36.1%(237)

3.2%(21)


 

2008년 이후 체벌, 언어폭력 변화에 대한 응답 (고등학생)


체벌강화

체벌완화

언어폭력강화

언어폭력완화

20.1%(275)

4.9%(67)

13.8%(188)

3.3%(45)

변화없다

모름

무응답

34.9%(477)

34.5%(471)

1.6%(22)


 

 

 

체벌은 금지되어야 합니다

 

전인적이고 주체적인 교육을 해야 할 교육현장에서 폭력적인 방식이 동원된다는 것 자체가 야만적인 상황입니다. 민주적이고 인권적인 교육의 장으로, 학생에게 민주적 시민의 주체성을 알려주어야 할 학교에서 부당한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죠. 그것은 학생을 소통과 대화의 주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통제와 수정의 객체로 보는 시각을 기초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전 사회와 조직에서 금지되고 있는 추세인 체벌이, 단지 교육이라는 목적으로 학교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된다는 것 자체가 비상식적이죠. 사람 중에 맞아야 하는 사람은 없고, 교육은 인간의 폭행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의 학교 현장은 인간의 기본권 자체를 총체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실적으로도 교습법으로서의 체벌은 아무런 교육적인 효과가 없습니다. 많은 통계사실과 연구자료를 근거로, 각계의 전문가와 학자들은 체벌이 행위자가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하는 문제를 일시적으로 제한하거나 억제할 수는 있어도, 완벽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는 없다는 것을 입증합니다. 행동 수정의 방법으로서는 전혀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이죠. 오히려 체벌이 일상화되어 체벌 경험이 지속되면, 폭력을 정당화하여 또 다른 폭력이나 심리적 불안정(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PTSD)을 가져 올 수도 있다는 것이 정설이죠. 형사정책연구원 김은경 연구원은 "체벌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면 문제아의 낙인과정과 병행되면서 정작 교육적 지원이 필요한 문제학생들의 학교 적응력은 더욱 줄어들고, 오히려 그 대응전략으로서 비행적 행동 양식 및 공격성이 강화되는 역설적 상황이 나타난다." 고 말했습니다. 폭력이 재생산되는 악순환이 발생하는 것이죠.

 

체벌의 기준과 강도가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 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체벌이 가해지는 대다수의 경우, 사유와 목적이 명문화 된 자료가 아닌 교사의 감정적인 판단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교사가 기분이 좋으면 체벌이 없고, 기분이 나쁘면 사소한 이유로 체벌을 하는, 심각할 정도로 비상식적인 상황이 한국의 학교 현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죠. 특히 교실이나 학교의 '질서 유지' 명목으로 특정한 학생을 지목해 체벌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학생의 인격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불과한, 명백히 반인권적인 처사입니다. 자의적인 기준이 문제가 되는 중요한 지점은, 학생들의 행동이 수동적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것이죠. 무슨 상황에서든지 체벌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어떠한 행동을 막론하고 몸을 사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당한 비판이나 문제제기를 할 수 없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것이죠.

 

결국 체벌을 통해 배운다는 것은, 모든 분야에 대한 스스로의 사유가 아니라 무엇을 하거나/하지 않으면 맞기 때문에 한다/하지 않는다는 식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실질적인 수준에 대한 염려가 아닌 단순한 즉각적인 반응만을 유도하는 것이 체벌이라는 것이죠.

 

국제적으로 체벌은 금기되어 있습니다. 1948년에 발효된 세계인권선언의 제 5조는 ' 누구도 고문이나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모욕, 형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유엔고문방지위원회는 "교육적인 견지로 행해지는 체벌도 고문의 일종"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가 당사국으로 가입되어 있는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참고로 이 협약에서 정의하는 아동의 범위는 성인 연령에 진입하지 않은 만 18세 미만의 모든 사람입니다.) 은 제 28조 2항 '당사국은 학교 규율이 아동의 인간적 존엄성과 합치하고 이 협약에 부합하도록 운영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와 제 37조 '당사국은 다음의 사항을 보장해야 한다. - 가. 어떤 아동도 고문을 당하거나 잔혹하고 비인간적이거나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 ...'로 아동(학생)인권의 보장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체벌은 적극적으로 허용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은 제 12조 1항에 '모든 국민은 신체의 자유를 가진다. 누구든지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체포·구속·압수·수색 또는 심문을 받지 아니하며,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처벌·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초중등교육법 제 18조 4항은 '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의 장은「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 31조 7항은 '학교의 장은...지도를 하는 때에는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아니하는 훈육ㆍ훈계등의 방법으로 행하여야 한다.'는 모호한 조항을 남겨 두어 논란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헌법상 신체의 자유에 대한 구속(체벌) 은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제한할 수 있'다고 하고 있으므로, 헌법이 제시하는 어떠한 제한조건의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는 무효화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체벌금지와 교권과의 관계

 

체벌금지를 반대하는 보수세력이나 보수언론에서 제기하는 논리 중 하나에, 체벌을 금지하면 교권이 추락한다는 주장이 있죠. 그리고 '여교사 성희롱 사건' 등 최근에 보도되었던 여러 언론 기사들을 근거로 제시하며, 교권 실추가 현실화 되고 있다는 우려로 마무리하고는 합니다.(우선 문제의 '여교사 성희롱 사건' 의 동영상은 실질적인 체벌금지 조치가 발효되기 전인 2006년에 촬영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이 주장이 시민들이나 학생들에게 막연히 받아들여져 '체벌을 금지하면 교권이 추락해 학교가 엉망이 될 것이다.' 정도의 글이나 댓글이 많이 보이곤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이나 기사들은, '교권' 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모호하게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수업 중에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을 당해 교권이 침해받았다는 기사를 보면, 여기서 침해되었다는 교권이 교사의 인권과 교사의 권한 중 무엇이 침해되었다는 것인지를 알 수 없는 것이죠. 교권의 중의적 의미가 인권, 권한, 권리, 권위, 권력 등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그 요인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구분 없이 교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죠.

 

법적으로, 교권(敎權, Educational Authority) 은 교사로서 소유할 수 있는 권위나 권력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법에 기초해, 행정적으로는 교사가 학생을 교습할 수 있는 수업권으로 해석되죠. 일반적으로 권위나 권력은 타인에 대해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자격인 권한(權限, Authority) 이며, 교권은 여기에 포함됩니다. 즉, 교권은 교사가 가르칠 권한(수업권)으로서, 한 개인이 소유한 교사라는 자격성에 근거해 국가가 위임한 행정적 지위라는 것이죠. 어려운 말로 신탁(信託, Trust) 에 해당됩니다. 이 권한은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는 법률상의 이익인 권리(權利, Right) 와 구분되며, 권리에는 인권과 기본권이 대전제로 삽입됩니다. 여기서 교권은 교사의 지위에서 생기는 일차적인 권한에 불과하므로, 권리가 구별됩니다. 즉, 교권은 인권 혹은 기본권이 아니며, 학생의 기본권과 같은 선상에서 동등하게 논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체벌과 교권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는 점에서, 앞서 설명된 예시와 같은 권리와 권리의 충돌이라는 주장은 오류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법치주의에서, 권한의 발휘는 대상자의 인격권과 자유를 철저히 준수하는 선에서 행해져야 합니다. 권한이 기본권보다 우위에 있을 수는 없는 일이죠. 이것은 권한인 교권을 규제하는 상위법인 헌법과 교육기본법에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점들은, 교권을 수호하기 위한 명분으로 체벌금지를 반대한다는 논리는 근거가 없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프레임으로는, 교사가 학생에게 성적인 모욕을 받거나 폭행을 당했다는 것은 비등한 입장에서의 교권 실추가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의 기본권 침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체벌금지를 위한 제도들

 

90년대 중반까지는 체벌을 교육자의 정당행위로 파악하고, 사회에서 비난의 대상이 될 만큼 사회윤리를 벗어나지 않는(가령, 골절 등의 심각한 상해라거나) 한 사실상 전면적으로 허용되었습니다. 90년대 후반이 되면서, 학생인권의 보장이라는 개념으로 교육과 관련된 각종 법령에서 체벌금지와 관련된 조항들이 명문화되기 시작했죠. 위에서 예시로 한 초중등교육법시행령 제 31조도 1998년 3월 1일 신설되었으며, 교육기본법에서는 제 12조 1항 '학생을 포함한 학습자의 기본적 인권은 학교교육 또는 사회교육의 과정에서 존중되고 보호된다.'는 조항이 추가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조항의 추가는 명분상에 불과했고, 교육부는 실질적인 체벌금지에 대한 아무런 조치도 시행하지 않았죠.

 

1998년 1월 대통령 직속의 교육개혁위원회는 학생 인권의 신장을 위해 학내에서 학생 체벌을 금지하라는 권고를 교육부에 전달했습니다. 하지만 교육부는 대체 지도방법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장기적 검토를 하겠다는 입장만을 밝혔죠. 그러다가 1998년 10월 교육부는 각 일선 학교에 체벌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라는 공문을 발송합니다. 그러자 몇몇 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사의 체벌을 신고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체벌 전면 금지 조치를 비판하는 언론 및 사회 분위기로 결국 1999년 1월에 다시 ‘교육적 체벌’은 허용한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1999년 2월에는 국회에서 체벌의 이유와 교육적 불가피성을 사전 고지하는 조건을 두되, 체벌을 명시적으로 법제화하는 개정안이 의원입법 추진되었습니다. 이것은 체벌권을 법으로 보장하겠다는 의도였으며, 학부모단체․인권단체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여 결국 폐기되었습니다.

 

2002년 6월 교육부는 학교생활규정 예시안을 발표하면서 구체적인 체벌 규정을 마련했고, 여기서 벌점제가 도입되었습니다. 목적은 학내체벌을 억제하기 위해 벌점제를 대체제도로 운영한다는 것이었지만, 학내체벌은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벌점제가 새로운 학생 통제 제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면서 2002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체벌을 인권침해로 규정해 학교생활규정 예시안에 체벌금지 조치의 삽입을 권고하였습니다.

 

2003년에는 유엔 아동의 권리에 관한 협약 이행준수를 감독하고 파악하는 유엔아동권리위원회가 한국 정부에게 아동 체벌을 전면적으로 금지하라는 권고를 전달하였습니다. 아래는 2003년 유엔아동권리위원회 권고사항의 일부입니다.

 

 

38. 위원회는 체벌이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허용되고 있는데 큰 우려를 갖고 주목한다. 위원회는 체벌이 협약의 원칙과 조항에부합되지 않으며, 특히 아동의 존엄성을 심각하게 침해한다고 본다.(중략) 교육부의 지침이 학교에서의 체벌 사용과 관련된 결정을 개별학교당국에 위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정형태의 체벌이 수용 가능한 것임을 보여주며, 따라서 긍정적이고 비폭력적인 징계를 조성하려는 교육적 조치를 훼손하고 있다.

 

39. 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권고한다.
a) 가정, 학교 및 모든 여타 기관에서 체벌을 명백히 금지하도록 관련 법률과 규칙을 개정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이행하라.
b) 체벌에 관한 태도를 변화시키기 위해서 아동에 대한 학대의 부정적인 결과에 대해 공공교육 켐페인을 수행하라. 그리고 체벌에 대한 대안으로서 가정과 학교에서의 긍정적이고 비폭력적인 징계 형태를 조성하라.

 

 

2004년 교육부는 대법원의 판례에 근거해 '용인되지 않은 체벌'을 1. 체벌의 교육적 의미를 알리지 않은 채 교사의 성격․감정에서 비롯되거나 2. 공개적으로 체벌이나 모욕을 가하는 지도행위 3. 학생의 신체가 정신건강에 위험한 물건이나 교사의 신체를 이용해 부상의 위험성이 있는 부위를 때리거나 4. 학생의 성별, 연령, 개인적 사정에 따라 견디기 어려운 모욕감을 주는 행위 등으로 규정하였습니다.

 

2006년 학생인권법 제정운동, 2007년 광주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등에서 축적된 경험과 자료들을 기반으로,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는 각 지역에서 진보적인 교육감 후보들이 학생인권 보장의 법제화/제도화 추진을 공약으로 제시했고, 이들이 교육감으로 당선됨에 따라, 여러 법적 조치들의 제정이 행되었습니다.

 

2010년 7월 20일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교육청 산하의 모든 학교에서 체벌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현재 서울시 전 학교에서는 사실상 체벌이 금지되어 있지만, 아직도 상당한 서울시 내 학교에서 체벌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2010년 9월 17일 경기도의회에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어, 경기도 지역의 모든 학교에서 법적으로 체벌이 금지되었습니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제 6조 2항에 '학교에서 체벌은 금지된다'고 명시하고 있죠. 하지만 경기도교육청이 '시행 유보 기간'으로 설정한 2011년 3월이 지나 새 학기가 시작되었음에도, 여전히 상당한 일선 학교 현장에서 체벌이 행해지고 있다는 제보와 호소가 보이고 있습니다.

 

2010년 11월 8일 강원도교육청은 강원도교육청이 관할하는 일선 학교에 체벌금지 등을 골자로 한 '학교생활 규정 개정 기본안'을 통보했다고 밝혔습니다. 기본안은 두발자유를 포함해, 신체의 직접적 접촉을 통한 직접체벌과, 단체기합․욕설 등의 간접체벌을 모두 금지하는 형태로 공개되었죠. 또한 2011년 초부터 강원도 학생인권조례 제정 추진을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체벌에 대한 세계적인 추세

 

2006년 교육인적자원부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현재 체벌을 전면적으로 금지한 국가는 독일, 룩셈부르크, 스웨덴, 스페인, 영국, 오스트리아, 우루과이, 일본 중국, 프랑스, 호주입니다. 미국은 주마다 체벌을 금지하거나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고,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싱가포르 등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와 태국의 경우 체벌을 허용하고 있지만, 허용 기준이 매우 엄격합니다.

 

다음 자료는 교육인적자원부가 2002년 3월에 발표한 <세계 각국의 체벌 금지 현황> 의 일부입니다.

 


국가

현황

비고

독일

금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집단 벌 및 모든 체벌 불허.

룩셈부르크

금지

14세 미만의 어린이에게 의도적으로 상해를 입힌 자, 구타한 자, 음식을 주지 않거나 돌보지 않아 건강을 해치게 한 자, 폭력을 행사한 자는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백~5천프랑의 벌금.

스웨덴

금지

부모도 가정에서 체벌할 수 없음.

스페인

금지

어떠한 경우에도 아동의 품위를 손상하는 신체·정신적 벌 불허.

영국

금지

공립학교만 적용되던 체벌 금지가 1998년부터 사립학교까지 확대.

프랑스

금지

어떠한 체벌도 엄금(교원이 학생을 ‘너’라고 부르는 것도 안 됨).

호주

금지

체벌, 모욕적 비난, 집단 벌 금지.

우루과이

금지

체벌, 명예를 손상하는 벌 금지(규정을 위반한 교원은 정도에 따라 면직 처분).

일본

금지

육체에 고통을 주는 행위, 장시간 기립, 무릎꿇고 앉히기, 점심 굶기기 등 금지.

중국

금지

1999년부터 체벌하거나 신랄히 꾸짖지 못하도록 했음.

미국

제한적 허용

뉴욕과 캘리포니아 등 27개주 법으로 금지, 텍사스, 뉴햄프셔 등 13개 주 허용(잔인한 체벌 금지).

캐나다

제한적 허용

체벌을 교육의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 체벌한 경우 학생의 위반 행동과 체벌 경위를 기록 보관하고 장학사의 요구가 있으면 이를 언제든지 제출.

말레이시아

제한적 허용

여학생에겐 불허하며, 남학생에 대해 등나무 회초리로 가볍게 손을 매질하는 행위 등만 허용. 가벼운 위반 5회 이상, 무단 결석 1회, 일정 기간 이상 지각하는 학생에게 주로 엉덩이에 매질.

스리랑카

제한적 허용

장시간 세위 두거나 꿇어앉힐 수 없고, 머리를 잡아당기는 행위 금지.

싱가포르

제한적 허용

여학생 체벌과 집단체벌은 금하며, 학교장의 허락 아래 손바닥이나 옷 위 엉덩이에 가벼운 회초리로 매질. 학습 실패나 숙제를 안 한 경우의 체벌은 불허하며, 감정적 체벌도 안 됨. 체벌받는 학생의 이름과 학급, 체벌상황, 일시 등을 적고 체벌한 사람, 증인, 교장의 서명을 함께 기록. 학생의 부모에게 위반 내용과 체벌 사항을 즉시 알려야 함.

태국

허용

학교 규율 위반, 학생 본분 이탈 행위에 한해 제3자가 없는 닫힌 방 안에서 교사가 체벌. 학생의 후대퇴부 의복 위에 가하며, 표면이 매끄럽고 둥글며 직경 0.7cm 이하의 회초리로 6대 이내.


 

 

 

참고하기 좋은 자료들

 

▒ 정혜신 박사 "폭력 트라우마와 체벌 없는 교육" 강연 - 오마이 TV

1부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mov_pg.aspx?cntn_cd=ME000065495

2부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mov_pg.aspx?cntn_cd=ME000065496

 

[오마이뉴스] 머리 길다고 등교를 막아? 그곳에선 잘릴 수 있다

 

[참세상] 학생인권조례 시대, 교사의 소통 방식은?

 

[한겨레 21] 금태석 칼럼 : 사랑의 매도 폭력을 낳는다

 

[한겨레] 홍세화 칼럼 : 체벌 대신 자율성을

 

[경향신문] 간접체벌 허용하면서 체벌 없앨 순 없다

 

학생인권 문제에 대한 어떤 계산

 

 

 

각주

 

1) 김은경, 체벌의 실태와 영향에 관한 연구-학교 체벌을 중심으로-, 한국형사정책연구원,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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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나로
2020-06-23
조회 8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백과사전

(2016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10주년 기념 자료집 〈어설픈, 하지만 망하지 않은〉 수록




이 백과사전은 아수나로와 그 역사에 관련된 여러 개념들을 정리하고 소개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이 사전을 통해 아수나로의 운영과 활동과 역사에 관련해서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사용되는 개념들을 이해할 수 있길 바란다.


다만 분량과 역량의 문제상, ‘두발자유’ 등 아수나로의 주장이나 청소년인권의 내용을 다루는 내용들은 거의 넣지 못했으며, 또 다툼을 낳을 수 있는 다른 단체들에 관한 내용은 넣지 않았다. 이에 따라 최종적으로 싣기로 한 단어들은 총 40개이다.


각 항의 분류는 대략 다음과 같은 의미이다. 또한 하나의 항이 여러 개의 분류를 가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학생인권조례’는 실제로 존재하는 조례이므로 법에 속하면서, 특정한 하나의 법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만들려고 했거나 제정된 조례들을 통틀어서 학생의 인권을 개선하려는 조례들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용어이기도 하다. 또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기 위해서 중요한 활동들이 이루어졌으므로 운동으로도 분류된다.


▲ 기념일 : 달력상의 특별한 날짜. 사람들이 기억하고 기념하며 특별한 일을 하는 날.

▲ 도서 : 아수나로에서 만들거나 중요하게 참고한 책. 출간된 단행본이 아닌 문서도 여기에 포함시켰다.

▲ 법 : 법률이나 조례 등의 공식적인 법. 아수나로가 입법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운동에 주요하게 관련되었던 법들을 넣었다.

▲ 언론 : 정기적이거나 부정기적으로 간행된 언론들. 뉴스, 소식지, 매거진이나 잡지, 월간지 등. 주로 아수나로가 만들었거나 아수나로 활동에 관련이 깊은 것들을 모았다.

▲ 용어 : 아수나로에서 널리 쓰는 개념이면서 청소년운동 전반에서, 또는 일반적으로도 확장해서 쓰일 수 있는 개념들을 ‘용어’라는 이름으로 묶었다.

▲ 운영 : 아수나로의 운영이나 내부 사항에 관련된 항들.

▲ 기타 : 로고, 사무실 명칭 등 그 밖의 것들.






《1318 바이러스》(1318virus, 바이러스)

분류 : 언론


▶ 청소년 인터넷 언론. 2005년 창간되었다. 청소년에 관한 이슈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인터넷 언론이다.

▶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언론매체사업부에서 시작되었고, 2005년에 별도의 인터넷 언론으로 정식 창간한 매체이다. 한때 《민중의소리》에 통합되었다가 다시 분리되어 꾸준히 운영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청소년독립언론’, ‘1318세대를 위한 매거진’, ‘청소년대표언론’ 등 다양한 수식어를 달았다.

▶ 창간 이후, 각종 학내 시위 사건이나 청소년운동 소식들을 보도하면서 청소년운동에서 큰 역할을 했다. 《바이러스》가 없었다면 알려지지 않았을 사건들도 있다. 또한 청소년인권에 대한 칼럼 등도 꾸준히 실었다. 당시 인터넷 매체들 중 비교했을 때 상위권의 독자 수를 확보했던 적도 있다.

▶ 2008년, 《바이러스》에서 학원 탐방 연속 기획 기사로 학원 광고 내용의 기사들을 게재하고 여기에서 학생들에 대한 감시, 휴대전화 수거, 심야 학습 등도 비판 없이 긍정적으로 보도한 것에 대해 아수나로가 비판하는 의견서를 보냈던 적이 있다.

▶ 《저요, 할 말 있습니다》라는 책을 2007년 발간했다. 여기에는 바이러스에서 그동안 취재하고 전해온 청소년들의 이야기들을 더 살을 붙여서 담았다.




18세 선거권 (16·17세 선거권, 선거권 연령 인하, 선거권 제한 연령 완화)

분류 : 용어 | 운동


▶ ‘선거권 제한 연령’을 18세로 하자는 주장이나 운동. 혹은 16세나 17세, 그 밖의 나이를 기준으로 하자는 비슷한 주장들. 어쨌건 선거권을 제한하는 기준이 되는 연령을 낮추자는 것이다. ‘18세’부터가 청소년운동과 연관성이 있는데, 왜냐하면 만18세부터 보통 말하는 ‘10대’, ‘청소년’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 시민사회에서 이러한 주장이 등장한 것은 1990년대 후반이었고, 청소년운동에서는 2002년 대선 때 〈낮추자〉 모임에서 모의투표 행사 등을 연 것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 2004년 총선 때도 재차 18세 선거권을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 18세 선거권 주장의 주된 논거들은 다음과 같다. ① 대부분의 선진국 등은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이 18세이고 국제적으로도 아동의 기준을 18세로 하는 경우가 많다. ② 대한민국 법상 병역의 의무, 납세의 의무 등은 18세부터 진다. 또한 꼭 18세가 아니더라도 선거권 제한 연령 기준을 낮추자고 주장하는 것은 시민들의 정치 참여 확대와 청소년의 권익 대변을 목표로 내세운다. 만18세부터 고등학생이나 사회 통념 상의 청소년이 포함되기 때문에,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는 논리들이 운동의 논거로 많이 쓰였다.

▶ 실제로 18세 선거권을 반대하는 주요 논리가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정치에 개입하게 된다’이니, 첨예한 청소년인권 문제인 셈이다. 2016년 초에는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협상 과정에서 ‘18세 선거권, 하지만 고등학생(혹은 청소년)은 제외’라는 기묘한 안을 들고 나오기도 했다.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지 못하면 18세 선거권도 잡을 수 없는 셈이다.

▶ 한국의 선거권 제한 연령은 21세였다가 1960년 4.19 혁명 이후 20세로 바뀌었으며 2005년 19세가 되었다. 이는 〈열린우리당〉(현 〈민주당〉.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이 시민사회의 18세 선거권 요구에 따라 선거권 제한 연령을 18세로 하는 것을 당론으로 정했으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반대하자 두 당이 합의에 의해 19세로 절충하여 공직선거법을 개정한 결과이다.

▶ 1990년대 초반, 고등학생운동 조직인 〈고등학생 정치활동 쟁취를 위한 공동실천위원회〉는 선거권 제한 연령을 16세로 하자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 선거권 제한 연령이 20세일 당시 처음에는 대학생단체나 청년단체 등도 이 주장에 동참했으나, 선거권 제한 연령이 19세로 바뀐 뒤 특별히 함께하지는 않고 있다.

▶ 청소년운동의 참정권 운동은 2000년대 초반에는 18세 선거권을 많이 이야기하다가, 이후에는 언론·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그리고 실질적으로 결정에 참여할 권리 등 더 풍부하고 폭넓은 참정권을 함께 주장하는 쪽으로 변해왔다. 아수나로는 2012년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위한 원탁회의〉, 〈내놔라 운동본부〉 등의 청소년 참정권 운동을 하면서 선거권과 선거운동의 자유, 정당가입의 자유 등을 요구하는 헌법소원을 제기했었다.




《2008 청소년인권 선언》

분류 : 도서


▶ 2008년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만들어서 발표한 인권선언. 청소년인권의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 2008년, 세계인권선언 6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의 인권단체들은 2008 인권선언 운동을 전개한다. 이는 2008년 촛불집회와 신자유주의 등의 현실 속에서 한국의 현재 상황에 맞는 새로운 인권선언을 만들고 선언하자는 취지의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주가 되는 《2008 인권선언》 외에도 표현의 자유 선언, 장애인 선언 등 다양한 분야별 선언운동을 동시에 진행했는데 그 중 하나가 청소년인권 선언이었다.

▶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이 선언을 만들기 위해서 인권교육 현장이나 거리 등에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인권선언에 들어갔으면 하는 내용들을 나뭇잎 모양의 종이에 받았다. 여기에서 나온 내용과 표현들, 그리고 아수나로 등의 청소년활동가들이 제안한 내용들을 종합하여 《2008 청소년인권 선언》이 만들어졌다. 또한 나뭇잎으로 모은 말투를 살리기 위해 “~해!” 등 반말형을 취한 것도 특징이다.

▶ 2008년 시점에서 청소년운동이 청소년인권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던 대부분의 내용들이 망라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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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청소년활동가 선언》

분류 : 도서


▶ 2015년 1월 <청소년활동가마당>에서 발표한 선언. 23명의 청소년활동가들이 연명했다. 청소년운동의 목표와 정의와 의미, 청소년운동의 주체, 청소년운동의 특성 등을 정리한 문서이다.

▶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는 지속적으로 청소년활동가들이 모이는 자리를 열었다. 2010년 <청소년활동가대회 쳇(CHAT)>이 그 시초였으며, 2014년부터는 <청소년활동가마당>이 열렸다. 2015년 1월 <청소년활동가마당>은 두 번째였고, 이 자리에서는 대중조직에 대한 고민 나누기, 나이주의에 대한 토론, 그리고 청소년활동가 선언 토론 등이 이루어졌다.

▶ 《2015 청소년활동가 선언》은 <청소년활동가마당> 기획단이 초안을 써가서 이에 대해 참가한 청소년활동가들이 토론하고 동의하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

▶ 아수나로 기본원칙 등에 포함된 내용에서 더 구체화된 청소년운동에 대한 논의를 반영하고 있으며, 2010년대 청소년운동의 정체성과 자기 인식을 압축적으로 담고 있는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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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원칙

분류 : 운영


▶ 아수나로의 활동 방향과 기본 정신을 담고 있다. 회칙이 운영과 아수나로 활동을 하며 꼭 알고 있어야 할 사항들을 정해둔 것이라면, 기본원칙은 아수나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과 청소년운동에 대한 입장을 담은 자료이다.

▶ 2006년 8월에 최초로 승인된 기본원칙은 아수나로가 주장하는 청소년인권의 원칙과 청소년운동의 방식을 설명한 뒤, 아수나로가 주장하는 바 20개를 나열하는 형식이었다. 그 뒤 2011년 1월 제8회 총회에서 기본원칙을 새롭게 다시 만들 것이 제안되었고, 새로운 기본원칙은 2012년 1월 제10회 총회에서 통과되었다. 이 기본원칙은 아수나로의 취지와 아수나로가 다루는 청소년인권의 원칙, 아수나로가 바라는 변화, 아수나로가 하는 청소년인권운동의 방법론, 아수나로 운영의 원칙 등을 담고 있다.

▶ 뉴페 공부모임 때 인쇄해서 같이 읽어보곤 한다.

▶ 보통 아수나로에서 쓰는 여러 문서들과는 다르게 비교적 결연한 문체로 작성되어있는 편이라는 평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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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

분류 : 용어


▶ 꼰대는 청소년운동에서 나이주의적이고 청소년 차별적인 인식을 가진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다. 주로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많이 사용된다. 꼰대에 해당할 최소한의 조건은 나이주의적·나이차별적 관념을 가지고 있고, 청소년이나 연소자는 열등하거나 미성숙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노골적으로 가족주의·보호주의적 태도를 보이거나, 청소년 또는 연소자를 일방적으로 훈계하려는 경우 등도 해당한다.

▶ 꼰대는 본래 청소년들이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교사를 가리켜 쓰는 은어였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잔소리를 하거나 청소년들을 억압하는 사람들,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사람들을 흉볼 때 쓰던 말.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①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②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이라고 등재되어 있다.

▶ 페미니즘/여성주의에서 '마초'의 위상과 비슷한 점이 있다. 마초가 가부장주의적, 남성중심적 사고를 내면화한 사람이라면, 꼰대는 나이주의와 비청소년(연장자) 중심적, 장유유서 마인드를 내면화한 사람이다. 또한 진성 마초가 여성을 지극히 위하며 보호한다면, 진성 꼰대는 청소년을 사랑하며 지극히 위하고 보호한다.




나름아지트

분류 : 기타 | 운영


▶ 서울에 위치한 청소년운동 단체들의 사무실 내지 공용 공간. 〈청소년활동기상청 활기〉가 책임지고 운영하고 있으며, 2016년 초 기준으로 아수나로,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투명가방끈〉이 함께 쓰고 있다.

▶ 2010년 하반기에 만들어졌으며 처음에는 〈활기〉가 만든 것이 아니라 ‘아수나로의 서울 사무실’로서 만들어졌다. 초기에는 아수나로 서울지부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같이 쓰는 사무실이었다. 이후 시즌3로 이사하면서 활기에서 공간 마련 사업의 일환으로 운영을 책임지는 것으로 바뀌었다.

▶ 보증금은 인권홀씨상 상금과 사람들로부터 빌린 돈 등으로 처음에 마련했고, 빌린 돈 등은 책 인세와 아수나로가 모은 돈으로 갚았다. 이후 이사를 다니는 과정에서 2013년 〈활기〉가 <활기충전> 후원행사를 열어 모은 돈으로 보증금을 증액했다.

▶ 최초 계약 과정에서 의결을 하지 않은 채 계약을 먼저 한 절차상 하자가 있었고 이에 대해 제8회 총회에서 문제제기가 있어서 서울지부가 사과하고 계약을 진행한 회원이 탈퇴했다. 이로 인해 사무실 등 공간을 마련하려면 사전 논의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확실히 했다.

▶ 현재 나름아지트는 시즌3로, 시즌1은 영등포구 문래동, 시즌2는 당산동에 위치했다. 과거 가정에서의 폭력을 피해서 탈출한 청소년활동가를 잡으려고 친권자와 경찰 등이 쳐들어온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정확한 위치는 비공개.




나이주의 (연령주의)

분류 : 용어


▶ 나이에 따른 상하 위계 관념, 특정 나이에 따른 권력관계나 특정한 이미지를 강요하는 이데올로기 전반을 가리킨다.

▶ 청소년운동, 특히 아수나로는 나이주의를 연소자인 청소년에 대한 차별, 배제, 편견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주로 사용해왔고, 나이주의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청소년운동의 입장에서 주로 겪는 나이주의는 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평등하게 대하지 않고 함부로 하대를 하거나 얕보는 경우,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서툴거나 부족하거나 미성숙하거나 발랄할 것이라고 쉽사리 단정 짓는 것 등이 있다. 청소년운동은 곧 특정한 형태의 나이주의를 타파하는 운동이라고도 할 수 있다.

▶ 아수나로는 이에 따라 나이가 많다고 해서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하대하지 않으며, 친하고 안 친한 정도에 따라 반말과 존댓말을 구분하는 문화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언니”, “누나”, “형”, “오빠”와 같이 연령을 드러내는 호칭도 잘 쓰이지 않는 편이다.

▶ 나이주의는 나이에 따른 구분, 성년과 미성년의 상하관계, 학교, 취업, 결혼 등 현재 사회에서 생애주기에 대한 규범 전반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가령 학교제도나 퇴직제도나 노인연금 등은 나이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나이주의 자체가 사회재생산과 생활에 관련된 제도이자 문화를 가리키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 본래 나이주의, 연령주의의 영어 유래라고 할 수 있는 Ageism이라는 단어는 “고령자(노인) 차별”을 의미했다. 그 이후 페미니즘 등에서 더 풍부하게 해석되었다. 정희진은 나이주의(연령주의)에 관해서, “나는 연령주의를 우리 모두의 삶을 근본적으로 규율하고 있는 심각한 혹은 '결정적'인 사회적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연령주의는 두 가지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논의되고 있다).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이른바 '생애 주기'식의 연령주의와 나이가 차별의 근거가 되는 연소자/연장자 우선주의다.”

라고 정리하고 있다.

▶ 보호주의와 혼용되기도 하고 어떤 경우가 보호주의이고 어떤 경우가 나이주의인지 구별하기는 쉽지 않다. 일정 부분 겹치는 부분이나 서로에게 의존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 아수나로 안에서 과거 ‘운동사회 내 나이주의 깨기’ 운동 등을 해보려 했지만 아직 제대로 공론화한 적은 없다.




내부게시판

분류 : 운영


▶ 아수나로 활동회원들만 들어갈 수 있는 비밀스러운 온라인 게시판. ‘내부’게시판이라고 주소에 nebu가 들어간다.

▶ 하지만 막상 권한을 얻어 들어가 보면 ‘별 거 없다’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 내부에서만 공유되어야 할 회의록, 공금내역, 회원들의 연락처 정보 등 외부로 공개하기 어려운 내용들을 공유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2009년에 처음으로 필요성이 제기되어 2009년 여름 총회에서 결정된 이후 개설되었다.

▶ 2010년, 일제고사 반대 운동 때 언론사들이 카페에 공개해둔 아수나로 지부 회의기록 등을 복사해서 보도한 사건 이후로, 회의록에서 연대 단체에 관련된 사항, 학교 대응에 관한 사항 등은 내부게시판에만 게시하도록 주의한다.

▶ 2012년 내부게시판 내에 익명게시판이 생겼으나, 토론이나 의견 개진이 늘어나는 효과는 기대보다 미미했고, 인권침해 내용이 있는 게시물 등에 대한 통제가 불가능한 문제 때문에 현재는 글 게시를 막은 상태이다. 과거에 쓰인 글들은 남아 있다.

▶ 내부게시판에 연결된 위키도 있다. 위키에는 지부들의 활동회원들에 관한 정보들과 팀 구성원 정보, 그리고 매뉴얼들과 용어사전이 존재한다. 나름 이 사전의 밑바탕이다.

▶ 게로게론이 처음 만들어서 계속 담당을 맡고 있는데, 내부게시판 담당은 기술적 문제로 불가피하게 종신직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 10주년을 맞이하여 아수나로가 회원 체제 개편을 하게 되면 활동회원과 일반회원들이 함께 보고 쓸 수 있는 좀 더 개방적인 형태가 될 예정이다.




대학거부 (대학입시거부, 수능거부)

분류 : 용어 | 운동


▶ 대학 입시나 진학을 거부하는 것. 단지 대학을 가지 않거나 그만두는 것만이 아니라 교육제도, 대학, 사회구조 등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공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히고 대학에 가지 않거나 그만두는 경우를 말한다. 보통은 입시경쟁교육이나 학력·학벌차별, 학생인권침해, 시장화되고 불합리한 대학교육, 경제적·사회적 차별 등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갖고 이루어지는 일종의 불복종 행동이다. 그러나 꼭 공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히는 기회를 가지지 않았더라도, 나중에 가서 자신의 비진학이나 자퇴를 ‘대학거부’의 의미로 다시 명명하거나 새롭게 인식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유연하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다.

▶ 대학을 아예 진학하지 않은 것을 ‘입시거부’ 또는 ‘대학입시거부’, 대학을 다니다가 자퇴한 경우를 ‘대학거부’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입시거부는 주로 수능시험일에 거부선언을 하므로 과거에는 ‘수능거부’로 불렸다. 그러나 세세하게 나누기보다는 모두 합쳐서 ‘대학거부’ 또는 ‘대학입시거부’라고 부르는 편이다.

▶ 알려진 것으로는 2002년 〈전국중고등학생연합〉에서 활동하던 박고형준이 본인의 고3 수능시험일에 수능을 거부하고 1인시위를 한 것이 최초이다. 그 뒤 교육운동 단체들과 함께 2007년 허그루(당시 〈청소년 다함께〉 회원), 2008년 김남미(당시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회원) 등이 수능시험일에 거부선언을 해왔다.

▶ 2010년 김예슬이 고려대학교를 자퇴하면서 “나는 오늘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대자보를 붙여서, ‘대학을 그만두는’ 의미로서의 대학거부선언 사례를 만들었다.

▶ 80년대 고등학생운동에서 운동을 위해 대학진학을 하지 않고 바로 노동자가 되었던 경우들, 그리고 대안교육에서 입시를 벗어나서 대학진학을 하지 않은 경우들을 대학거부와 연관지어서 해석하려는 시도도 있다.

▶ 2011년 청소년활동가들이 제안하여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이 만들어졌고 집단적·기획적으로 대학거부 운동이 시작되었다. 2011년에는 당시 고3/19세 청소년들의 대학입시거부선언과 20대 이상의 대학거부선언이 함께 진행됐다. 이 운동으로 대학거부자들이 중심이 된 〈투명가방끈〉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지게 됐다.

▶ 수능시험이나 대학진학은 ‘의무’가 아닌 선택의 문제인데, 병역 문제처럼 ‘거부’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적절한지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러나 대학진학과 대졸 학력은 한국 사회에서 사실상 일종의 ‘정상 기준’으로 취급받고 있으며 대학을 진학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들은 차별을 받는다. 대학거부자들은 대학 진학과 학력·학벌에 대한 사회적 압력이 존재하는 이상 이를 온전히 선택이라고 할 수 없으며, ‘거부’라고 명명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또한 ‘거부’를 하기 위해 어떤 자격이나 능력이 필요한 것이 아니며, 입시와 대학으로부터 낙오되고 배제되는 사람들 - 대학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거부’라는 언어로 교육과 사회에서의 차별을 비판하고 바꾸며 다른 삶을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

▶ 2011년에 〈투명가방끈〉을 처음 제안한 사람들 중 다수가 아수나로 활동회원들이었고, 아수나로 활동회원인 청소년들 중 상당수가 대학거부를 선택한다. 그러나 아수나로 활동회원인 청소년들 중 역시 적지 않은 수가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 진학 자체는 각자의 처지와 진로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로,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칙은 없다. 다만 입시경쟁교육이나 차별에 반대하는 청소년운동의 성격상 대학거부에 친화적이기 쉽기 때문에 청소년운동을 하던 이들은 자연스레 대학거부에 대한 고민을 하곤 한다. 또 청소년운동이 지속성을 가지고 이어지기 위해서는 대학거부 운동이 대학입시로 대표되는 주류적인 생애 경로를 벗어난 삶의 모델과 연속된 운동을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 관련 도서로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다》, 《대학 거부, 그 후》가 있다. 김예슬이 쓴 《김예슬 선언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책도 있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ㅋㅋ》

분류 : 도서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기획하여 2009년 발간한 책. 메이데이 출판사에서 나왔다. 공현·김명진·김찬욱·무직인꿈틀이·바람 외 저. 청소년인권에 대해 각 주제별로 청소년인권운동이 주장하는 글을 써서 모아놓은 형태이다. 교육/학생인권/정치·노동·경제·보호주의/가족및친권·성, 이러한 주제 분류로 4부로 구성되어 있다.

▶ 아수나로에서 ‘아수나로 BOOK’이라는 기획을 하여 2008년에 자체 발간한 책이 시초였다. 아수나로 BOOK에는 주장 글들 외에 청소년운동 역사에 대한 개괄 등이 포함됐다. 이 책을 보고 출판사에서 발간을 제안해서 정식 출간까지 가게 됐다. 그리고 아수나로 BOOK의 글들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ㅋㅋ》의 글들이 약간 다르고 새로 쓰거나 고친 내용도 많다.

▶ 아수나로가 저자로 들어가야겠지만, 총회에서 이 책의 글들이 모두 아수나로 활동회원들이 토론하고 동의한 내용은 아니라는 문제제기가 있어서 개별 필자들의 이름을 쓰는 방식이 되었다. 또한 그러면서도 각각의 글들이 개인 작업이 아닌 공동 작업인 경우, 다른 활동회원이 많이 수정한 경우 등이 있어서 필자 이름을 글마다 표시하지는 않기로 했다.

▶ 이 책의 인세 덕분에 한동안 아수나로 재정이 유지될 수 있었다.

▶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 《인권, 교문을 넘다》와 연결하면 ‘멈추다’, ‘넘보다’, ‘넘다’의 3단계가 연속성이 있어 보여서 마치 시리즈 같다.

▶ 줄여서 “머피인”이라고도 불린다. 뒤에 “ㅋㅋ”까지가 정식 책 제목인데 누락되는 경우가 많다. ‘크크’라고 읽을지 ‘캬캬’라고 읽을지 ‘키읔키읔’이라고 읽을지 뭐라고 읽을지 몰라서

▶ 2012년 무렵부터 출판사 사정상 품절 상태이다.




비청소년 (어른)

분류 : 용어


▶ 청소년이 아닌 사람. ‘어른’.

▶ ‘미성년자’와 ‘성인’이라는 표현 자체가 성숙한 사람과 미성숙한 사람이라는 구도라서 차별적이고, ‘어른’이라는 표현에도 ‘성인’과 같은 의미, 또는 ‘시대의 어른’처럼 존경할 만한 권위자/인격자를 가리키는 어감이 있다. 이에 청소년 중심적으로 건조하게 정의한 것이 ‘비청소년’. 말 그대로 청소년운동에서 논하는 청소년이 아니라는 뜻.

▶ ‘장애인’, ‘비장애인’과 유사한 조어 방법이다.

▶ 줄여서 ‘비청’이라고도 한다.

▶ 자주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지만, 청소년활동가들이 ‘비청소년’이라고 부르는 것 자체를 낯설어 하고 놀라는 사람들도 많다.




수도권 중심주의 (서울 중심주의)

분류 : 용어 | 운영


▶ 여러 운영이나 활동이 서울 혹은 서울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현상. 이를 비판적으로 칭하는 용어다.

▶ 아수나로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하기 이전부터, 청소년운동이 소규모의 이슈파이팅 중심이고 그러다 보니 서울에서만 주로 활동이 벌어지고 주목을 받는다는 비판이 있었다. 특히 언론사 등이 서울에 몰려 있고 수도권이나 서울에서 일어나는 사건 위주로 보도가 되다보니 이런 현상이 심했다. 아수나로가 처음 만들 때부터 전국에 지역모임들을 만들고자 한 취지 역시 이러한 현상을 극복하고 청소년들이 가까운 지역에서부터 운동을 만들어나갈 수 있게 하자는 의미가 있었다.

▶ 한국 사회는 ‘서울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서울 집중 현상이 심하다. 언론만이 아니라 각종 자원들이 서울에 몰려 있다. 인구부터가 전체의 1/5이 서울, 1/2 정도가 수도권에 살 정도이고 교통, 문화시설 등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크다. 이러한 현상에 따라 청소년운동 입장에서도 공간을 빌리거나 다른 사회운동단체와 연대하려고 할 때면 서울과 비서울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 사이의 차이가 나게 된다.

▶ 대학들도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현상이 심하고, 특히 ‘인서울’ 대학들이 상위권 대학으로 인식되는 현실에서, 아수나로 회원 중에서도 대학 진학을 서울로 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활동을 이어가는 경우들이 생겼다.

▶ 아수나로 안에서도 서울에서 아수나로의 운동을 주도적으로 제안하고 진행할 때가 많다는 점, 연대체 활동 등도 대부분이 서울에서 이루어진다는 점, 그리고 대체로 서울지부에 있는 오랫동안 활동해온 회원들이 다른 지부 활동을 비판하거나 문제제기를 하는 일이 잦다는 점에서 수도권 중심주의 비판이 나오곤 했다. 꼭 아수나로가 아니더라도 각종 행사나 도움이 되는 활동 등이 서울에 많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 수도권 중심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전체 단위 회의를 꼭 서울에서 하지 않는다든지 총회를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한다든지 하는 의식적 노력을 하지만, 정부 기관이나 언론, 그밖의 자원들이 서울과 수도권에 편중된 현실이 계속되는 이상 한계가 있다. 반은 진담, 반은 농담으로 대학평준화와 행정수도 이전 등이 수도권 중심주의 극복의 방안으로 거론된다. 이제 세종시가 생겼으니까 좀 바뀔지도? 하지만 아수나로 세종지부가 아직 없다.




스펙이용제한

분류 : 운영 | 용어


▶ 아수나로 활동을 한 경력 등을 상급학교 입시 및 진학에 활용하는 것, 즉 소위 ‘스펙’으로 쓰는 것을 제한하는 규칙이다. 2010년 1월 제6회 총회를 통해 회칙에 포함되었다.

▶ 아수나로 활동회원들이 대학 입시에서 NGO전형 등에 아수나로 활동을 쓴 사례가 몇 번 있었고, 또 아수나로 활동을 사실 거의 하지 않은 사람도 자기가 아수나로에서 활동했다고 쓴 사례가 발견되어 논의가 시작됐다.

▶ 제한해야 한다는 측은 운동이 상급학교 진학의 수단이 되어선 안 되며, 우리는 입시경쟁 등에 반대하므로 더욱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회의적인 측은 기본적으로 문제의식엔 공감하지만 진학을 위해 활동을 한 게 아니라 활동을 열심히 해온 회원이 나중에 진학에 도움을 얻기 위해 쓰는 것 자체를 막을 순 없다는 의견이었다.

▶ 결국 사용하는 걸 완전히 막지는 않지만 되도록 그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또 상급학교 진학에 이용하려면 지부에서 사전에 동의를 구하는 절차를 두기로 했다. 또한 “아수나로 활동을 입시에 사용하는 것에 아수나로는 그 어떤 도움도 제공하지 않습니다.”라는 내용도 추가되었다.




《아수라장》

분류 : 언론 | 운영


▶ 아수나로에서 만든 온라인 블로그 소식지. 2011년 창간되어 2012년 12호, 그리고 2014년 1월에 2013년 결산호를 내고 《요즘것들》을 창간하기로 결정하면서 폐간되었다.

▶ 제목인 《아수라장》은 아수나로를 잘못 기억하고 말한 사례 중 ‘아수라장’에서 따왔다. 왁자지껄 떠들썩한 아수나로의 활동 상황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것이기도 하다.

▶ 후원회원과 활동회원들을 주된 독자로 상정하고 만들어서 내용에 대해서는 부담이 덜했으나 지부별로 활동소식을 정리해서 공유하는 것 등, 만드는 일이 결코 만만치는 않았다.

▶ 청소년인권 이슈에 대해 깊이 있게 칼럼으로 다루는 ‘인권뚝배기’ 등 읽을거리도 있었고 활동회원을 소개하는 ‘인간극장’이라는 동영상 코너, ‘십자말풀이’ 등 재미를 추구한 컨텐츠들도 있었다.




아이들 (우리 아이들)

분류 : 용어


▶ 일부 활동가들에겐 ‘지뢰’, 마음 속의 가드를 올리게 만드는 단어. 누군가가 청소년에 대해 보호주의적 태도를 보일 때 청소년을 가리키는 말로 자주 나오는 단어. 각종 주장의 편리한 핑계거리.

▶ 청소년을 가리키는 여러 단어가 있지만, 보호주의적인 태도가 강한 사람들은 십중팔구 ‘아이들’, 또는 더 심하게는 ‘우리 아이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아이들’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이 보호주의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은 유념해야 할 것.

▶ 엄밀히 말해 ‘아이’라는 단어 자체가 어원이나 의미상 차별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어른/아이’ 등의 어휘 관계에서 알 수 있듯이 ‘아이들’이란 표현은 주로 어른과 대비되어 청소년을 편하게 부를 때 쓰이고, 또 자신의 자식이나 자신의 자식처럼 여기는 상대를 부를 때도 “우리 아이”라는 호칭이 쓰인다. 특히 “우리 아이들”이라는 표현은 청소년 당사자는 쓰기 어려운 표현이라는 점에서 주체를 비청소년, 친권자로 한정한다는 비판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라고 하는 사람을 보면 경계심을 갖게 되는 것이다.

▶ 대표적인 사례로 2008년 촛불집회에서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피켓이 유행했던 것, 2014년 탈핵 관련 행사에서 “아이들에게 핵없는 세상을 - 내가 먹는 음식, 내 아이가 뛰어노는 이 땅, 우리가 눈을 감는다고 안전할까요?” 같은 홍보 문구가 쓰였던 것 등이 있다. 그리고 각종 선거에서도 후보들은 ‘아이들을 위해’ 뽑아달라고 하고, 연금 개혁 문제를 논할 때도 정부와 노조가 각각 ‘아이들’을 이유로 삼기도 했다. 뭐든 ‘우리 아이들을 위해’라고 하면 착하고 훌륭하고 공익적인 일처럼 보이는 것은 청소년보호주의의 폐해이다. 아수나로는 소위 탈핵운동 등과 이런 문제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아짱

분류 : 기타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로고를 가리키는 애칭. 2010년 제6회 총회에서 채택된 아수나로 로고는 ASUNARO 중 A를 사람 모양으로 형상화했다. 이에 따라 이 로고를 의인화하는 시도들이 있었고 여러 결과 ‘아짱’이 정착되었다. 이는 로고가 치마를 입은 사람처럼 보이기에 여성으로 생각되고 제작자도 여성 청소년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했다고 말했기에, 일본어에서 나이가 적은 여성을 부르는 애칭인 ‘쨩’이 붙어서 아짱으로 굳어졌다는 것이 정설.

▶ 한편, 일본 아이돌그룹 퍼퓸에 애칭이 “아짱”인 멤버가 있어서, 퍼퓸 팬인 모 활동회원의 획책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 아짱 로고가 세로로 너무 길어서 로고로 디자인에 활용하기에 불편하다는 의견이 있다.

▶ 아짱은 다 좋은데 혼자 서있는 게 외로워 보인다는 지적이 있어서 여럿이 함께하는 조직적 운동을 표현하기 위해 아짱을 복제해서 여럿을 세워두기도 한다. 클론 아짱?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병역거부)

분류 : 용어 | 운동


▶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종교나 사상, 신념 등을 이유로 군사활동 또는 총 등의 전쟁무기를 이용하는 것을 거부하는 행위를 말한다. 거부 사유에 따라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 종교에 따른 병역거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대한민국에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하게 되면, 보통 징역 1년 6개월의 형을 선고받게 된다.

▶ 유엔자유권위원회는 국제인권협약상 '양심의 자유'에서 병역거부권이 도출된다고 공식 해석을 내놓았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에도 병역거부자에 대한 처벌을 중단하라고 반복해서 권고하고 있다.

▶ 평화운동 단체 등에서는 '양심의 자유' 뿐만 아니라 평화권 또는 평화적생존권의 차원에서도 병역거부를 바라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 병역은 남성 청소년들 다수가 청소년기를 벗어나자마자 바로 마주하게 되는 삶의 문제이다. 그래서 여러 청소년활동가들도 병역 문제로 고민을 했다. 아수나로 회원들 중에 병역 사항은 다양한데, 병역 대상자 중에는 군복무를 한 사람들이 다수이며, 아수나로 회원이었던 사람 중 병역거부를 한 사람은 공현과 아리랑이 있다. 청소년운동 출신이거나 청소년운동 관련자로 병역거부를 한 사람으로는 박정훈(2000년대 초중반 부산에서 청소년운동), 강의석(고등학교에서 종교자유운동), 홍원석(〈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활동), 김경묵(2000년대 초중반 부산에서 청소년운동 / 현재 영화감독) 등이 있다. 청소년운동을 했던 사람이 병역거부 이유로 오스트레일리아로 난민신청을 하고 망명을 한 일도 있다.




어린이날

분류 : 기념일 | 운동


▶ 어린이·아동을 위한 기념일. 한국에서는 5월 5일, 국제어린이날은 6월 1일, 세계어린이날(유엔아동권리협약 등이 만들어진 날)은 11월 20일이다.

▶ 한국의 어린이날은 1920년대 일제식민지 시기 소년운동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때 ‘어린이날 운동’은 어린이를 존중하고 인권을 보호하고 경제적 윤리적 억압 등으로부터 해방하라는 취지의 운동이었다. 그래서 《어린이날 선언》 등을 보면 “존댓말을 써달라”, “인격적으로 대우하라”, “즐겁게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라” 등 지금 봐도 익숙한 요구들이 있다. 100년이 지났는데도 똑같은 요구를 하고 있는 안습 상황. 처음에는 〈천도교소년회〉 창립일이면서 국제적인 노동절 행사와도 맞물리는 5월 1일로 정해졌다가 여러 과정을 거쳐 광복 후에는 5월 5일로 공식 지정됐다.

▶ 현재로서는 운동적 의미가 퇴색하고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거나 각종 행사가 열리는 기념일 정도로의미가 바뀌어 있기에 청소년운동에서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그러나 2011년 〈혁명적육식주의자동맹〉과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어린이날 기념 토론회 ‘당신들의 어린이날’을 열면서 어린이날의 운동적인 유래를 논의하고 실천 방안을 모색했다. 이후 2015년 어린이날에는 아수나로에서 ‘학습시간 줄이기’ 요구 전국 동시 퍼포먼스로 “5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공부한다”를 기획했다. 거리에서 책상에 앉아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교과서와 참고서를 놓고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퍼포먼스였다.

▶ 어린이날 거리에서는 학생인권조례도 그렇고 학습시간 줄이기도 그렇고 뭔가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거라고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서명이나 캠페인에 좀 더 잘 참여해준다는 경험담이 있다.




《오늘의 교육》

분류 : 언론


▶ 〈교육공동체 벗〉에서 발간하는 격월간지. 교육 전문 비평지이다.

▶ 〈교육공동체 벗〉은 출판사 겸 단체인데 교육·지식협동조합을 표방하고 있다. 과거 《우리교육》을 만들던 사람들이 《우리교육》에서 경영과 구조조정 등의 문제로 나와서 새롭게 만든 것이 〈교육공동체 벗〉이고, 《우리교육》에서의 경험을 반면교사 삼아서 주식회사가 아닌 협동조합 형태로 만든 것. 조합원이 있고 출자금을 내며 조합원으로서 권리를 가지는 등 협동조합의 모델을 가져오긴 했는데, 법적인 의미의 협동조합은 아니다.

▶ 2011년에 창간준비호와 창간호가 발간되었고 2016년 9월 34호가 발간되었다.

▶ 《오늘의 교육》은 ‘교육불가능’, ‘학교민주주의’, ‘교육의 생태적 전환’ 등의 주제들을 집중적으로 다루어왔고, 현재 교육 관련 전문 매체 중에서 청소년운동의 논의를 가장 자주 게재하는 매체이기도 하다. 학생인권에 관련된 글이나 학내 투쟁 에세이, ‘학교폭력’에 관련된 글, 또는 청소년운동 자체에 대한 글들이 실려 있는 것을 찾아볼 수 있다. 34호 특집 주제는 ‘나이주의를 넘어서’로 나이주의와 청소년보호주의, 청소년혐오 등에 대한 글들이 실렸다. 아수나로 활동회원들이 벗 조합원인 경우도 있고, 아수나로 활동회원인 공현이 편집위원, 편집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오답 승리의 희망》

분류 : 언론


▶ 청소년자유언론. 〈청소년인권모임 나르샤〉(구 〈전북청소년인권모임〉)에서 발간했으며 〈나르샤〉가 사라진 뒤에도 한동안 만들어졌다. 발간 주기는 초기에는 1년에 2회였으나 점점 비정기적으로 나오면서 무크지처럼 되었다.

▶ 2006년 초에 창간호가 나왔고 2013년 15호를 끝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휴간호를 낼 계획이었으나 무기한 연기되는 중.

▶ 8호까지는 8면 종이신문 형태였고 9호부터는 제본된 책자 형태로 발간된다.

▶ 청소년들의 ‘언론의 자유’를 표방하며 만들어졌으며 기획 기사나 취재보다는 자유롭게 쓴 글들, 기고 등을 모아서 나왔다. 주장, 에세이, 리뷰 등이 많이 실리는 편이었다.

▶ 줄여서 ‘오승희’라고도 부르는데, 이 때문에 오승희가 대체 누구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 이현 작가가 쓴 청소년 단편소설 《오답 승리의 희망》의 모티브이자 소재가 되기도 했다.




《요즘것들》

분류 : 언론


▶ 아수나로에서 발간하는 청소년신문.

▶ 2014년 3월 창간준비호를 냈고 6월에 창간호를 냈으며 그 이후 약 2개월 ~ 3개월을 발간 주기로 하여 2016년 3월에 제9호를 발간했다. 5호까지는 타블로이드 절반 규격으로 4면으로 냈으나, 6호부터는 8면으로 내고 있고 광고도 싣고 있다.

▶ 청소년운동의 소식과 이야기를 전하는 언론을 만들자는 기획이 오랜 시간을 들여 실현된 결과물이며, 《청소년의 눈으로》 중지 이후 약 6년만의 일이다. 그 사이에 온라인 소식지인 《아수라장》이 있긴 했지만. 2011년 무렵에 아수나로에서 언론을 만들 수 있을지 검토하고 준비하는 팀을 두었고 이 팀에서 인터넷언론과 인쇄형 언론 등을 다양하게 조사했었으나 결국 재정적으로나 역량상으로나 무리라고 결정했던 적이 있다. 2014년에는 재정과 역량이 확대되어 비록 월간지 같은 형태는 아니더라도 청소년들에게 일정한 시기마다 배포할 신문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하여 만들기로 했다. 무리해서라도 종이신문으로 내자고 한 것은 청소년들이 찾아와서 읽는 형태가 아니라 우리가 직접 청소년들에게 찾아갈 수 있는 매체를 만들자는 취지이다.

▶ 발간 시즌에 맞춰서 청소년들의 현실을 심층적으로 다루는 특집기사들과 운동 관련 소식, 청소년들의 삶에 관련된 소식들인 ‘청소년24시’, 칼럼 ‘청소년의 눈으로’와 에세이 ‘극한직업 청소년’, 리뷰 등으로 구성된다.

▶ 2014년과 2015년, 〈아름다운재단〉의 자발적 청소년 사회문화활동 배분을 2회 받아서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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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

분류 : 도서


▶ 배경내(당시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이후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인권교육센터 들〉 등의 활동가. 〈인권교육센터 들〉은 〈인권운동사랑방〉의 교육실이 분리된 것이다.)의 저서. 긴 시간 동안, 아수나로 활동가들을 포함해서 학생인권에 관해 공부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던 책. 지금도 그 의미는 퇴색하지 않았다. 2000년에 〈우리교육〉에서 ‘청소년REPORT’ 시리즈 두 번째로 발간되었다.

▶ 배경내의 1998년 교육학 논문인 《학생 인권 침해에 관한 연구 : 고등학교를 중심으로》를 바탕으로 각색, 편집하여 쓰인 책이다. 당시 학생인권 문제에 대해 사례와 분석을 가장 충실하고 깊이 있게 행한 연구 작업이었다.

▶ 고등학생들의 인터뷰를 통해서 학생인권 현실이 어떠한지를 고발하고, 학생인권침해가 왜 반복되고 어떻게 일어나는지, 학교의 구조와 문화가 어떠한지 등을 분석하고 있는 내용이다.

▶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ㅋㅋ》, 《인권, 교문을 넘다》와 연결하면 ‘멈추다’, ‘넘보다’, ‘넘다’의 3단계가 연속성이 있어 보여서 시리즈 같은 느낌을 준다.

▶ 출판사의 사정으로 절판된 상태다.




《인권, 교문을 넘다》

분류 : 도서


▶ 학생인권을 주제로 심층적으로 다룬 책이다. 〈인권교육센터 들〉 기획, 공현·박민진·오혜원·정주연·조영선·배경내 저. 공현은 아수나로 활동회원이자 〈인권교육센터 들〉 회원이며, 다른 저자들도 〈들〉의 상임활동가이거나 회원. 〈한겨레에듀〉에서 2011년에 발간되었다.

▶ 부제가 “학생인권 쟁점 탐구”이다. 그 부제대로 ‘학생인권은 이런 것이다’ 하는 소개 수준을 넘어서 학생인권의 원칙과 실제 학생인권의 쟁점들을 다룬다. 학생인권, 더 나아가서 청소년인권에 대한 관점을 익히기에 좋은 책이다.

▶ 서문격인 1부를 제외하고, 2부는 두발규제와 체벌, 양심의 자유 침해, 휴대전화 규제, 교복 및 복장규제, 강제보충자습, 집회의 자유 침해, 연애 탄압 등 학생인권의 내용들에 대해 다루고, 3부는 미성숙, 보호, 교권, 규칙, 가족 및 부모, 학교 안 차별 등 학생인권 또는 청소년인권을 보는 일반적 관점의 문제들을 다룬다.

▶ 경기도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학생인권에 대한 오해나 왜곡이 증가하고, 학생인권의 내용과 주장에 대한 정리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기획되었다. 2010년 〈들〉이 두발규제, 복장규제, 체벌 등 각 학생인권 주제별로 청소년활동가들이 참여하는 연속 워크숍을 진행했고 이 워크숍을 통해 발굴한 논리와 의견들을 반영하여 쓰였다.

▶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2부 각 장 끝부분마다 ‘토론해봅시다’ 같은 내용의 사례와 질문이 들어 있다. 집회의 자유에 관해 다룬 장 끝에는 선거권 제한 연령 문제에 대한 질문이 붙어 있는 식.

▶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 이후 10여 년 만에 만들어져서 “교문을 넘다”라고 선언한 점에서 그간의 변화를 살필 수 있다. 또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 인권을 넘보다ㅋㅋ》와도 연결하면 ‘멈추다’, ‘넘보다’, ‘넘다’의 3단계가 연속성이 있어 보여서 시리즈 같은 느낌을 준다.

▶ ‘인교넘’, ‘넘다’ 등의 줄임말로 불리곤 한다.




재정독립성 원칙

분류 : 용어 | 운동


▶ 아수나로의 재정 운영에 관해, 재정의 독립성을 지킨다는 원칙을 가리킨다. 구체적으로는 기업(자본), 정부(국가) 등의 보조금, 지원금에 의존하지 않고 소액의 개인 후원인들과 자체적인 수입에 의해서 독립적으로 단체의 재정을 운영하는 것이다.

▶ 그 취지는 특정 권력에 대해 재정적으로 종속되어서 활동이 위축되거나 눈치를 보게 되는 등의 위험을 경계하고자 만들어진 것이다. 다만 기업, 정부로부터 나온 돈을 전혀 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되지는 않고 있다. 활동을 할 때 정부 등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등 제약이 생길 염려를 없애고, 지원금이 끊긴다고 해서 단체 활동이 어려워지는 수준으로 의존해선 안 된다는 이야기다. 기업과 정부에 단체/활동에 대한 정보를 보고해야 하는 직접적 지원금 신청은 하지 않는 것, 그리고 기업의 영리활동 등과 연관하여 후원을 받지 않는 것 등.

▶ 2006년, 비영리민간단체 등록 문제와 연관하여 정부로부터 돈을 받는 문제에 대해 논쟁이 있었고, 2008년 2월, 제3회 총회 때 재정독립성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제3회 총회에서는 재정의존도, 돈의 성격, 제약이나 제한의 가능성 등을 고려하자는 의견들이 나왔다.

▶ 2008년 〈아름다운재단〉에 배분사업 신청을 할 때도 논란이 있었다. 〈아름다운재단〉도 기업의 후원을 받는 재단이기 때문이다. 이때 결론은 공익재단을 거친 재정 지원은 기업의 의사에 따라 활동에 제약을 가하지 않으므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돈세탁?

▶ 구체적인 재정독립성의 기준과 적용 규칙 등은 아수나로의 합의에 따라서, 활동의 내용과 방식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으며 계속해서 논의하고 있는 주제 중 하나이다.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의 등장과 몰락》 (학연소사)

분류 : 도서


▶ 2000년 창립된 〈전국중고등학생연합〉에 대해 당시 활동했던 활동가가 쓴 문서이다. 필자가 이민승인데 가명으로 추정된다. 아수나로가 만들어진 초창기에는 운동을 기획하고 전망할 때 활동가들이 많이 참고한 글. 〈학연소사〉라고도 불린다.

▶ “올해 두발자유화 운동” 등 글의 내용으로 볼 때 쓴 시점은 2005년이다.

▶ 〈전국중고등학생연합〉 활동에 대해서는 서울 중심으로, 주로 2002년 초 정도까지 기술하고 있다. 그 이후의 청소년운동 정황 등은 2002~3년 이야기도 나오지만.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이 만들어진 과정과 2000년 두발자유화 운동, 학교별 지회를 만들려고 했던 시도,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 참여 요구 운동, 내부 분열 등을 서술하고 있다.

▶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의 역사만이 아니라 그 과정 이후 필자의 생각, 청소년운동에 대한 관점이나 제안 등의 분량이 많다. ‘진보적 청소년운동’ 등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운동에 대한 관점 등에서 좌파 운동의 영향도 엿보인다.

▶ 이 문건에서는 〈전국중고등학생연합〉이 2002년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적고 있지만, 2003년 정도까지 새롭게 조직을 재구성하고 존속하려고 시도했다는 그 이후 활동한 사람들의 증언도 있다.

▶ 글에 등장한 몇몇 단체 및 개인들이 이 글의 서술이 필자의 주관에 따라 일부 편집되거나 왜곡되어 있다는 지적을 했던 적도 있다. 따라서 전반적인 역사나 운동에 대한 관점 등 외에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평 등은 가려서 읽어야 할지도 모른다.




전국논의자랑

분류 : 운영


송해 : “전국~논의~자랑~” 전국논의자랑은 아수나로의 전국 단위 회의기구이다. 1년에 2번 있는 총회 사이에 2번씩, 1년에 총 4회 정도 열린다. 전체온라인회의와 달리 직접 만나서 대면하여 하는 회의라는 점이 특징이다.

▶ 눈치 챘겠지만 장수 TV 프로그램 ‘전국노래자랑’에서 이름을 따왔다.

▶ 지부에서 1인 이상씩 참여한다. 지부의 전체논의를 담당하는 사람들, 그리고 전체팀이나 담당의 멤버들이 참여한다.

▶ 온라인회의로는 원활한 소통과 논의가 어렵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일상적으로 더 많은 논의와 결정을 내리고 아수나로를 운영해나가기 위해서, 2013년 여름 총회에서 제안되어 개설되었다.




전체온라인회의

분류 : 운영


▶ 아수나로의 가장 오래된 전체 논의 구조이다.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 시절부터 있었다. 지역모임별 담당자가 있고, 전국논의자랑이 만들어지기 전에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진행되었다. 활동회원들의 필요에 따라 소집되며 일상적인 부분을 점검한다.

▶ 전체공금 사용, 신생지부 승인, 지부가 없는 회원이 활동회원이 되고자 하는 경우 등 지역모임 단위가 아닌 전체 단위 논의가 필요한 사안에 대해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회의이다.

▶ 처리해야 할 안건들이 있는데 총회나 전국논의자랑까지 기다리기는 어려울 때 필요하다. 과거에는 아수나로 논의 결정의 중요한 부분을 맡고 있었으나 규모가 커지고 논의할 것들이 많아지고 복잡해지니 온라인으로 토론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져서 지금은 비중이 작은 편.

▶ 온라인으로 진행하다보니 잠수 타는 회원을 막기 어렵고 집중이 흩어진다는 한계가 있다. 안정적인 온라인회의(채팅) 공간을 찾아 헤맨 여정의 기간이 제법 길다. 처음에는 네이버카페채팅을 이용하다가 안정성과 호출 기능의 필요성 때문에 irc를 상당기간 사용했으며, irc 서버가 불안정해진 이후에는 팔링고로 옮겼다. 조만간 또 바뀔 예정. 미래에는 화상 회의로 발전할 것이다. 돈이 없어서 안 될걸?

▶ 비슷한 성격의 전체 단위 회의로는 직접 만나서 진행하는 ‘전국논의자랑’이 있다.




지문날인거부

분류 : 용어 | 운동


▶ 한국은 만17세에 주민등록증을 만들 때 열 손가락 지문을 모두 찍어서 국가에 정보를 저장시켜야 하는데, 이를 거부하는 것. 정보인권 보장을 위해서, 국가주의에 반대하는 의미에서 실천하는 불복종 행동이다.

▶ 지문날인거부자들은 주민등록증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대체 신분증으로 여권, 청소년증, 운전면허증, 노인복지카드, 장애인복지카드 등을 사용해야 한다.

▶ 〈지문날인반대연대〉에 따르면, 한국의 지문날인제도는 박정희 정권이 국민감시와 통제를 원활히 하기 위해 시행한 것이며, 이는 북한과 전쟁 중이라는 긴장감을 가지고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수상한 사람을 신고하자는 냉전 시대의 산물이다. 국가가 생체정보인 지문을 모든 국민에게 제출하도록 해서 보관하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거의 없다. 따라서 인권단체 등 지문날인제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과도한 인권침해이고 시민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제도이며 국민의 국가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는 제도라고 본다.

▶ 1999년, 전자주민증 도입에 관한 쟁점과 함께 주민등록법 개정이 논란이 되었다. 결국 전자주민증은 도입되지 않게 됐으나, 이후 주민등록증 관련 법을 새로운 형태로 개정하여 갱신하면서 2000년대 초반에 지문날인제도에 대한 반대 의견이 공론화되었다. 〈진보네트워크센터〉를 비롯한 여러 인권단체들이 지문날인거부와 헌법소원 등 실천에 나섰고 《주민등록증을 찢어라!》라는 다큐멘터리도 나왔다. 이때 과거 청소년운동을 했던 사람들 일부도 정보인권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지문날인거부에 동참했다.

▶ 지문날인을 하는 시기가 만17세, 청소년기이기 때문에 청소년운동에서도 청소년인권 문제로 보고 지문날인제도와 주민등록제도에 대해 비판적 입장으로 함께하곤 한다. 이에 따라 청소년활동가들 중에도 지문날인거부자가 상당수 있다. 2011년, 아수나로 활동회원들이 청구인으로 참여하여 지문날인 제도에 대해 재차 헌법소원을 냈으나 헌법재판소는 합헌 판결을 내렸다.




차별금지법

분류 : 법 | 용어 | 운동


▶ 각종 사회적 차별을 금지, 근절하고 차별이 일어났을 때 이를 구제하고 시정하기 위한 법률. 아직 제정되지 않았다.

▶ 2006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정을 권고하여 처음으로 구체화되었고, 2007년 법무부가 입법예고를 했다. 그러나 법무부가 최종적으로 낸 안에서는 성적 지향, 학력, 가족형태, 출신국가, 병력, 범죄전력, 언어가 차별금지 대상에서 제외되고 차별에 대한 구제 방법으로 국가인권위원회안에 있던 시정명령 등을 삭제됐다. 이는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기업 단체들이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 기업의 부담을 늘린다고 반대했고, 보수근본주의 기독교 세력도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금지 등을 반대했기 때문. 이처럼 후퇴한 차별금지법안에 대해 인권단체들도 우려를 표하며 비판했고 결국 차별금지법 제정은 무산되었다. 그 뒤로 국회의원들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하는 등 제정을 위해 노력했지만 아직 제정되지 못했다.

▶ 한국 정부는 유엔인권기구에서 인권 문제 심의를 받을 때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것을 권고 받고 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는 차별금지법을 검토한 적은 있어도 실제로 제정을 본격적으로 추진한 적은 없다. 기업들과 보수근본주의 기독교 세력의 반대를 의식한 점도 있고, 〈새누리당〉 자체가 차별금지법에 의지가 없는 것으로 추측된다.

▶ 인권단체들은 2007년 차별금지법 문제가 공론화됐을 때 〈반차별공동행동〉이라는 연대체를 꾸려서 올바른 차별금지법 제정 및 반차별 주장 확산을 위해 활동했다. 아수나로 역시 〈반차별공동행동〉에 가입하여 활동했으며 이 과정에서 청소년이 겪는 각종 인권침해 문제를 ‘차별’로 개념화하는 작업을 했다. 차별금지법 사건에서는 성소수자 문제가 주로 이슈가 되기는 했으나 〈반차별공동행동〉은 성소수자 말고도 학력, 성별, 나이, 병력, 장애 등 다양한 차별 사유들에 관련해서 활동을 펼쳤다. 아수나로는 담당할 역량의 부족과 연대체가 감당 못할 정도로 너무 많아진 문제 때문에 2010년에 〈반차별공동행동〉을 탈퇴했다.

▶ 전체적인 차별금지법 외에도 ‘장애차별금지법’, ‘연령차별금지법’ 등의 분야별로 차별을 금지하는 법률이 존재한다. 그러나 ‘연령차별금지법’의 정확한 명칭은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로, 주로 정식 약칭은 ‘고령자고용법’, 임금노동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차별받는 경우에 대처하기 위한 법률이니 청소년과는 큰 상관이 없다.




청소년 (어린이, 미성년자)

분류 : 용어


▶ 청소년운동이 말하는 청소년의 범위는 단체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소 다르다. 보편 개념적으로는 사회적 법적으로 ‘미성년자’(Minor)로 분류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고, 국제인권법상 ‘아동’(Child)과 유사하다. 같은 관점에서 청소년운동은 사회적 법적 ‘미성년’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차별에 저항하여 해방을 지향하는 운동이라고 정의된다.

▶ 근대 자본주의 국가에서 이 ‘청소년’은 ‘미성년자’로 분류되어 법적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행위를 제한받으며, 친권자-보호자에 의해 가정에서 보호받도록 규정되어 있고, 유치원이나 학교 등의 교육기관에 속할 것을 요구받는다.

▶ 현실적으로는 10대보다도 더 나이가 적을 때는 여건상 활동에 참여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10대 또는 13세~18세를 가리키는 것, 또는 중고등학생이나 그 연령대의 청소년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되고는 한다. 10세 이전의 사람들을 조직화해서 운동을 만들면 이런 이미지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 ‘청소년’이라는 말이 ‘푸르다’(靑)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그 자체로 청소년에 대한 특정한 이미지, 편견을 담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그러나 너무 낯설지 않게 널리 쓰이면서도 대체할 만한 말이 없기 때문에 청소년이 많이 사용되는 중.

▶ 한국에서는 현재 민법, 청소년보호법, 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 공직선거법에서 미성년자가 만19세 미만(또는 만19세가 되는 해의 1월 1일 이전)을 기준으로 하므로 보통 만19세가 기준이 된다. 그러나 아동학대 관련 법률이나 근로기준법에서는 18세 미만이 기준이고, 청소년기본법에서는 9세에서 24세까지로 정의하는 등 법에 따라 차이가 심하다. 국가의 청소년 개념 자체가 얼마나 주먹구구식인지 보여주는 면. 특히 아동학대 관련 법률이 18세 미만 기준인 것은 매우 이상한데, 만18세(19살)부터는 집에서 맞아도 학대가 아니다. 고3들이 으레 당하는 각종 폭력과 강제학습을 생각하면…. 청소년기본법에서 포함되는 20대 초반은 청소년운동이 운동 주제로 삼는 이슈들과는 괴리가 있으나, 현실적으로 20대 초반까지는 청소년 연령대와 연속성이 있다고 보고 24세까지를 가입자격 기준으로 삼는 단체도 간혹 있다.

▶ ‘어린이’는 역사적으로는 1920년대 소년운동에서 만들어진 존중의 뜻을 담은 표현이다. 하지만 현재는 ‘어린이’가 보통 사회적으로 10대 초반 정도까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어린’, ‘어리다’라는 의미에 담긴 부정적 뉘앙스 때문에 즐겨 사용되지는 않는다. 다만 맥락에 따라 10대나 13세~18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어린이·청소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가 있다.

▶ 소년이 남성을 의미하고 소녀가 여성을 의미하는 것 때문에, 여성 청소년을 ‘청소녀’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청년 및 청소년은 소년/소녀에 비해서 성별적 의미가 약하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사용해서 성별적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는지는 애매하다.




청소년보호주의

분류 : 용어


▶ 청소년을 ‘어른’들이 보호하고 보살펴야 할 미성숙한 존재로 보는 관점과, 그러한 생각 및 제도들을 포괄한다고 볼 수 있다. 위험이나 범죄 등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자체는 인권의 중요한 요소이다. 청소년보호주의는 보호의 필요성을 말하는 것이나 여러 형태의 보호 전반이 아니라, 청소년의 핵심적 속성을 ‘보호할 대상’, ‘보호받을 약자/피해자’로 보는 것을 이른다. 또한 ‘안전할 권리’ 같은 것이 아니라 ‘보호받을 권리’라고 이야기하는 것에서부터 이미 보호할 주체(비청소년, 부모, 국가 등)를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호받을 권리’를 강조하는 것 자체가 청소년보호주의 속에 있는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 근대에 들어서 가족 안에서 ‘아동’을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기 시작하고, 보호할 대상으로 보기 시작하는 ‘아동기의 발명’이 이루어졌다. 아동을 보호할 주체로 ‘부모’나 ‘모성’(어머니)을 요구하였으므로 가족 또는 가족적 관계를 강조하는 가족주의와도 관련이 깊다.

▶ 각종 심의제도나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등을 포함한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보호주의가 국가에 의해 어떠한 형태로 구체화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는 청소년의 건강을 보호한다기보다는, 국가가 요구하는 ‘건전한 국민’으로 성장하도록 하기 위해서 거기에 방해가 된다고 간주되는 문화적 요소들을 차단시키는 일종의 ‘선도’, ‘훈육’의 개념에 가까운 것이다.

▶ 이윤 추구를 위해 유해한 물건/서비스를 판매하거나 위험한 환경을 조성하는 기업 등으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 청소년보호주의는 청소년을 보호받을 대상으로, 비청소년을 보호하는 주체로 위치시키며 권력관계를 견고히 한다. 김성윤은 “청소년 보호와 청소년 억압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실제로 보호주의는 청소년들을 단속하고 규제하고 문화와 삶을 억압하는 방식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이게 다 너를 위한 거다.”라는 논리 속에 주체인 비청소년들이 일방적으로 조치를 취하는 구도이기 때문이다.

▶ 보호주의를 비판하는 논리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보호는 필요한 것이지만, 반드시 시민적 정치적 권리, 존중, 자유와 참여가 동반되어야 한다고 지적할 수 있다. 또는 청소년만 ‘보호’한다고 해서 분리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그 상황과 구조를 보편적으로 개선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다. 예컨대 청소년에게 임노동을 금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이든 비청소년이든 누구나 안전하고 인간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노동환경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나 비청소년에 의한 청소년 ‘보호’라는 방식이 아니라 청소년의 안전할 권리 등 주체적인 권리의 개념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가능하다.




《청소년의 눈으로》

분류 : 언론


▶ 아수나로가 냈던 신문. 또는 ‘행동하는 청소년’에서 냈던 이메일 신문. 또는 《요즘것들》의 칼럼 코너 이름.

▶ 2005년부터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에서 타블로이드 8면으로 발간했던 신문이다. ‘청소년인권운동 신문’을 표방했다. 약칭은 ‘청눈’. 《청소년의 눈으로》라는 이름은 〈행동하는 청소년〉에서 이메일로 내던 신문에서 따온 것이었다. 〈행동하는 청소년〉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아수나로에 함께했기 때문.

▶ 2007년 나온 3호가 마지막호였다. 4호까지 기획했으나 끝내 재정난과 인력난으로 발간되지 못했다.

▶ 이후 2014년 창간된 《요즘것들》의 칼럼 코너 이름인 “청소년의 눈으로”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총회

분류 : 운영


▶ 아수나로 전체의 활동과 운영 전반을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가장 큰 회의이다. 회칙 개정, 활동 계획 세우기, 지부 신설 그리고 지부 폐지 등 중요한 부분은 대부분 총회에서 결정한다. 형식상 최상위 절차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결정할 때에는 ‘총회 결정사항’을 우선 고려한다.

▶ 오랜만에 다른 지역모임 활동가들을 볼 수 있는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하고, 안건에 대한 논의와 의결뿐 아니라 아수나로에서 중요한 현안이 되는 주제에 대한 열린 토론을 하기도 한다. 아수나로 지부들과 활동회원들 사이의 의견을 조율하고 입장과 운동 방향을 맞춰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 초창기에는 일 년에 한 번으로 겨울 총회만 열렸으나 제5회부터 여름 총회도 추가되어 연 2회로 늘어났다. 또한 제3회 총회까지는 1박 2일이었으나 2009년 제4회 총회부터 2박 3일이 되었다. 2박 3일 동안 밥만 먹고 잠도 줄여가며 회의하는 매우 빡센 시간. 처음 아수나로 총회를 접하는 사람들은 적응하기 어려워하기도 한다. 사실 사람이면 대부분 총회는 힘들어 한다.

▶ 2014년부터는 여름 총회에서는 회의를 줄이고 활동회원들의 역량강화, 운동에 필요한 연수도 함께 진행한다.

▶ 여러 가지 사안을 논의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면 활동회원들의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종종 “아수나로 해산 안건 만장일치로 통과!” 라는 드립이 튀어나오기도 한다. 본래는 다들 지쳐서 안건에 큰 문제없으면 대체로 그냥 넘어가자는 태도를 보이는 것을 셀프 풍자하면서 나온 농담이었다. 아수나로는 총회 때마다 해산됐다가 재결성된다.

▶ 초기에는 총회가 열린 지역 이름을 가져와서 ‘광주 총회’, ‘서울 총회’ 등으로 특정 총회를 가리켰지만,횟수가 많아지면서 같은 지역이 3번씩 중복되니까 이제는 제1회, 제2회 하면서 숫자로 부르고 있다.

▶ 총회 자리에 활동회원의 친권자가 쳐들어와서 회의에 지장을 빚은 사태 이후로 총회 장소를 지역 외에는 비공개하고 있다. 내부게시판 공지 외에는, 참여를 원하는 활동회원이나 신입 회원에게 개별적으로 알린다.

▶ 수십 명이 2박 3일간 모여서 하는 행사이다 보니 아수나로 예산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 자세한 내용과 역사는 “총회사”를 참고하면 좋다.




친권자 (보호자, 부모)

분류 : 용어


▶ 청소년들 대부분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겪게 되는 권력자. 학교에서 “부모님 모셔와.”가 비공식적 징벌의 일종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때로는 교사나 국가보다도 무서운 탄압의 주체.

▶ '미성년자', 곧 청소년에 대하여 친권을 가지는 사람을 이른다. 친권의 정의와 효력 등은 민법 909~927조에서 정의하고 있으며 그 뒤에 이어지는 후견인에 관한 조항들도 친권과 관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친권자는 감독하는 청소년에 대해 거소지정권, 징계권, 재산관리권, 보호와 교양의 의무 등을 가진다. 또한 친권자는 각종 사안에서 법정대리인이 되며, 현실에서는 각종 사안에 대해 청소년을 대신하여 동의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1차적으로는 미성년자의 부모 또는 양부모가 친권자가 되며, 부모나 양부모가 그러한 일을 할 수 없을 경우 법적 절차에 따라 정해진 친척, 후견인 등이 된다.

▶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는 부모, 양부모 등의 역할을 하는 이들을 “친권자”라고 부르곤 한다. 그 이유는 대략 두 가지로, 1) 아버지, 어머니 양쪽이 있는 정상가족 중심적인 ‘부모’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려는 문제의식. 2) 혈연과 애정 중심으로 자연적인 것이라고 생각되는 가족 개념을 벗어나, 자녀와 부모/보호자 사이의 권력관계를 드러내려는 문제의식이다. 즉 ‘친권자’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가정 청소년인권 문제와 친권자-자녀 권력관계에 대한 비판 입장, 정상가족 중심주의에 대한 비판 입장을 반영한 표현이다.

▶ 이러한 의미의 ‘친권자’는 가족이라는 제도 자체도 청소년의 인권을 제약한다는 인식을 함축하고 있다. 아수나로는 현재와 같은 가족과 친권 제도를 바꿔 더 사회적이고 인권적인 제도와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엄밀히 말해서, 만19세를 넘어가면 법적으로는 ‘친권’이 없어지기 때문에 친권자라는 말을 쓰는 데는 어폐가 있다. 하지만 꼭 법적 권한이 아니어도 사회적, 경제적 권력관계를 말하는 것이라면 20대까지도 일정 부분은 ‘친권자’라는 표현이 유효할 수도 있다.

▶ 모든 친권자가 ‘꼰대’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꼰대의 어원을 찾다보면 여성 친권자를 “암꼰대”, 남성 친권자를 “숫꼰대”라고 불렀다는 기사를 찾을 수 있다.

▶ 모친을 ‘여성 친권자’, 부친을 ‘남성 친권자’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이 경우에 줄이게 되면 ‘여친’, ‘남친’이 되어 상당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음을 유념하자.




탈가정

분류 : 용어 | 운동


▶ 가정을 탈출함. 또는 가정을 나왔다는 의미. 흔히 하는 말로는 ‘가출’.

▶ ‘가출’이라는 말도 단순히 집에서 나왔다는 말이지만, 그 말에는 이미 사회적으로 일종의 탈선이고 일탈이라는 이미지,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문제 상황이라는 인식이 배어 있다. ‘탈가정’은 이런 ‘가출’에 대한 대안으로, 청소년이 가정을 탈출했다는 의미를 담아 만들어진 용어이다.

▶ 학교를 졸업 전에 그만두는 것을 ‘학업중단’, ‘중퇴’가 아니라 ‘탈학교’라고 부르자는 제안과 비슷한 구도이다.

▶ 청소년활동가들 중에는 활동이나 진로에 관한 갈등, 가정에서의 폭력 등으로 인해서 탈가정을 한 경우들이 간혹 있다.

▶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청소년 가출’ 중 절반 가량은 '부모 폭행', '가정내 성폭행' 등이 원인이라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으니, 많은 청소년들의 가출은 문자 그대로 가정으로부터의 ‘탈출’ 시도라고 하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겠다.

▶ 아수나로에서는 2015년에 《탈가정을 탐방하는 비행청소년들을 위한 안내서가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름, 안내서"》라는 긴 이름의 소책자를 만들었다.




학생의 날 (학생독립운동기념일)

분류 : 기념일 | 운동


▶ 11월 3일. 1929년 광주에서 일어난 학생독립운동을 유래로 제정된 기념일이다. 유래가 이렇다보니 ‘스승의 날’ 등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고 노동절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위한 날, 학생들에게 선물을 주는 날 같은 느낌으로 기념 행사를 진행하기도 한다. 사실 학생의 날을 챙기는 학교 자체가 별로 없다.

▶ 1953년 정부 기념일로 정해졌다가 1973년 정부 기념일에서 빠졌고, 1984년에 다시 정부의 공식 기념일이 되었다가 2006년에 ‘학생독립운동기념일’로 바뀌었다. ‘~의 날’에서 ‘~기념일’이 된 것은 법적으로는 격상이지만, 청소년운동에서는 과거의 독립운동을 기념하기만 하는 날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 광주의 학생독립운동은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것이기도 했지만, 당시 학생들은 학교의 자치권이나 학교 운영에 학생들이 참여할 권리, 사상 언론·표현·집회·결사의 자유 등의 인권 보장, 노예화 교육 반대 등의 요구를 했기에 보편적인 학생의 저항 행동이라고 볼 수 있는 면이 있다. 근대화와 학교교육이 확산되면서 1920년대는 학생들이 교육정책이나 학교의 정책, 교사의 억압 등에 항의하여 동맹휴학 등을 자주 벌인 시기이기도 했다. 현재에도 아수나로는 학생의 날을 이야기할 때 주로 독립운동이나 민족주의

보다는 억압적인 교육·사회체제에 저항하는 행동이라는 것에 중점을 두곤 한다.

▶ 광주 학생독립운동이 유래이기는 하지만, 그 이후에도 1980년대 고등학생운동 등에서도 꾸준히 학생의 날 행사나 집회를 열었고 학생의 날 자체에 이어져 내려온 운동의 역사도 존재한다.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 등의 단체들도 매년 학생의 날에 학생인권을 요구하는 버튼을 배포하고 기념 행사를 열고 퍼레이드를 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 아수나로에서는 2013년, 2014년 전교조와 연대하여 ‘학생의 날 신문’을 기획, 제작하여 배포했던 바 있다.

▶ 광주 학생독립운동을 기억하고 재연할 때 ‘일본인 남학생들이 조선인 여학생을 열차에서 희롱해서 조선인 남학생들이 여학생을 지키려고 나서서 싸움이 붙었다.’라는 사건을 계기로 거론하고는 한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에 대해 구체적 사건 경위는 불분명한 상태이고 ‘여성을 지켜주는 남성’이라는 구도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고 비판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학생인권법

분류 : 법 | 용어 | 운동


이렇게 된 이상 국회로 간다. 학생인권을 보장하고 개선하기 위한 내용을 담은 법률안. 대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의 형태로 만들어진 것을 가리킨다. 이는 학생인권 문제를 법제정을 통해 개선해보려고 한 2005년 이후 새로운 시도의 결과물이다.

▶ 2006년 〈민주노동당〉 최순영 국회의원이 발의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그 내용은 두발규제, 체벌, 강제적보충자율학습, 종교강요, 소지품검사 등을 금지하는 내용, 차별금지, 학생회 자율성 보장과 학교운영위원회(학교자치위원회)에 학생회 참여, 학교에서 자의적으로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교칙 개정 금지(침해 여부는 교육부에서 판단), 인권교육 의무화, 인권침해에 대한 상담과 구제 체계 구축, 학생인권실태조사 정례화 등이었다. 이 법안은 2000년대 초중반 여러 학생인권 이슈들이 공론화되고 2005년에 다시 두발자유 운동이 일어나자, 〈민주노동당 청소년위원회〉와 〈민주노동당 정책실〉 등이 논의하여 학생인권 문제를 제도적 방법으로 해결해보고자 한 시도였다.

▶ 2006년 최순영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아수나로를 비롯한 많은 청소년운동 단체들이 서명운동을 하고 집회나 캠페인을 진행했다. 〈전교조〉 등 여러 교육운동 단체들과 연합한 〈아이들살리기운동본부〉 역시 학생인권법안 통과를 위한 서명 등을 함께했고, 2007년 하반기에는 총 11,745명의 서명을 국회의원들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체벌금지나 학생의 학교운영 참여 등 내용에 반발하여 강력하게 반대 의견을 전달했고 〈한나라당〉이 이를 받아들여서 법안 통과를 반대했다. 결국 “학교의 설립·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헌법」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라는 선언적인 문구가 초중등교육법 18조의4로 추가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 2012년, 〈인권친화적학교+너머 운동본부〉가 결성되면서 아동·청소년인권법안과 학생인권법안(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제정하기 위해서 법안을 만들어서 발표하고 토론회를 여는 등의 활동을 했다.




학생인권조례

분류 : 법 | 용어 | 운동


밖에서 보기엔 아수나로의 대표적 정책, 또는 소위 ‘진보교육감’들의 선물. 실제로 아수나로 사람들에게는 애증의 대상. 학생인권을 보장하고 개선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례. 조례는 지방자치단체의 법을 말하며 국가 차원의 법률이나 시행령 등의 명령보다 하위의 법이다. 광역자치단체와 기초자치단체 모두 조례를 만들 수 있으나 현재까지 학생인권조례들은 모두 광역자치단체 차원의 조례이다.

▶ 조례 제정(의회 통과 확정) 시점 기준으로, 2010년 경기도, 2011년 광주광역시, 2012년 서울특별시, 2013년 전라북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졌고 현재 시행 중이다. 서울특별시(2010~2011), 경상남도(2011), 충청북도(2011~2012)에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이 있었으나 이 중 경상남도는 도의회에서 부결시켰고 충청북도에서는 교육청이 상위법 위반 이유로 발의를 거부했다.

▶ 주요 내용은 두발복장 자유 등 개성의 자유, 체벌금지 등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 보충수업·자율학습 등의 선택권 보장, 사생활의 자유 및 개인정보에 관한 권리, 양심의 자유, 언론·표현의 자유, 차별금지 및 소수자 학생의 권리, 학교 운영에 참여하고 의견을 반영할 권리, 쾌적한 환경에서 교육에 참여할 권리, 공정한 징계절차에 대한 권리 등이다. 지역에 따라 권리에 대한 제한 사항에도 차이가 있고 명시되지 않은 권리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들이 모두 제대로 알려지거나 지켜지지는 않고 있으며, 두발자유와 체벌금지와 강제학습금지 정도가 주요 내용으로 인식되고 있다.

▶ 학생인권 보장을 위한 조례는 2004년 부산에서 학생인권 관련 토론회에서 제안되었던 적이 있으며, 2005년 광주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처음 시민사회단체들에 의해 안이 만들어지고 추진되었었다. 그러다가 교육감 주민직선제가 시행되고 2008년 서울 주경복 후보, 2009년 경기도 김상곤 후보 등, 이른바 ‘민주진보’ 성향의 교육감 후보들에 의해서 공약으로 채택되었다. 그리고 김상곤 교육감이 2009년 자문위원회를 꾸렸고 만들기 시작하였고 아수나로 등의 청소년활동가들이 성안과 제정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였다. 이때 학생인권조례 내용에는 과거 광주에서 만들었던 조례 초안, 일본 가와사키 아동권리조례, 유엔아동권리협약, 헌법, 국가인권위원회의 관련 결정례들, 청소년인권운동의 주장들을 참고했다. 경기도에서 2010년 상반기에 도의회에 발의되었다가 통과되지 못했고 2010년 지방선거 이후 다시 발의하여 경기도에서 한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 광주와 전북에서는 교육청에 의해서, 서울에서는 시민사회단체들의 주민발의에 의해서 만들어져서 의회를 통과했다. 주민발의는 만19세 이상 선거권이 있는 사람이 주민등록번호와 주민등록상 주소, 자필 서명에 의해 그 지역 선거권자 주민의 1%가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청소년·초중고등학생은 참여할 수가 없고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서울 주민발의의 과정은 참여한 비청소년 시민사회단체들의 초반 참여가 저조하여 매우 다사다난했다.

▶ 안 그래도 체벌금지와 집회의 자유, 사상의 자유 등으로 많은 쟁점이 됐다. 그런데 서울 주민발의 이후 언론에서 더욱 조명을 받았고 보수근본주의 기독교 단체와 극우 등이 성소수자 차별금지, 임신 및 출산에 대한 차별금지를 놓고서 “동성애 조장, 십대 임신 조장”이라고 공격을 가해서 더욱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경기도랑 광주에서 제정될 땐 조용하더니…. 이 때문에 서울시의회에서 통과가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지자 성소수자단체들은 서울시의회에서 점거농성을 하는 등 투쟁에 나섰고 여러 단체들의 노력과 시의원 설득 작업 끝에 일부 개악된 안이 통과됐다. 이 사건 이후로 보수근본주의 기독교 세력은 ‘성적지향·성별정체성 차별금지’ 조항마다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고, 성소수자 운동도 사회적으로 더욱 가시화된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다.

▶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계속 부정적이다. 유엔인권기구 심의 때는 학생인권조례를 인권 개선을 위한 노력으로 보고서에 소개하면서 국내에서는 계속 발목을 잡는 이중 플레이를 하기도 했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제정 당시에는 당시 이대영 교육감 대행(곽노현 교육감이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 상태였음.)이 재의(시의회에서 통과된 조례를 다시 한번 심의해달라고 하는 것. 일종의 거부권 행사.) 요구를 했는데, 사실상 이명박 정부 교육부와의 공조 속에 재의 요구를 했다는 추측이 많았다. 다만 이때 교육부는 서울시교육청에 정식으로 재의 요구를 하라는 명령을 하지 않았고, 곽노현 교육감이 복귀한 이후 재의 요구를 철회했다. 그러자 교육부는 서울시학생인권조례가 무효라는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에서는 무효소송을 내려면 재의 요구 명령을 먼저 하도록 절차를 정해두고 있어서 재의 요구 명령을 정식으로 안 했던 교육부가 패소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전북 학생인권조례도 무효라는 소송을 냈는데 이 소송에서도 학생인권조례는 상위법 위반이 아니라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교육부가 패소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학교장이 학교규칙에서 ‘용의복장에 관한 사항’을 규정할 수 있게 제시했고, 이에 따라 시행령 이후 만들어진 전북학생인권조례에는 두발과 복장을 학교 규칙으로 제한할 수 있다고 적혀 있다. 두발자유에 똥을 준 교육부의 만행.

▶ 학생인권조례는 청소년운동이 오랜 시간 노력해온 두발자유, 체벌금지 등 학생인권 문제를 개선하는 데 성공한 직접적 성과라는 의의가 있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는 인권 관련 조례들 중에서 드물게도 인권의 구체적 내용과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이로 인해 학생인권조례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주요한 학생인권의 기준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거의 유일한 법제도라는 위상을 가진다.

▶ 전국적으로 적용되지 못하고 일부 지역에서만 적용되는 문제, 학교 현장에서도 조례의 권들이 온전히 지켜지지 못하고 교육청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한계 등이 있다. 또한 아수나로 안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로 학생들이 인권침해를 당하더라도 스스로 행동에 나서려고 하기보다는 교육청에 신고를 하고 해결해주기를 기다리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학생들이 체감하는 인권 문제를 하나하나 다루기보다는 ‘학생인권조례를 지켜야 한다’는 등의 운동을 하면서 학생들로부터 거리감이 생겼고 의회나 교육청에 관해서 활동을 많이 하게 됐다는 것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제정 과정에서 여러 활동가들을 힘들게 하기도 했고. 운동의 귀중한 성과이고 학생들의 삶을 개선한 제도라는 점에서 소중한 것도 사실이니, 애증의 대상.

▶ 전라남도 교육청에서 교육공동체권리조례, 대구광역시 교육청에서 교육권리헌장, 강원도 교육청에서 학교인권조례 등, 학생인권조례를 변형한 조례나 헌장 등을 만들려고 한 바 있다. 그러나 아수나로는 이에 대해 ‘학생인권조례’인 의미가 있다고 해서 부정적인 입장이다.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되도록이면 학생인권조례로 해야 한다는 입장. 먼저, ‘조례’도 강제성이 약하다고는 하지만 ‘헌장’은 강제성이 전혀 없다. 그리고 ‘학생인권’조례여야 학생도 인간이고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을 밝히는 의미가 있다. ‘학교인권조례’나 ‘교육공동체권리조례’ 같은 식으로 학생·교사·관리자·학부모 등을 병렬적으로 나열해서는, 학생의 인권이 학교 안에서 보장되지 못하고 침해당하고 있기 때문에 조치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다. 학생의 인권을 원칙이자 기준으로 세우지 못하고 학교나 교육공동체의 논의와 합의 밑에 종속시키게 된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그러한 ‘유사’ 학생인권조례에서는 조례로 유의미하게 보장할 만한 교사나 학부모 등의 권리를 풍부하게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이것이 학생인권조례의 의미를 약화시키려는 구색 맞추기라는 지적을 듣는다. 그러나 학교인권조례로 하고 각종 내용을 후퇴시켜도 학생인권을 반대하는 극우세력이나 보수근본주의 기독교 세력 등은 다 반대한다는 것이 강원도의 2015년 사례 입증되었다.




학생자치법 (학교자치법.조례)

분류 : 법 | 용어 | 운동


▶ 학생자치의 현실을 개선하고 학생회 활동과 권한을 보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안들, 그리고 조례들을 말한다. 대표적인 법안은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이 2006년, 학생회, 교사회, 직원회, 학부모회를 법제화하고 학교운영위원회를 학교자치위원회로 변경하고 학생회도 학교자치위원회에 참여하게 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던 것. 학교자치법이라고도 불렸고, 학생인권법과 묶어서 ‘학생자치인권법안’ 등으로 불렸다. 비슷한 시기에 〈열린우리당〉 의원 등도 학교운영 참여 권한 등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학생회 등을 법제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이런 법안들도 ‘학생자치법’, ‘학생회 법제화’ 법안으로 분류되었다. 또한 2013년 광주에서도 학생회, 교사회, 직원회, 학부모회를 법제화하는 학교자치조례가 제정되었고 2015년에는 전라북도에서 비슷한 내용의 학교자치조례가 제정되었다.

▶ 현재 법률상으로는 학교장이 학교 운영과 결정에 대한 권한을 대부분 갖고 있고, 심의·자문 역할의 학교운영위원회가 존재할 뿐이다. 제대로 된 자치나 민주적 운영을 위한 기구들은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예컨대 학생회에 대해서는 “학생의 자치활동은 권장·보호되며, 그 조직과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학칙으로 정한다.”라고 한 줄 적혀 있는 게 전부다. 그래서 처음으로 학생자치법이 발의되었을 때는 학교 민주주의와 자치를 강화할 변화로 기대를 받았으나, 국회에서는 끝내 통과되지 못했다.

▶ 학교장에게 집중되었던 권한을 분산시킨다는 점, 그리고 학생이 학교운영에 참여한다는 점이 주된 쟁점이 되었다. 학생이 교사 등과 동수로 참여할지, 2인만 참여할지 등이 〈민주노동당〉에서 법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당시 법안에서는 학생회가 학생들의 선거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 등을 명시했으나, 학생회의 예산권이나 자율적 활동 및 행동권 등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담지 못한 한계가 있다. 이후 학교자치조례에서는 학생회의 의결권 등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명시하려 노력했다.

▶ ‘학생회법제화’, ‘학생 대표의 학교운영위원회 참여’ 등 2000년대 들어 제기된 학생들의 학교 민주주의 요구를 반영하여 나온 법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법안 발의 직전인 2005년, 중고등학교 학생회가 자치권을 침해당하는 사례들을 수집하여 공론화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질적인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치기구의 법제화만으로 과연 큰 실효성이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아수나로도 학생자치법 등을 지지했지만, 실질적인 민주주의나 권리 보장이 아닌 ‘자치’나 ‘절차’에만 집중하는 접근 방법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편이다.

▶ 학교자치조례에 대해서도 교육부는 학교장의 권한을 규정한 상위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대법원에 소송을 낸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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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나로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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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나로 10년 활동의 역사

꼭 바꿔야 하지만 참 어려운 그 문제, 교육


(2016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10주년 기념 자료집 〈어설픈, 하지만 망하지 않은〉 수록



  청소년운동 자체에 교육운동의 성격이 있다는 것은 1980년대 고등학생운동 이래로 언제나 공공연히 운동 내외에서 인정되었던 점이다. 아수나로와 인적 연관이 있는 조직인 〈전국중고등학생연합〉(2000)의 풀네임 역시 〈학생인권과 교육개혁을 위한 전국중고등학생연합〉으로 ‘교육개혁’을 단체의 목적으로 내걸었다. 아수나로가 본격적으로 활동에 나설 무렵 있었던 2005년 내신등급제 반대 촛불집회도 청소년들의 교육제도에 대한 불만이 분출한 사건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청소년들 중 대다수가 초중고등학생이고, 교육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 규정되고 있으며, 학생인권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교육제도와 교육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따라서 교육운동은 청소년운동의 숙명과도 같은 과제라고 하겠다.


  하지만 동시에 청소년운동은 교육운동과 별개의 것으로 생각되는 일이 많다. 교육운동이라고 하면 주로 교사운동, 혹은 학부모운동이나 교수 등이 참여하는 비청소년 NGO들의 시민운동을 떠올리고 청소년운동은 그와 다른 것으로 분류하는 것이다. 이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전교조〉 등의 교사단체나 학부모-시민단체 등이 교육운동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인식이다. 본문에서도 “교육운동 단체”라는 말을 이러한 교사‧학부모‧시민단체들을 가리키는 말로 주로 쓸 것이다. 청소년운동의 교육운동은 이러한 다른 교육운동 주체들과의 관계 맺기의 문제이기도 했고 여러 갈등과 긴장관계가 있어왔다. 2005년 내신등급제 반대 촛불집회 때부터도 그런 관계 속에 잠재되어 있는 긴장관계는 복잡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아수나로의 첫 출발점이었던 학생인권운동 역시도 넓은 의미에서 교육운동에 속할 것이다. 또한 교육운동은 가장 중요한 학생인권운동이기도 할 것이고 말이다. 서술의 편의상 두발자유, 체벌금지 등 주로 학교의 규율과 문화에 연관된 ‘학생인권운동’과 구분하여 ‘교육운동’은 거시적인 교육제도, 국가교육과정, 진학 또는 평가 제도, 학교서열화, 입시경쟁 등의 의제를 다루는 운동을 가리켜 쓰도록 하겠다. 아수나로가 해온 교육운동은 굵직한 것만 꼽아본다면 처음에는 입시경쟁체제에 대해 반대하는 운동에서부터 시작해서 구체적 정책 현안으로서 이명박 정부 시기 도입된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운동, 그리고 독자적인 실천으로서의 대학거부운동과 청소년운동의 새로운 교육의제로서 ‘학습시간 줄이기’ 운동 등으로 연결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입시경쟁에 대한 문제의식


  입시경쟁이 목표가 되어버린 교육에 대한 문제의식은 아수나로 초기부터 공유하고 있던 것이었다. 어떠한 교육철학이나 교육정책에 대한 견해가 없더라도, 사실상 학교에서 일어나는 많은 인권침해들이 입시를 위한 통제이자 ‘면학분위기 만들기’로서 정당화되었기 때문에 입시경쟁이 비인간적인 교육 환경을 만든다는 문제의식은 자연스레 가지기 마련이었다. 입시경쟁교육은 종종 학생인권침해의 구조적인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아수나로가 만들어진 초기에는 아수나로만의 교육에 대한 입장을 정립하기 위해서 회원교육 자료로 교육에 대한 책 읽기 등을 논의하기도 했다.


  대외적으로 입시경쟁교육에 반대하는 활동에 참여한 것은 2006년 ‘입시KIN(즐)페스티벌’에 함께한 것이 최초였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몇 년에 걸쳐 계속 해온 안티수능페스티벌로 〈문화연대〉 등의 단체가 제안한 활동이었다. 수능시험 당일 저녁에 대학로에서 입시경쟁교육과 수능시험 등에 반대하는 거리문화제를 연 것이다. 또한 수능시험일 오전에는 교육운동 단체들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서 “사형제보다 입시가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다.”라는 의미로 살인적 입시제도를 비판하는 단두대 퍼포먼스를 했다. 당시에도 많은 교육운동 의제가 있었으나, 특히 대학수능시험으로 상징되는 입시경쟁교육을 비판하는 활동은 청소년인권운동으로서 교육운동에 함께할 수 있는 대표적인 활동이었다.


  또한 2007년에는 아수나로 광주지부가 주도하여 ‘특정대학교 합격 현수막 반대’ 운동을 펼쳤다. 학교들이 입시철에 자기 학교에서 어느 학생이 모 ‘명문대학교’에 합격했다는 홍보 현수막을 게시하는 것이 입시경쟁을 조장하고 학생들을 차별하는 관행이라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었다. 이는 학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입시경쟁의 문제들을 지적하고 문제의식을 환기시키는 활동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모두가 고등학교, 특히 인문계열 고등학교는 대학입시를 목표로 하고 대학입시로 ‘성과’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것에 반기를 드는 것이기도 했다.


  200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교육운동 단체들은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국민운동본부〉(입시폐지운동본부)를 만들었다. 과거 〈학벌없는사회〉의 활동이나 서울대 폐지-대학평준화 주장 등의 흐름을 하나로 모아서, 수능자격고사/절대평가화‧대학평준화‧학력학벌차별철폐를 핵심 주장으로 표방한 대규모 교육운동 연대체를 만들었던 것이다. 아수나로도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와 함께 〈입시폐지운동본부〉에 참여하면서 홍보물을 만들거나 활동을 기획하는 등의 일을 공동으로 했다. 〈입시폐지운동본부〉에서 전국 자전거 행진을 할 때는 아수나로의 여러 지부들이 부분적으로 참여도 했다. 〈입시폐지운동본부〉는 수능시험일에 기자회견을 열었고 당시 〈청소년 다함께〉에서 활동하던 허그루가 수능거부선언을 했다. 그리고 수능시험이 있던 주말에 수백 명이 참가한 규모로 거리집회를 열었다.



이명박 정부 이후 현안 대응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이후로 교육운동의 상황도 변해갔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교육 개악, 학생인권 후퇴 정책들에 반대하고 저항하는 운동이 활발해진 것이다. 청소년운동도 이명박 정부 초기에 촛불집회가 한창 일어날 때에는 학교의 각종 지침 등을 없애고 학교가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하는 ‘학교자율화 조치’를 반대하는 입장을 내는 등의 활동을 했다. 그리고 2008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일제고사 반대 운동이 시작되었다.


  일제고사, 정식 명칭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학력평가’는 전국 모든 학교의 같은 학년의 모든 학생들이 같은 날에 같은 문제로 시험을 치르게 하는 정책이었다. 개별 학교 차원에서는 중간기말고사 같은 게 일제고사인 셈이다. 문제는 전국 단위로 일제고사를 시행할 경우에 그것이 학교별로 성적을 비교하고 서열화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학력 미달’ 학생들을 획일적 시험으로 가려내고 보충수업을 시키는 등 학업 부담을 늘리는 정책이라는 점이었다. 고등학교에서는 이미 수능시험이나 평가원 모의고사 등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지고 있었고 사실상 수능 성적으로 인한 서열화가 존재했다지만, 이명박 정부의 일제고사 정책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도 이를 전면 시행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에 교육운동은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아수나로는 2008년 하반기부터 일제고사 반대 운동에 함께했다. 아수나로는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등교거부/시험거부 행동을 처음에 제안했는데 다른 청소년단체와 운동방법론에서 이견이 있어서 논쟁을 하기도 했다. 아수나로 서울지부는 다른 청소년단체 및 활동가들과 함께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모임 Say No〉를 꾸려서 공동 행동에 나섰다. 교사운동 및 학부모운동이 주로 일제고사 반대 체험학습에 주력했다면 아수나로 등은 ‘체험학습’이 아니라 등교거부/시험거부/오답선언 등의 불복종 행동과 거리집회 및 문화제에 주력하는 편이었다.


  일제고사 반대 운동에 가장 큰 힘을 들인 때는 2009년에서 2010년 7월까지였다. 2009년에는 시험지에 오답을 적겠다고 선언하는 ‘오답선언’, 거리행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의 장기간 거리농성으로 일제고사 반대 운동의 의지를 보였다. 그러다가 운동의 역량과 조직력의 한계로 2010년 초에는 다소 힘이 떨어져서 교사운동 및 학부모운동의 활동에 묻어가는 경향이 있었다. 그리고 2010년 7월에는 줄 세우기 시험이 없다면 낙오자도 없다는 의미로 시험과 평가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담은 표어인 “No Test, No Loser”를 걸고 일제고사와 교원평가를 반대하는 행동을 기획했다. 2010년 7월의 행동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등에게 당시 당선된 이른바 ‘민주진보교육감’들과 엮여 주목을 받아서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고, 이는 아수나로가 유명해지는 계기이면서 동시에 많은 공격에 노출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이때 아수나로는 교원평가가 사실상 교원 통제 정책이고 학생들에 의한 민주적 참여나 교사 견제 효과는 미미하다는 점을 비판하며 교원평가제를 반대하고 수업이나 학교운영, 교원 인사 등에 학생 참여를 보장하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보수언론은 아수나로가 교원평가제나 일제고사를 반대하는 것을 두고서, 이는 〈전교조〉에 의해 조종당해서 정치 활동이 이용당하는 것이라는 식의 보도를 했다.


  2010년 이후로 대대적인 일제고사 반대 운동은 다소 사그라졌으나 여러 지부들은 교육운동 단체들과 함께 일제고사 반대 체험학습을 함께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해나갔다. 일제고사 반대 운동이 2010년 이후로 다소 줄어든 것은 물론 소위 ‘민주진보교육감’들의 당선 이후 정세의 변화 탓도 있다. 그러나 아수나로의 입장에서는 만 2년 가량 집중한 일제고사 반대 운동에서 역량을 소진하여 지쳤던 감도 있었고, 그 과정에서 교육운동 측과 의견이나 운동방식의 차이가 계속해서 드러났기 때문에 더 이상 함께하지 못했던 면도 있었다. 아수나로는 일제고사에 관해서 ‘불쌍한 초등학생들까지 시험을 보게 한다’ 등의 부모 감성, 보호주의 감성에 호소하는 것에 불편해했다. 특히 고등학생들은 일제고사로 인한 서열화 등의 문제가 그리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어서 호응이 덜했다. 중간기말고사나 수능시험 등 시험 그 자체에 대한 비판 없이 일제고사만 ‘나쁜 시험’이라고 비판하는 것에도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부모나 교사의 동의나 지지가 필요한 ‘체험학습’이라는 주된 운동방식에 관해서도 아수나로 등과 내부에서 논쟁했던 바 있다.


분류

일시

주요 사건

참고

2008

일제고사 첫 시행 전후

34

〈청소년 다함께〉 일제고사 반대 성명 발표

 

36/ 11

1 / 4~6 일제고사 시행

 

95

아수나로 서울지부청소년단체들에 일제고사 거부/불복종 운동과 연대체 결성 제안 발송

 

920

단체들과 개인들의 모임으로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모임 Say No〉 결성

 

200810월 일제고사

101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단체 기자회견

 

1011

광주서울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 문화제

 

108/14/15

초중고 일제고사 시행

 

1014/15

일제고사 반대 체험학습/등교거부 등

 

-

1210

일제고사 반대 체험학습 안내 교사 7명에게 서울시교육청 파면‧해임 징계

 

200812월 일제고사

1223

1, 2 일제고사 시행

 

1223

시험거부행동청소년집회

 

20093월 일제고사

223

일제고사 반대 서울시교육청 앞 청소년 거리농성 시작

310일까지 예정이었지만 일제고사 연기에 따라 30일까지 진행

34

성적조작 파문으로 일제고사 일정 310일에서 331일로 연기

 

314

일제고사 경쟁교육 반대 명동 청소년 거리 행진 및 퍼포먼스

 

331

초중 일제고사 시행

 

328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 거리집회

 

331

등교거부 행동청소년 오답선언 발표일제고사 반대 거리집회

 

200910월 일제고사

1013/14

초중고 일제고사 시행

 

1013

일제고사 반대 체험학습(진중권 강연뮤지컬영화 등)

일제고사 반대 콘서트

 

1014

일제고사 반대 체험학습뮤지컬 등

 

200912월 일제고사

1217

일제고사로 인한 학생인권 침해 국가인권위 집단 진정

 

1223

1, 2 일제고사 시행

 

1223

일제고사 반대 동시다발 1인시위스케이트 타기일제고사 반대 문화제

 

20103월 일제고사

39

초중 일제고사 시행

 

39

일제고사 반대 한해살이 준비 체험학습,

일제고사 반대 교육주체 결의대회

 

20107월 일제고사

79

No Test, No Loser - 일제고사 경쟁교육 반대 청소년 거리행동

소위 민주진보교육감들 당선직후라 불참 보장 여부로 논란이 많았음.

713/14

초중고 일제고사 시행

713/14

일제고사 반대 체험학습 및 공연관람,

일제고사교원평가 폐지 문화제

그 이후

20113

해직교사 징계 무효 판결

축하 및 복직 촉구 기자회견

 

20117

일제고사 반대 체험학습

아수나로 구미광주 등 지부에서 일제고사 반대 서명운동 및 활동

 

2011

1, 2 일제고사 폐지

 


2013

초등학교 일제고사 폐지

 

▲ 일제고사 반대에 관한 청소년운동의 주요 활동 및 사건 정리




  일제고사 반대 운동을 거치면서 청소년운동은 교육 문제에 대해 더 풍부한 이해와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그와 동시에 교육운동 주체들과의 관계 설정과 입장 차이에 대해서도 더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일제고사 반대 운동을 통해서 ‘시험’이나 ‘평가’, ‘서열화’ 등에 대해서 청소년운동에서 입장을 정리할 수 있었던 덕분에 일제고사 외에도 다른 여러 시험들에 대해서 주장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 2011년, 아수나로 서울지부는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을 하는 와중에 교육과 학생인권을 주제로 거리 집회를 기획했다. ‘실종신고 - 사라진 교육과 학생인권을 찾습니다.’라는 제목의 이 집회에서는 “중간기말부터 수능까지 시험을 폐지하라”라는 등, 아수나로의 교육 변혁 요구 내용이 담겼다. 이러한 주장이 가능해진 것은 일제고사 반대 운동을 거치면서 얻은 성과였다.



교육감 선거 관련 대응


  일제고사 반대 운동을 이야기하면서 교육감 선거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언급했었다. 교육감 선거에 관련된 운동은 사실 정치적 권리 부분에서 더 자세히 다룰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더 구체적으로 서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교육감 선거와 관련해서 교육운동 주체들과의 갈등이나 청소년운동의 교육에 관한 주장 등을 간단히 살펴볼 필요는 있다.


  교육감 직선제가 도입되고 난 뒤 아수나로가 가장 먼저 관련해서 한 활동은 200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에 한 ‘기호0번 청소년 교육감후보’ 운동이었다. 청소년들이 교육감 선거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담은 퍼포먼스성 운동인 동시에, 선거 공약의 형태를 빌어 아수나로 등 청소년운동이 교육에 관해서 요구하던 주장들을 표출한 운동이기도 했다. 이 운동은 이후에 2010년 전국에서 동시 교육감 선거가 이루어질 때는 전국적인 단위로 좀 더 확대해서 진행되었다.


  기호 0번 청소년 교육감 후보 운동의 의미는, 당시에 모든 소위 진보적 교육시민사회단체들이 교육감 선거에 결합하여 선거운동에 나설 때 아수나로는 청소년운동의 목소리를 따로 내기로 했다는 데 있다. 물론 거기에는 청소년은 선거에 참여할 수도 없고 선거운동도 할 수 없는 현행법의 탓도 있다. 그렇다 해도 청소년단체 내의 비청소년들이 선거운동에 결합하는 등의 방식으로 소위 민주진보교육감 후보 당선에 역량을 쏟은 청소년운동 단체들도 여럿 있다. 그렇게 하지 않고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을 기획한 것은 아수나로가 청소년운동으로서 여타의 교육운동 주체들과 선을 그은 활동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기호 0번 청소년 후보의 공약을 보면, 2008년에는 학생인권 보장과 입시폐지 등 청소년운동이 그동안 해온 대표적 주장들을 나열하는 수준이지만, 2010년에는 좀 더 심화되어서 시험제도나 학교 안에서의 노동 등에 대해서 여러 주장을 담은 공약집을 냈다. 이는 청소년운동이 학생들의 입장에서 각종 교육정책들에 대해 해석과 발언을 시도한 것이다.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과 함께, 2010년과 2012년과 2014년 등에 지역에서 ‘민주진보교육감 후보 추대위원회’들에 참여했던 사례들이 있다. 아수나로는 참여를 통해서 교육감의 공약 사항 등에 학생인권 등의 내용이 최대한 반영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기는 했으나 추대위 참여는 그리 순탄치는 않았다. 2012년, 서울지역에서는 추대위가 내부 경선 후보들 사이의 표 계산 속에 청소년의 경선 선거인단 참여를 축소, 배제하기로 하는 일이 생겨서 아수나로 등의 청소년단체들이 강력하게 항의했다. 이는 교육운동 안에서 청소년운동의 입지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드러낸 사건이었다.



청소년운동의 교육운동


  아수나로가 해온 교육운동의 역사 위에서, 2010년대에는 청소년운동의 교육운동이라고 할 수 있는 운동들이 등장했다. 아수나로가 기성 교육운동과 달리 독자적인 교육운동을 모색한 이유는 여럿 있을 텐데 가장 근본적으로는 기성 교육운동이 청소년들의 관점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고 청소년들의 주체적 행동을 조직해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는 특별히 결점이라기보다는 기성 교육운동이 교사 등 비청소년 중심으로 조직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경향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경향이 청소년운동과 함께하면서 비로소 부족한 점으로 대두된 것이다. 두 번째로는 기성 교육운동이 정책 제안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나, 혹은 한 번 만든 연대체를 소속 단체들이 책임지고 꾸려나가기보다는 반복적으로 여러 연대체를 만들거나 정파에 따라서 이합집산하는 행동 등에 대해서 실망하고 지친 것도 있었다.


  청소년운동이 새롭게 만든 운동 중 하나는 ‘대학거부’ 운동이었다. 이는 과거 〈입시폐지 운동본부〉의 활동을 청소년운동이 당사자로서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입시폐지 운동본부〉의 활동과 결합하여 2007년, 2008년, 2009년 수능거부선언을 하는 청소년들이 김남미, 박두헌 등 소수이지만 계속 등장했다. 그러나 〈입시폐지 운동본부〉가 2009년 이후로 침체되었고 교육운동 주체들이 운동본부를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도 2010년에는 고려대 김예슬의 대학거부선언이 화제가 되었고, 고3 고다현도 수능시험 거부를 선언했다. 아수나로의 청소년활동가들은 〈입시폐지 운동본부〉와 상관없이 2011년, 독자적으로 대학입시를 거부하는 선언과 운동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투명가방끈’이라는 이름으로 2011년 9월 시작된 이 운동은 열아홉 살 및 고3 청소년들이 함께 참여하는 십수 명의 ‘대학입시거부선언’이 되었다. 또한 이십대 이상의 사람들도 대학을 자퇴하거나 대학을 가지 않은 자신의 선택을 ‘대학거부선언’으로 운동화했다. 〈투명가방끈〉은 희망버스나 거리집회 등에서 캠페인을 하고 입시경쟁교육과 학벌주의, 학력학벌 차별 등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며 존재를 알렸다. 아수나로의 청소년활동가들이 시작하고 아수나로가 조직적으로 결합했던 2011년 투명가방끈 운동 이후 〈투명가방끈〉이라는 별도의 단체가 만들어지기에 이르렀다. 이 운동은 입시폐지 대학평준화 운동이 동력을 잃어버린 와중에, 아수나로를 비롯한 청소년운동이 ‘대학입시거부자’로서 입시경쟁체제에 반대하는 정체성을 전면에 드러내고 실천의 방법을 찾아나갔다는 의의가 있다. 또한 청소년운동의 문제의식을 이른바 청년운동, 이십대나 대학생의 문제로까지 넓혔다는 의의도 있을 것이다.


  이에 더해서 새롭게 제기한 청소년운동으로서의 교육운동으로 ‘학습시간 줄이기’ 운동이 있다. 아수나로는 2014년부터 전국적으로 집중할 공동의 새로운 의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여러 논의를 거쳐, 다수의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교육 문제를 청소년들의 입장에서 재해석해서 운동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학습시간 줄이기’ 운동이다. 이는 학생들의 삶과 인권의 관점에서 한국 교육의 문제를 볼 때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문제가 너무나 긴 학습시간과 부담의 문제라고 보고 학습시간을 줄이라는 것을 교육운동의 의제로 제안한 것이다.


  아수나로는 약 1년에 걸쳐서 공교육과 사교육 등을 넘나드는 학습시간 줄이기의 핵심 주장들을 다듬고, 지부별로 토론을 하고, 운동방법 등을 논의했다. 그리고 2014년 하반기부터 ‘내 시간을 돌려줘! - 학습시간 줄이기’ 운동이 첫 발을 떼었다. 이 운동은 학습시간 줄이기를 요구하는 서명운동, 강제학습 실태조사, 전국 학습시간 및 학습부담 실태조사, 어린이날 맞이 거리 공부 퍼포먼스, 세계교육포럼 대응 한국 교육 실태 고발, 방학이나 수업시수나 강제보충자율학습 등의 관련 이슈들에 대한 대응으로 이루어졌다. 여러 상황 속에 이 운동이 아직 크게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하였으나 많은 청소년들의 호응을 받았고 다른 교육운동 단체들에서 하는 학원을 일요일에 쉬도록 하자는 운동이나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자는 주장, 그리고 주목을 받기 시작한 청소년의 놀고 쉴 권리(여가권) 등과 만나서 어느 정도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이후로 여러 가지 교육 상황이나 사회적 상황들이 한층 더 악화되면서 운동의 여건은 더 어려워져지고 있다. 특히 〈전교조〉 법외노조화 등 교육운동 전반에 대한 탄압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등 여러 현안들이 터지고 청소년 대중들이 이에 대해 반대하며 목소리를 내고 행동에 나서는 일도 생기고 있다. 아수나로는 교육과정 문제나 역사교과서 사안 등에 대해서, 반대하는 측에서도 청소년을 어떤 식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논의만 무성한 것을 지적했다. 그리고 교과서와 입시에 갇힌 교육을 벗어나 청소년이 주인인 교육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내고 지부에 따라서 지역에서 활동을 만들면서 청소년운동의 입장에서 실천과 목소리를 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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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나로
2020-06-23
조회 7

아수나로 10년 활동의 역사

보호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2016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10주년 기념 자료집 〈어설픈하지만 망하지 않은〉 수록

 

 

청소년 보호주의가 청소년인권의 문제로 인식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청소년운동이 처음부터 보호주의라는 말을 쓴 것도 아니다여러 사회 운동들이 그렇듯청소년운동도 기존의 개념과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들을 운동을 통해 새로운 언어로 만들곤 했다. ‘청소년 보호주의가 그런 언어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아수나로가 주력해온 학생인권운동은 말 그대로 학교 안 학생들의 인권침해에 대응하고 문제제기하는 활동이었다하지만 학교 밖에서도 청소년인권이 보장된다고는 할 수 없었다청소년들은 학교뿐 아니라 가정사회 곳곳에서 차별과 억압폭력을 마주하게 된다참정권 문제만 보아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성년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떠한 권리도 가질 수 없다가정 내의 폭력 문제는 또 어떠한가노동 현장에서는이렇듯 아수나로는 학생인권을 포함해 청소년들이 겪는 억압과 권력구조를 인식하고 이를 바꾸기 위한 운동을 만들고 있다.


청소년들의 자유와 권리를 가로막는 많은 이유들이 있다그리고 그 중 어디서나 보이는 강력하고도 일반적인 이유가 바로 청소년을 보호/선도하기 위해서라는 말이다하지만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그것은 정말 청소년들을 위한 것인가청소년들은 어떤 보호를 원하는가해답을 찾기 위한 첫 걸음은 청소년운동에서 청소년을 보호 대상으로 보고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결과적으로 인권을 억압하는 문제에 대해 청소년 보호주의라는 개념을 만들고 이런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보호주의라 이름붙이다

 

…… 아수나로는 청소년의 인권을 침해하고 억압하는 모든 사회적구조적 요소들이 없어진 세상을 만들기 위해 행동합니다구체적으로는학교와 교육정치노동가정 등등사회 전반에 걸쳐 내재되어 청소년들특히 소수자 청소년들에게는 배타의 딱지를 붙여 몇 배의 차별과 폭력을 가하는 온갖 반인권적 요소들에 반대하고 저항합니다지향점으로는 청소년이라는 신분 때문에 받는 사회적 억압과 차별이 존재하지 않고교육제도를 포함한 국가와 가정 등의 사회구조가 가하는 고통으로부터 해방되며, ''라는 존재를 스스로 창조하고 실현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는 세상 ……

 

아수나로 기본원칙 중 일부이다우리는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는 관점을 접할 때가 많다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미성숙’ 딱지를 붙이고, ‘미성숙하기 때문에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으며그래서 이유 없는 반항을 하기도 하고그 반항으로 인해 위험에 처하기도 한다고 말한다또한 불완전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휩쓸리기 쉽고아직 자라나고 있기에 미래를 향한 꿈과 이상을 가지고 살아야 하며어른들은 이를 보호하고 지켜줘야 한다고 말한다이 논리는 우리 사회와 문화 곳곳에 스며들어 있어서 우리 아이들미래를 위해 어른들이 무언가를 해주어야 한다는 말들은 자주 사용되고 그만큼 사람들에게 쉽게 먹혀든다.


청소년을 미성숙하게 보는 것은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을 위하는’ 제도와 문화를 낳는다청소년들은 과거에 비해서 더 많은 관심을 받게 되었고 가족과 부모와 학교와 국가의 특별한 보호를 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게 되었다청소년들은 경제적 책임이 상당 부분 면제되고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가중 처벌을 받으며청소년 범죄자에 대한 처벌은 상대적으로 좀 더 교화에 초점을 맞춘다가족의 보호 하에 있지 않은 청소년들은 국가에서 맡아서 지원하고 양육한다.


그런데 이러한 보호에는 다른 한편으로는 통제의 성격이 있다. ‘청소년 보호단지 직접적 위험을 차단하는 것만이 아니라청소년들을 비청소년-국가가 원하는 바람직한 존재로 만들려는 행위이고 제도이기 때문이다그래서 청소년보호’ 속에는 심의 제도와 같은 문화적 통제나 자기결정권의 제한나아가서는 사생활 침해종교·사상 강요 등까지도 포함된다더군다나 보호가 청소년에 대한 폭력과 차별을 조장하는 역설적인 상황까지 일어난다예컨대청소년은 부모의 보호 하에 있어야 한다는 믿음 속에 부모는 청소년을 통제하고 때로는 폭력을 가할 권리까지 인정받는 것이다학교가 청소년의 연애/섹스에 대해 가하는 처벌흡연을 한 청소년에게 가하는 처벌 등도 그런 예이다이런 논리는 청소년들이 정치적 집회나 정당 등에 참가하지 못하게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에까지 이르고 있다.


요컨대근대 이후 체계화된 청소년 보호는 일면에서는 청소년의 인권 상황을 개선하는 효과를 가진다하지만 동시에 청소년의 인권이 침해당하기 쉬운 환경을 만드는 성질을 갖고 있으며때로는 청소년의 권리를 직접적으로 부정하는 요소까지 가지고 있다그래서 아수나로의 운동은 청소년 보호의 모순적/이중적인 태도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사회의 모습에 주목하게 되었다.

 

 

문제의식의 확대 : 2008 촛불 집회에서의 경험

 

2008년은 사회적으로도 큰 사건이 있었던 시기이자아수나로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시기이다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고 있던 2008년에 미국산 광우병 소고기’ 수입 문제가 불거지며 이에 반대하며 전국적으로 촛불시위가 열렸다처음에는 미국산 소고기대운하 건설’ 등 주요 이슈가 되는 문제들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시위를 채웠다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입시경쟁교육’, ‘학교자율화’ 등 청소년들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한 움직임도 커졌다아수나로도 〈청소년직접행동〉이라는 연대체를 조직하여 청소년들이 모이는 집회를 여러 청소년단체들과 함께 공동으로 기획했고 이런 흐름을 타고 청소년 회원들이 급증하기도 했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는 촛불을 든 여러 사람들을 나타내는 의미로 다양한 아이콘들이 등장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촛불소녀였다촛불소녀는 소녀라는 이미지를 내세움으로써 기존의 여성/청소년들의 약자로서의 이미지(‘촛불이라는 상징물과 결합하여 더욱 강화된)를 재현하고 있다고 읽힐 소지가 있었다애초에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은 촛불집회 현장 곳곳에서 나타났다대표적으로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피켓과 구호가 있었다이는 아이들/청소년은 우리들에 함께하지 않는 존재로어른들(=‘우리들’)이 지켜줘야 할 보호의 대상으로 설정했을 때에만 가능한 구호였다이뿐만 아니라 많은 집회 참여자들은 집회 현장에서 만난 어린이-청소년들을 상대로 기특하고 대견한 아이들이라고 표현하거나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고백했다어느 주최 단체는 밤 10시 이후에는 집회에 참여한 청소년들을 자진귀가시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당시 교육부와 교육청이 학생들이 집회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감시하고적발된 학생들에 대해 징계와 불이익을 주는 일도 있었다대학생들의 동맹휴학지지하면서 중고등학생들의 등교거부’/‘휴교시위에 대해서는 으름장을 놓았다이 모든 사건들이 2008년 촛불집회에서 일어난 일이었다서로 주체도 방식도 조금씩 다르지만청소년들에 대한 차별과 배제대상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완전히 같은 문제였다.


〈청소년직접행동〉 등의 활동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청소년들을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보호의 대상으로 여기고동등하고 평등한 주체가 아닌 다른 세상(또는 미래)의 존재로만 바라보기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아이들이 무슨 죄냐 우리들이 지켜주자라는 피켓과 구호를 패러디하여 어른들이 무슨 죄냐청소년이 지켜주자라는 구호를 외치고거리에서 청소년은 오늘을 사는 주체라는 문구를 락카로 새겼으며청소년들을 평등한 존재로 대하라는 발언을 하는 등 촛불집회 안에서의 활동을 이어나갔다그리고 이맘때 아수나로가 참여하고 있던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는 보호주의팀이 꾸려졌다보호주의팀은 청소년 보호주의에 대한 흩어져있던 이야기들을 엮어 담론을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청소년 보호주의가 무엇인지이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청소년들을 약자-소수자의 위치로 머무르게 하는지왜 사회적으로 이런 문제들이 유지되는지 등에 대해 논의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실천은 이후 아수나로와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의 활동가들이 함께 작업하여 출판한 청소년인권 도서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인권을 넘보다》(2009, 메이데이)에도 반영되었다이렇듯 2008년 촛불집회에서의 경험은 청소년 보호주의’ 문제를 가시화하고 정리할 수 있게 된 계기였다청소년 당사자의 입장에서 단지 무시당하는 느낌이다’, ‘기분 나쁘다라는 감정과 생각들로만 공유되어왔던 문제의식을 청소년운동의 눈과 입으로 꼼꼼히 들여다본 것이다이런 비판 작업을 통해 아수나로는 다 너희를 위한 것”, “아직 어리니까” 같은 좋은 말로 포장된 청소년 보호주의의 이면을 파헤칠 수 있었다.

 

 

온라인게임 셧다운제와 청소년보호법 등에 반대하다

 

청소년 보호를 대표하는 제도로 청소년보호법을 꼽을 수 있다아수나로의 청소년운동과 청소년보호법의 악연은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간다어쩌면 이 악연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1997년 미성년자 보호법을 대신해 제정된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에게 유해한 매체물과 약물 등이 청소년에게 유통되는 것과 청소년이 유해한 업소에 출입하는 것 등을 규제하고청소년을 청소년폭력·학대 등 청소년유해행위를 포함한 각종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보호·구제함으로써 청소년이 건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일명 ‘19’, ‘청불’ 등의 딱지를 붙이는 것 대부분이 청소년보호법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청소년보호법은 아수나로 이전부터도 청소년운동 단체나 시민사회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문화연대〉는 2000년부터 청소년보호법이 청소년의 인권을 침해하고 문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이유로 청소년보호법을 반대하며청소년이 사회적 주체로 인식되고 매체에 대한 판단도 수용 주체인 청소년에게 맡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만화가 등 창작자들도 청소년보호법으로 이루어지는 과도한 심의와 검열 등을 비판했다인권단체들의 개정 운동으로 청소년유해매체물 기준에서 동성애를 명시했던 조항이 삭제되기도 했다이처럼 청소년보호법의 내용과 방식기준은 계속해서 논란이 되어왔다.


아수나로가 만들어졌을 무렵에도 청소년보호법에 의한 청소년에 대한 과도한 규제가 사회적 문제로 불거지고 있었다이는 00:00~06:00시까지 청소년의 온라인게임 접속을 금지하는 청소년보호법 개정안과 22시 이후 보호자 동행 없이 청소년 찜질방 이용 금지 내용을 담은 공중위생관리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 때문이었다결국 밤 10시 이후 청소년들의 찜질방 출입을 금지하는 법안이 200511월에 통과되었다당시 〈한나라당〉에서는 청소년의 야간 온라인게임 이용을 규제(이하 온라인게임 셧다운제’)하는 청소년보호법 개정을 시도했으나 진주 지역 단체인 〈행동하는 청소년〉그리고 〈한국청소년모임〉 등의 반대 운동과 게임산업계의 반발 등으로 주춤했다아수나로에서 2005청소년인권연구포럼이던 시절 발표했던 최초의 성명도 온라인게임 셧다운제에 반대하는 내용이었다이후 2006년과 2008그리고 2010년에도 정부는 지속적으로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결국 20114국회를 통과하여 같은 해 11월부터 만 16세 미만 청소년들 야간 온라인게임 접속이 금지되었다.


아수나로는 2005년 성명을 발표한 이후온라인게임 셧다운제가 현실화되어가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문화연대〉 등과 함께 반대의 목소리를 냈다특히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도입 가능성이 높아진 2010년 이후에 주로 반대 운동을 함께했다온라인게임 셧다운제에 대한 반대 의견은 몇 년에 걸쳐 여러 차례 제기되었던 바 있다하지만 그 반대 의견들은 게임/문화산업계 측의 의견이 대다수였으며 이는 정부에서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검토할 때 청소년들의 의견과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도존중하지도 않았다는 뜻이었다온라인게임 셧다운제 찬반 토론은 어른들끼리한쪽에서는 청소년 보호를 외치고 한쪽에서는 게임/문화산업의 이익을 외치는 구도가 되어갔다정작 이 제도로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당사자인 청소년들은 아무런 힘도 써보지 못하고 제대로 의견을 피력할 수도 없는 억울한 상황이었다그래서 아수나로는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반대 운동에서 청소년들의 목소리로청소년들의 삶에서 온라인게임 셧다운제가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밝히고 이런 목소리들을 반영하는 것부터 시작하려 했다.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반대하는 논거 중 게임/문화산업의 손해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하면대부분은 청소년의 행복추구권 침해 문제와 실효성 문제를 지적하는 것이었다아수나로는 이에 덧붙여 청소년들의 시선에서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정리하여 아수나로의 논리와 입장을 알리기 위한 활동을 진행했다아수나로에서는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풍자하는 차원에서 차라리 입시/공부 셧다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풍자이긴 했지만청소년들의 수면권과 건강을 위해청소년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를 만들겠다고 하는 정부에게 일침을 가하는 말이기도 했다그들이 정말로 청소년의 행복과 건강을 걱정하는 것인지아니면 청소년들이 공부는 안 하고 게임하고 노는 것을 싫어하는 것인지 따져 묻는 것이기도 했다실제로 2011년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반대 전국 동시다발 1인시위를 기획하며광주지역모임과 수원지역모임에서는 게임이 아니라 입시교육을 셧다운하라!”, “공부할 땐 마음대로지만 게임할 땐 아니란다셧다운제 반대한다!” 등의 문구를 활용하기도 했다.


또한설령 게임 과몰입이 문제가 된다 하더라도 그 문제가 청소년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그럼에도 16세 미만이라는특정 연령을 기준으로 특정 시간대에 게임 접속을 차단시키는 것은 결국 청소년에 대한 차별이라는 지적도 있었다청소년은 보호라는 명분만 있으면어떠한 규제를 당해도 당연시되는 현실이었다온라인게임 셧다운제는 이런 청소년 보호주의를 나타내는 전형적인 규제 정책이었고이에 반대하는 것은 청소년 보호를 명분으로 불합리한 규제조차 제대로 된 검토와 토론 없이 어른들의 편견에 기대어 시행되어 버리고 마는 현실을 고발하는 일이었다.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반대 운동은, ‘청소년 보호주의가 사실 청소년의 행복과 여가문화를 억압한다는 것을 고발하는 과정이었다아수나로는 청소년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놀 거리를 제공하거나 청소년의 충분한 여가시간다양한 문화공간에 대한 권리는 제대로 보장하지도 않으면서 게임은 어쨌든 문제라는 식으로 오락거리/즐길 거리를 규제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다아수나로는 UN아동권리협약 제31조의 놀 권리’(“어린이는 충분히 쉬고 충분히 놀아야 한다국가는 모든 어린이가 문화와 예술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조항을 인용하며 청소년들의 놀이 문화인 게임에 대해 가지는 편견을 버리라고 주장했다.


아수나로는 1인시위언론 기고온라인게임 셧다운제의 문제점을 알리는 온/오프라인 캠페인을 진행했고16세미만의 청소년 당사자들이 청구인으로 참여하는 헌법소원에 참여했다하지만 헌법재판소는 2014424일에 온라인게임 셧다운제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심지어 같은 날청소년 참정권을 제한하는 각종 법률에 대한 합헌 판결까지 함께 발표하는 바람에 많은 아수나로 회원들과 청소년활동가들이 분노했다이에 아수나로는 425셧다운제는 청소년의 문화적 권리 나아가 청소년의 인권을, '보호'를 내세워 언제든 규제할 수 있다는 권위주의적 편견의 결과물이다이번 판결은 이러한 편견이 일부 부처나 관료들뿐만이 아닌 사법부를 비롯하여 이 사회 전반에 퍼져있음을 새삼스레 다시 한 번 확인해준 셈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또한 430일에는 청소년 참정권 제도 합헌 결정에 대해서도 성명을 통해 민주주의는 나이 먹음에 따라 주어지는 생일 선물도성숙에 따라 주어지는 자격증도 아니다그렇지 않다면 이는 반쪽짜리 그들만의 민주주의일 뿐이다나이가 적다는 이유로 보편적 권리를 박탈할 권리가당신들에게는 없다.”라고 비판했다.


청소년의 참정권을 비롯한 자기결정권이 박탈되는 것이 사회적 통념상’ 가능하다고 본 헌법재판소헌법재판소만이 아니라이러한 편견과 비청소년 중심의 각종 제도와 문화로 이루어진 이 기성 사회의 구조는 여전히 힘이 세다이에 맞서던 많은 청소년들의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 사회는 청소년 스마트폰 구입 시 보호자에 의한 감시 프로그램 설치 의무화각종 문화/미디어/작품에 편협한 기준으로 19금 딱지 붙이기 등꾸준히 청소년 보호와 선도라는 이름으로 청소년들의 다양한 권리에 가위질을 하고 있다.

 

 

뿌리 깊고 당연하지 않은 문제들

 

이후에도 아수나로에서는 내외부적으로 보호주의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갔다그리고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반대 행동에 본격적으로 결합하던 것과 비슷한 시기인 2011년에는 운동사회 내 나이주의 깨기’ 운동이 처음 제안되기도 했다나이주의란 나이 많은 사람들이 나이 적은 사람들을 더 아랫사람’ 취급하고여러 사회적 자원도 불평등하게 배분되는 인식과 구조를 가리키는 말이다청소년을 보호의 대상으로만 보는 청소년 보호주의 역시 나이주의의 일부이다.(더 자세한 것은 백과사전 챕터 참조아수나로는 운동 사회 안에서도 청소년을 보호 대상으로 위치시키고 어른들의 참여를 위한 동기 부여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관행을 계속 비판하곤 했다예컨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어른들이 나서자!” 같은 류의 표어들 말이다운동사회 내 나이주의 깨기 운동 역시이런 측면에서 청소년 보호주의 문화와 관행에 반대하는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


아수나로는 제10회 총회에서 운동사회 내 나이주의 깨기 운동 제안 안건을 논의했고모든 지역모임이 곧장 시작하기보다는 우선 지역모임 차원에서 나이주의에 대한 공부모임을 통해 사업 진행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하지만 이 사업은 사실상 추진되지 못했다활동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역량이 부족했고 지부 중심으로 활동을 해나가기에는 한계가 있는 이슈였다그럼에도 이러한 운동사회 내 나이주의 깨기 운동 제안이 아수나로는 물론 청소년운동 내부에서 환영받았던 것은 아수나로 및 청소년운동이 가졌던 청소년 보호주의나 나이주의에 대한 문제의식들이 공식적인 운동의 의제이자 사회적 문제로 다뤄져야 한다는 지적에 많은 이들이 공감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청소년운동은 학생인권이나 교육 문제 말고도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다깊어지고 넓어진 운동의 고유한 주제들과 고민들이 있었지만운동의 열악한 조건과 모이지 못한 자원은 그 많은 이야기들을 오롯이 담아내기에 역부족이었다청소년 보호주의 반대 운동만의 이야기는 아니겠지만우리는 단발성 대응이 아닌 지속적이고 꾸준한 기획과 담론을 쌓는 일이 필요하다아수나로 10주년을 맞이하여 청소년 보호주의 반대 운동에 대해 정리해 보았고이를 통해 우리가 겨우 첫 걸음마를 뗀 수준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청소년보호법을 폐지시키는 것이 청소년운동의 중요한 목표가 될 수 있을까청소년 당사자들에게도청소년보호법의 문제는 자신들의 인권 문제로 바로 떠오르거나 와 닿지 않는 주제일지도 모른다하지만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들을 문화적사회적으로 배제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고청소년 보호주의의 논리를 그대로 두었을 때 온라인게임 셧다운제나 청소년 스마트폰 감시 프로그램 설치 의무화처럼 청소년들의 삶과 권리를 더욱 더 침해해 들어오게 된다사실 수많은 청소년인권 침해가 청소년은 보호의 대상이라는 논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이토록 청소년들의 삶 구석구석에 당연한 듯 스며들어 있는 뿌리 깊은 청소년 억압의 논리도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허공을 맴돌기만 했던 우리의 문제의식들을 이제는 우리 운동의 현장으로청소년의 삶의 현장으로 보다 가깝게 데려올 필요가 있다전사회적인 청소년 보호’ 정책들을 꼼꼼히 따져보는 작업부터 시작할 수도 있을 것이다앞으로도 보호의 얼굴에 숨겨진 차별과 권력구조에 맞서기 위해서는 청소년 보호주의와 청소년보호법에 대한 더 많은 불만과 경험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그럼으로써 당연하게 보이는 청소년 보호의 논리와 현실이, ‘당연하지 않은 것임을 밝혀야 한다청소년보호법 폐지는실질적으로 그리고 상징적으로 청소년 보호주의 논리를 깨는 한 단계가 될 수 있다이런 작업과 운동을 통해서 청소년 보호주의 반대의 목소리와 청소년의 자기결정권 보장을 옹호하는 활동은 더욱 힘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아수나로뿐만 아니라 다른 청소년 단체들이 함께 이 운동을 기획하고 길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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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나로
2020-06-23
조회 2

아수나로 10년 활동의 역사
청소년에게 민주주의와 정치를


(2016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10주년 기념 자료집 <어설픈, 하지만 망하지 않은> 수록)



‘정치’의 의미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만큼,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역시 폭넓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정치적 권리는 좁게는 청소년들이 선거나 정당, 국가기구에 참여할 수 있는 참정권을 뜻하며, 넓게는 언론·표현·집회·결사의 자유, 자신들의 권익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도 정치적 권리에 해당된다. 그리고 청소년 중 다수가 학생이기 때문에,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언론·표현·집회·결사의 자유, 학교 운영에 학생의 참여와 의견 반영 보장, 학생자치활동, 학교 민주주의 등의 의제들도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문제라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 안에서의 정치적 권리 문제에 있어서는, 아수나로는 ‘학생자치’에 중점을 두고 학교 안에서 학생들의 정치적 활동 여건을 개선하려 하는 전통적인 접근법과는 관점을 달리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무엇보다도 현실의 학생회에는 한계가 많기에, 학생회 중심으로 보기보다는 아래에서부터 학생들의 언론·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라고 요구하거나 학생들의 집회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등 기초적인 정치적 권리 문제들로 운동을 전개해왔다. 민주주의나 자치활동이 제대로 가능하려면 먼저 말하고 행동할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이러한 학교민주주의 문제에 관해 아수나로가 활동했던 것들은 주로 학생인권 운동의 역사 부분에서 다루었다. 이 글에서는 청소년들의 참정권이나 일반적인 집회·결사의 자유 등의 문제에 관해 활동해온 것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지금까지 아수나로가 해온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활동은 중요한 선거나 사건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많이 이루어져왔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정치’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선거 시즌이나 촛불집회 같은 큰 사건이 벌어졌을 때나 관련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현재 많은 청소년들에게 정치는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생각되고 있고 정치적 권리가 보장되고 있다고 할 만한 부분도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수나로가 “청소년인권행동”으로 첫 발을 내딛는 계기가 된 2005년의 내신등급제와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촛불집회는 ‘집회의 자유’를 비롯하여 학생들이 학교 규칙이나 교육정책 결정에 참여할 권리 등 정치적 권리의 문제가 전면에 제기된 사건이기도 했다. 또한 아수나로가 만들어진 2000년대 중반은 청소년의 사회 참여가 중요한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진보정당 청소년위원회나 18세 선거권 운동 등으로 청소년의 참정권이 중요한 운동 의제로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학생회 법제화와 학교운영위원회에 학생 대표 참여 등, 학교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를 제도화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무엇보다 청소년운동 그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활동이기 때문에 우리의 운동과 정치적 권리 문제는 따로 갈 수 없는 노릇이다.

이처럼 초기부터 아수나로가 품고 있던 ‘정치적 권리’에 대한 문제의식은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에 관한 대중적 촛불집회가 벌어진 것을 계기로 구체화되었다. 2008년 촛불집회부터 시작해서, 아수나로가 중요한 선거에 대응하기 위해 기획했던 활동 등 두드러지는 주요 활동들 위주로 살펴보도록 하자.


2008년 촛불집회

아수나로가 정치적 권리를 주제로 한 활동을 본격적으로 한 계기는 바로 2008년 ‘광우병 위험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였다. 이 집회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재개하면서 소위 ‘광우병’(소해면상뇌증 및 변형크로이츠펠트-야곱병)의 문제 등에 관해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수준까지 개방을 결정한 것이 알려지자 시민들이 반발하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5월 2일 첫 집회는, 주최 단체들의 예상을 넘어 1만 명이 넘는 참가자를 기록했으며 그 중에는 청소년들의 참여율이 높은 것으로 알
려졌다.

사실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는 그 전부터 계속 열리고 있었다. 아수나로도 다른 청소년단체들과 함께 4월에 이명박 정부의 ‘학교자율화 조치’(교육청이 갖고 있던 각종 학교 운영에 관한 지침들을 축소시키는 조치. 0교시나 강제자율학습 금지 등도 이 지침들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학생인권을 후퇴시킬 위험이 크다는 비판이 많았다.)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5월 집회에 예상을 넘어선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은 ‘광우병’ 우려 소고기 수입 문제가 직접적 계기가 되었지만, 교육 정책 문제를 비롯하여 이명박 정부가 인권과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것으로 우려되는 정책들을 급하게 추진하면서 이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던 배경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촛불집회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가 표면적인 중심 이슈였으나, 그 안에서는 검역주권, 건강권, 반미나 반일, 독도 문제나 민족주의, 민주주의, 언론 및 집회의 자유 등 다양한 이슈들이 소용돌이쳤고 교육 문제나 학생인권, 노동자들의 권리, 각종 소수자들의 권리 이야기까지 오가는 ‘광장’이 만들어졌다. 여기에는 단체로 조직되지 않은 시민들도 많이 참여했고, 촛불집회를 계기로 인터넷 카페 등 형태로 새로운 모임과 단체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청소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전국청소년학생연합〉, 〈촛불소녀의 코리아〉, 〈의식이 깨어있는 청소년 연합〉 등의 단체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5월에 시작된 촛불집회는 2개월 이상 이어졌다. 촛불집회에는 청소년들도 많이 참여했고 아수나로의 각 지부들도 각 지역의 집회에 지속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면서 촛불집회의 광장 안팎으로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진영을 가리지 않고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평등하게 인정하지 않거나 폄훼하는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보수언론들에는 ‘잘 알지도 못하는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전교조 등에 의해 선동을 당해서 저렇게 시위에 참여한다’, ‘청소년은 비정치적이여야 한다.’, ‘청소년들은 공부를 해야 할 때’와 같이 청소년의 주체성을 무시하는 기사들이 마구 실렸다. 또한 집회 내부에서도 “미친 소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켜내자”와 같은, 함께하는 청소년들을 ‘보호 대상’으로 격하시키는 발언들, 밤 10시 이후에는 청소년들은 귀가 조치하라거나 ‘부모동의서’를 갖고 집회에 참가하라는 등 주최 측의 차별적인 방침들이 나왔다. 또 교육청과 학교 차원에서 학생들이 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막고 집회에 교사가 참석해서 감시하는 일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참여한 학생들을 처벌하는 일, 집회신고를 낸 청소년을 경찰에서 학교까지 찾아가서 압박하는 일 등 집회의 자유 침해 사건들이 일어났다.

아수나로는 이런 상황에 대응하여 청소년의 집회의 자유, 정치적 활동의 자유를 주장했다. 2008년 5월 8일에 「청소년들을 평등한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라!」라는 성명을 내고 다음 날에는 청소년의 집회 및 정치적 참여 탄압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그리고 촛불집회 현장에서는 청소년의 집회의 자유 등 정치적 권리를 보장하고 존중할 것을 요구하는 유인물을 배포했다. 그 과정에서 아수나로 활동회원들이 나눔문화에서 만든 “촛불소녀”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는 의견을 제시하며, 촛불집회 내부에서도 청소
년에 대한 차별적인 인식들이 재생산되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더 자세한 내용은 ‘보호의 대상이 아닌 권리의 주체로’ 참고.)

뒤이어 5월 17일에는 아수나로를 비롯한 청소년단체들이 대전, 부산, 서울, 울산에서 <5.17청소년행동>이라는 집회를 개최하였다. 이 집회는 단체들이 미리 그날 하기로 결정하고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유포자가 누구인지 모를, ‘5월 17일에 등교거부/휴교시위를 하자’는 문자메세지가 빠르게 돌자 이에 호응하여 실제로 집회를 열기로 결정하고 준비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 청소년들 사이에서 촛불집회의 열기가 매우 대단했음을 보여준다. 이 집회를 통해 아수나로 등 청소년단체들은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문제를 중요하게 제기하고자 했다. 당시 대학생들은 ‘동맹휴학’을 하겠다고 했을 때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많은 지지와 호응을 받았지만, 초중고등학생들의 등교거부 시위 제안은 철없거나 섣부른 제안으로 치부되곤 했다. 청소년단체들 사이에서도 ‘휴교시위’ 등의 내용에 응할 것인지 말 것인지 의견이 갈리기도 했다. 이런 현실을 비판하면서 아수나로는 청소년들이 정치적 주장을 하기 위한 실천으로 등교거부, 자체 휴교를 얼마든지 할 수도 있음을 말하고, 학교를 안 가고 행동하고자 하는 청소년들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서 행동을 준비했다.

5.17행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시위 참여를 막는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하기도 하였고 집회 참가부터 등교거부와 불매운동 등을 전제로 한 청소년 불복종 선언을 모았다. <5.17청소년행동>의 메인 구호는 “미친소 미친교육 청소년이 바꾼다”였다. 그 당시 촛불집회에서는 광우병 우려가 있는 소고기를 빗대어 “미친소”라는 표현을 널리 쓰고 있었다. 아수나로 내부에서는 이런 표현이 공장식 축산의 희생자인 소들을 악마화하고 구조적 문제를 잘 보이지 않게 한다는 점, 그리고 청소년인권이나 민주주의에 대한 여러 문제들은 드러나지 않게 된다는 점 때문에 “미친소”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대해 문제의식이 있었다. 그러나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청소년들의 공감대를 고려하여, 그리고 교육정책에 대한 불만을 담기 위해서, “미친소 미친교육”을 내걸었다. 서울 대한문 앞 집회에는 약 200명 정도의 청소년이 참여했고 집회 이후 시청광장의 대규모 촛불집회로 합류했으며, 같은 날 〈10대연합〉도 명동에서 집회를 한 뒤 행진을 하여 시청광장으로 합류했다. 대전, 부산, 울산에서도 수십 명 규모로 청소년행동 집회를 진행했
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이런 상황들을 겪고 대응해 나가면서 아수나로에서는 좀 더 보호주의나 정치적 권리 등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주장을 다듬었다. 또한 이를 통해서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 침해 등 개별적으로 인식하던 정치적 권리 문제를, 청소년 보호주의나 나이주의 등의 문제와 연관지어서 더 넓게 이해하고 비판할 수 있었다. 또한 2008년 촛불집회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아수나로에 참여하여 활동을 하게 되었다. 2008년 촛불집회는 조직화되지 않은 청소년들 다수가 개별적으로 참여하는 대중적 행동의 대표적 사례였으며, 이후에도 청소년들의 시국선언이나 세월호 참사에 관련된 행동 등으로 유사한 모습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아수나로 역시 2008년 이래로 이러한 활동들에 어떻게 함께하고 청소년인권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해나가고 있다.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


2008년 촛불집회의 와중에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이 기획되었다. 2008년 7월 서울시 교육감 선거가 있었고, 이때 여러 청소년단체들이 함께 준비해서 서울지역에서 진행한 활동이다. 2010년 교육감 선거 때는 전국의 아수나로 지부들이 모두 같이 활동을 진행했다. 2007년 대선 당시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중앙선관위의 “청소년은 인터넷에 선거 관련 UCC 제작 금지” 발표를 비판하고 인권침해로 진정을 내는 일을 하기는 했으나, 지속적인 활동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따라서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은 아수나로가 처음으로 기획적으로 시도했던 직접적 선거 대응 활동이었다고 할 수 있다.
<5.17청소년행동>을 공동으로 준비하던 〈5.17청소년행동 공동준비모임〉은 집회 이후 〈청소년직접행동〉이라는 이름의 연대체로 전환했다. 여기에는 〈교육공동체 나다〉와 〈아수나로〉, 그리고 〈문화연대〉의 활동가나 다른 여러 개인 청소년활동가들이 참여했다. 2008년의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은 이 〈청소년직접행동〉 차원에서 제안되고 진행되었던 활동으로, 촛불집회 때 만들어진 〈전국청소년학생연합〉도함께했다.

교육감 직선제 도입에 따라서 임기를 맞추기 위해서 재보궐로 지역별로 돌아가며 교육감 선거가 치러지고 있었다. 그런데 청소년 중 다수는 학생이고, 현실적으로 교육감 선거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게 되는 사람들은 초중고등학생들이다. 그럼에도 청소년에게는 선거권조차 없는 현실, 그 결과 선거운동 와중에도 청소년들은 ‘유령’처럼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다뤄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교육감 선거에 대응을 해보자는 논의가 싹텄다.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선거운동본부는 7월 17일 출마선언부터 7월 30일 선거 당일까지 청소년의 관점에서 공약을 내세우고 포스터 등을 만들어 붙이며 선거운동을 하였다. 유세는 촛불집회 현장에서 주로 했고 번화가에서도 진행했다. 주요 구호로는 “이딴 교육 받으면 한 달 만에 2MB 된다.” “못 뽑으니까 나와봤다.”, “현장경험 풍부 시험만 골백번!” 등이 있었다.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었던 분위기가 반영되었고 청소년들의 교육주체로서의 당사자성을 강조했다. 또 특정 인물이 아니라 ‘청소년’이라는 집단적 명칭을 후보로 내세운 것은, 특정 개인을 후보로 만들게 되면 운동의 성과가 특정 개인에게로 모이게 되고 그것이 운동적으로 좋지 않다는 문제의식, 청소년의 참정권을 집단적으로 요구하는 운동이라는 상징성, 그리고 청소년 당사자가 공개적으로 얼굴을 포스터에 넣기에는 탄압 등의 위험성이 있다는 점이 고려되었다.

당시 서울시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로는 주경복 후보가 선거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청소년운동은 주경복 후보를 지지하는 등의 선택을 하지 않고, 기호 0번 청소년 후보를 내세우고 ‘후보단일화도 거부’하며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주장하고 교육정책에 청소년 참여 보장을 요구하였다. 비록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이 소규모 활동이었고 대중적 참여를 이끌어 내거나 면밀한 준비 속에 진행되지는 못했지만, 청소년운동은 선거라는 이슈 속에서 이 운동을 통해 그나마 선거권이 없는 청소년들의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었다.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은 2008년 촛불집회 중 성장한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문제의식 그리고 촛불집회의 새로운 실험에 열려 있는 분위기 위에서 탄생한 활동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과거에 선거 때면 ‘선거권 제한 연령 완화’를 요구하던 운동 방식을 넘어 ‘가상 후보’라는 방식을 이용하여 운동의 주장을 다양한 층위와 방식으로 전달하고자 한 것이 이 운동의 특징이었다고 할 수 있다. 평등하게 대우받고 싶으면 마치 이미 평등해진 것처럼 행동하라는 말이 있다.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은 청소년들의 존재를 2008년 선거에서 드러나게 함으로써 이 말을 실천으로 옮긴 활동이었다.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은 다시 2010년 2차로 전개되었다. 2010년 1월, 수원에서 열린 아수나로 제6회 총회에서는 그해 6월로 예정된 지방선거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선거운동이 금지된 청소년들이 몇몇 후보에 대한 낙선운동을 대놓고 하는 형태로 일종의 불복종 운동을 펼쳐나가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벌금 등의 위험성에 비해서 실제로 얻는 이득이 별로 없을 것 같다는 회의적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다시 한 번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을 진행하면서 청소년 참정권을
부각시키기로 결정하였다.

전체 활동의 기획은 2008년에 이미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을 진행해본 적이 있던 서울지부에서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교육감 선거에 기호 0번 청소년 후보를 출마시키는 형식이었다. 4월 말에 첫 운동본부 회의가 꾸려지며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었고 5월 초에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정책논의 워크숍이 열렸으며 5월 15일에 서울, 수원, 창원에서 출마 기자회견을 열었다. 학교 앞 선전전, 벽보 붙이기는 기본이었고 학생들과의 간담회도 여러 번 만들었고 언론에 칼럼도 기고하였다.

2008년에 비해 2010년의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이 달라진 점은 아수나로에서 자체적으로 기획하고 진행한 전국적인 활동이었다는 점이다. 2008년 때는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대응하는 활동이었다 보니 서울에서만 활동이 이루어졌고 촛불집회에 대응한 여러 청소년단체들이 연합해서 활동을 진행했다. 반면 2010년에는 전국선거에 대응하여 아수나로가 주체가 되어 자체 기획에 따라 전국 지부들에서 활동이 이루어졌다. 아수나로 지부들이 없는 지역에서도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포스터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전국적인 참여가 가능케 하려고 했다. 이런 변화를 두고 2008년과 2010년의 활동 모두에 참여하였던 아수나로 활동회원 공현은 촛불집회라는 외부 상황도, 다른 단체와의 특별한 연대도 없이 아수나로가 자체 기획해서 전국적으로 진행해야 했다는 점에서 ‘아수나로가 자립 가능한지를 시험받고 있는 과정’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당시 기성 교육운동은 전국적으로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를 추대했고, 정당 개입이 금지된 선거였기에 교육운동단체들이 정당-선거운동본부의 역할을 하면서 선거 대응을 하려고 하던 상황이었다. 아수나로는 일부 지부들이 지역별로 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에 참여하면서도 이와 별개로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을 준비했다. 이는 청소년들의 선거운동이 금지된 현실 탓이기도 했지만, 당장 선거의 결과에 연연하기보다도 청소년들만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또한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은 단지 청소년의 참정권만을 부각한 것이 아니었다. 정책 자료집을 만들고 후보의 공약을 제시하는 방식을 통하여 아수나로가 주장하는 교육정책과 청소년인권 의제들을 제시할 수 있었다. 다만 퍼포먼스성이 강한 활동 방식상, 비록 2008년보다는 더 넓은 참여를 이끌어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활동에 다수의 청소년들이 참여하게 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2012년, 선거의 해

2012년은 4월에는 총선, 12월에는 대선이 연달아 있는 선거의 해였다. 아수나로는 이 해가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이슈를 부각시키기 좋은 해라고 판단하고 2012년 1월 겨울에 있었던 제10회 총회에서 총선과 대선이 함께 있는 2012년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지에 대하여 논의했다. 이때 기호 0번 청소년 후보 운동을 다시 해보자, 청소년 정당 창당 퍼포먼스를 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하지만 기호 0번 청소년후보 운동은 이제 식상하다는 점뿐만 아니라 교육감 선거와 달리 200개가 넘는 총선의 지역구에서 기호 0번을 출마시키기는 어렵고 복잡하다는 점이 고려되어 기각되었다. 창당 퍼포먼스는 정당 등록 요건을 다 채워서 신고를 내고 반려됨으로써 정당 활동이 제약당하는 문제를 이슈화하고자 한 창당 퍼포먼스는, 전국에서 당비를 납부하고 개인정보를 제공할 5000명의 발기인을 모집하는 게 지나치게 어렵다는 점 때문에 반려되었다. 그래서 결국 청소년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1인시위와 헌법소원 등의 활동을 진행하기로 결정이 되었다. 이번에도 서울지부에서 기획을 맡았는데 2012년을 2~4월(총선), 5~10월(총선과대선 사이), 11~12월(대선) 이렇게 세 개의 시기로 나누어 활동을 하기로 하였다.

총선 시즌의 주된 활동은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에 대해서 정당 질의와 참정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1인시위, 4월 11일 투표 당일에 하는 ‘투표소 습격’ 등이었다. 이 활동들은 아수나로 뿐만 아니라 〈진보신당청소년위원회〉, 〈앰네스티 대학생모임〉 등이 함께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를 위한 원탁회의〉(청정원)이라는 연대체를 꾸려서 준비했다. 그리고 선거를 앞두고 청소년의 선거권과 피선거권, 그리고 정당 가입과 선거운동의 자유, 주민발의와 주민투표권을 요구하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또한 각 정당들에 이 내용들에 대해 질의서를 보내고, 답변을 바탕으로 각 정당별 입장을 정리하여 발표하면서 청소년의 참정권 문제를 총선의 이슈 중 하나로 부각시키려고 노력했다.

1인시위는 선거일 전에는 4월 2일부터 10일까지 매일 홍대 근처에서 매일 작은 행진과 같은 형식으로 진행했다. 그리고 4월 11일 총선 당일의 투표소 습격은 전국 동시다발 1인시위라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피켓 디자인을 공유하고 관심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가기 편한 투표소 앞에서 1인시위를 한 뒤 인증샷을 찍어 카페에 올려줄 것을 요청하면서 전국에서 60군데가 넘는 곳에서 1인시위가 있었고 꽤 성공적인 이슈화가 되었다. 1인시위의 과정에서 선관위 직원이나 경찰들과 마찰이 생기기도 했고 이들로부터 폭행이나 언어폭력을 당한 사례들이 발생하여 총선 이후에는 이러한 사례들을 모아 성명을 내고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하는 등 사후대처에 나서기도 하였다.

1인시위와 헌법소원 등의 활동을 하면서,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과 토론하고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정치적 권리에 대한 아수나로의 논리를 더 정리하고 다듬기 위한 작업도 이루어졌다. 어느 정도 성공적인 활동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1인시위와 투표소 습격은 너무 촉박하게 진행되었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1인시위 일정들이 결정된 것이 3월 29일 연대체 회의였을 뿐만 아니라 투표소 습격 최종 공지가 올라간 것은 투표 하루 전이었고 디자인 등 준비가 늦어졌다. 그 결과 취재요청을 보낼 때까지 주최 단위나 1인시위 장소 같은 것들이 정리가 안 돼서 혼란이 생기는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총선 이후부터 10월까지의 기간에는 지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적 권리에 대한 활동들을 시도했다. 〈청정원〉의 주도로 서울에서는 정치적 권리에 대한 설문조사가 진행되었고, 대구에서는 릴레이 1인시위, 창원에서는 캠페인의 방식으로 계속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활동들이 전개됐다. 이뿐만 아니라 인천지부에서는 ‘인천 중고등학교 정치적 권리 실태조사’를 통하여 학교에서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거나 정치활동을 탄압하는 내용의 학칙들을 조사하여 발표함으로써 학교가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를 침해하는 문제를 공론화시켰다.

2012년에 일어난 사건 중, 〈통합진보당〉 청소년당원 제명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통합진보당〉의 일부 세력이 당내 청소년 당원들을 정식 절차도 거치지 않고 제명해버린 사건이었다. 청소년의 정당 가입은 법적으로는 불가하지만, 이를 딱히 제재하는 내용의 법은 없었기 때문에 〈민주노동당〉이나 〈사회당〉 등의 정당들은 청소년의 가입을 보장하고 있었다. 2012년 당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일부 세력, 〈국민참여당〉 등이 통합하여 만들어진 〈통합진보당〉에서도 청소년 당원을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2012년 총선 경선 과정에서 부정이 있었다는 논란이 생기고 당을 혁신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주로 〈민주노동당〉 때의 주류 세력들이 많이 가입시켰던 청소년 당원들을 법적 근거가 없고 대리 투표 등 부정선거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면서 제명시킨 것이었다. 그나마 청소년의 정당 가입을 보장하고 있던 진보정당의 방침을 후퇴시키는 것이었기에 아수나로도 논평을 내고 기자회견을 함께하는 등 대응을 함께하였지만 이 사건 자체가 당내 정파 문제 등 복잡한 논란에 휩싸이면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후 청소년 당원들을 제명하는 것을 추진했던 정파들이 〈통합진보당〉을 나가서 〈정의당〉을 만들었으나 〈통합진보당〉은 그 뒤에도 청소년 당원의 복당을 신속하게 처리하지 않고 소홀히 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의당〉에서는 2016년까지도 청소년 당원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내놔라 운동본부


9월부터 대선을 즈음해서 다시 정치적 권리에 대한 활동이 본격적으로 준비되고 시작되었다. 아수나로는 다른 단체들에 다시 제안을 하여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내놔라 운동본부〉라는 연대체를 꾸려서 대선과 그 이후의 정치적 권리에 대한 활동들을 함께해나갔다. 〈내놔라 운동본부〉는 2012년 하반기에 대선까지, 그리고 그 이후까지도 반 년 정도 활동을 했다.

〈내놔라 운동본부〉는 9월 26일 아수나로의 수도권 지부들(남양주, 서울, 수원, 인천)이 모여서 정치적 권리에 대한 활동을 어떻게 만들지 논의한 자리에서 만들어진 ‘내놔라팀’이 모태였다. 내놔라팀은 기획팀과 조직팀으로 나누어져서 활동의 간단한 기획과 초반 준비, 그리고 〈인권교육센터 들〉, 〈흥사단〉, 〈진보신당 청소년위원회〉, 〈희망의 우리학교〉, 〈청년유니온〉, 〈21세기청소년공동체 희망〉과 연락을 하여 연대체를 만드는 작업을 하였다.

〈내놔라 운동본부〉는 아수나로가 만든 팀이나 연대체들 중에 드물게도 대표가 존재했는데, 바로 ‘거북이 인형’이었다. 이는 〈내놔라 운동본부〉가 내건 5가지 요구를 5각형으로 만들고 이를 거북이 등껍질 모양으로 디자인하면서 거북이를 마스코트로 내세운 것이었다. 〈내놔라 운동본부〉는 여러 팀을 중심으로 활동을 진행시키는 구조로 운영됐다.

〈내놔라 운동본부〉는 대선 시기에 맞춘 대응으로 서명운동, 전단지 형식의 정치신문 제작과 수다회, 투표소 앞 1인시위를 진행하였다. 서명운동은 ▲ 선거권과 피선거권 ▲ 모이고 외칠 권리(집회와 시위에 대한 권리) ▲ 판단할 권리 ▲ 학교 민주주의 ▲ 우리동네 지방자치라는 5대 요구안을 내걸고 11월부터 이루어졌다. 투표소 습격은 4월 총선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는데 수도권 중심의 연대체였던 〈내놔라 운동본부에〉 더해 아수나로의 지역모임들의 참여로 진행되었고 피켓 또한 〈내놔라 운동본부〉와 아수나로가 공동 제작했다.

대선이 끝난 이후 한동안 〈내놔라 운동본부〉는 활동이 침체된다. 그러다 3월쯤 다시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2014년 지방선거 이전에 선거권을 실제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활동이 진행되었다. 문제는 입법을 우선적 목표로 활동하다보니, 선거권 제한 연령에 관해 단체와 소통하던 국회의원 몇 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고 의원실의 담당 보좌관이 바뀌면 활동이 휘청거리게 되는 등의 일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2013년이 국회 구성 등을 볼 때 법 개정을 목표로 운동을 하기에 좋은 상황이 아니기에 청소년의 참여를 촉진하는 활동을 하자는 아수나로 서울지부와, 2012년에서 2014년까지 선거가 몰려있는 때가 법 개정을 하기 좋을 때이고 좌절되더라도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는 다른 활동가들 사이의 의견 대립이 있었다. 2013년 8월 말 아수나로 서울지부는 〈내놔라 운동본부〉에서 나오게 되었으며 서울지부의 문제의식에 공감하여 2013년 9월 전체논의자랑에서 아수나로의 다른 지부들(수도권 지부들이 연대체에 참여하고 있었음.)도 연대체에서 나오기로 하였다.


청소년들의 아래에서부터의 정치적 권리 운동을 위해

선거와 무관하게,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에 관한 이슈는 계속해서 등장해왔다. 이는 청소년들이 이 사회의 시민으로서 계속해서 정치적 발언과 참여를 해왔기 때문이다. 2008년 촛불집회나, 2013년 말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3년 당시 박근혜 정부가 철도민영화를 추진하자 철도노조는 철도 공공성을 지킬 것을 요구하며 파업으로 맞섰다. 그러면서 대학가를 시작으로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을 달고 철도민영화 시도 등을 비판하는 대자보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이 대자보 운동은 대학가를 벗어나서 초중고등학교로도 번져나갔다. 그러나 청소년들의 대자보는 무단으로 훼손되거나 철거당했고, 보호자를 소환하여 위협과 압박을 하거나 징계 절차를 밟는 학교도 있었다. 학교가 경찰에 신고를 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그래서 아수나로는 긴급하게 정치적 권리를 침해받는 사례를 수집하기 위해 ‘청소년들의 대자보는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웹페이지를 만들어 사례들을 수집하고 표현의 자유 침해라는 요지로 국가인권위 진정을 제출했다. 더 최근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나 일본군 ‘위안부’ 합의 문제 등에 대해서도 청소년들의 집단적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청소년들의 정치적 활동은 계속 일어나고 있지만, 청소년들은 정치적 권리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청소년들의 정치적 권리 운동은 과거 18세 선거권 운동부터 현재까지도, 다수가 함께하는 대중적 운동이라기보다는 관심을 가지는 소수 청소년들의 활동이나 입법 요청의 형태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정치적 권리 운동이 선거권 제한 연령에 대한 이야기 이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제대로 힘 있게 전개되지 못하는 원인 중 하나이다. 아수나로는 〈내놔라 운동본부〉 이후 이런 부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제14회 총회(2014년 겨울) 때, 선거 대응을 중심으로 한 정치적 권리 활동이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청소년 주체 집단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당위성만 가지고 하기 힘들다는 평가를 공유했다. 그리고 청소년들을 아래에서부터 조직해나갈 수 있는, 다양한 청소년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의견과 관심을 ‘정치적인 형태’로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정치적 권리 운동이 필요하다는 판단 속에 효과적인 정치적 권리 운동을 모색하고 있다.

정치란 사회의 여러 가지 결정을 만들고 정책을 바꾸는 일이다. 정치적 권리 운동은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권리를 요구하는 운동이라는 뜻이다. 이 때문에 정치적 권리 운동은 많은 시기에 청소년인권 신장을 위한 열쇠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청소년들에게 선거권이 생긴다면 학생인권이나 교육정책도 많은 것이 개선될 거라고 믿는다든지,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에 청소년들이 참여할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청소년들이 주민발의나 주민투표에 참여할 권리부터 얻자는 이야기가 나온다든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노
동자들이나 성소수자들, 노인들 등의 사례를 보면 선거권을 가진 유권자라고 해서 반드시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 당사자들이 조직화되고 스스로 사회적·정치적 힘을 갖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청소년들의 인권 향상 역시 사람들의 힘과 행동이 뿌리가 되어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제도적인 참정권을 포함한 정치적 권리 역시 그 과정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청소년들의 정치적 욕구와 참여의 힘을 어떻게 조직화해내고 권리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아수나로를 비롯한 청소년운동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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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나로
2020-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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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나로 10년 활동의 역사

두발자유부터 학생인권조례까지 그리고 그 이후


(2016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10주년 기념 자료집 〈어설픈, 하지만 망하지 않은〉 수록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의 출발점을 잡으라고 한다면 학생인권 운동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아수나로가 오랜 시간 동안 가장 주력해온 활동을 고르라고 해도 역시 학생인권 운동일 것이다. 한국의 청소년들 90% 이상이 학교에 다니고 있고,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6~12시간 이상 되는 청소년들도 적지 않으며, 학교에서 두발복장규제 등 직접적인 억압을 많이 겪게 되기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대중적인 청소년인권운동이 막 시작하던 시기에 가장 호응을 많이 얻었던 이슈도 두발자유, 강제보충자율학습 중단 등이었다.


  가장 오랫동안 주력해온 운동이기 때문에 여러 청소년인권 문제 중에 가장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은 것도 학생인권이다. 그리고 가장 가시적인 성과를 많이 얻어낸 것도 학생인권이며, 그만큼 사회적으로 민감한 쟁점으로 떠오른 것도 학생인권이라고 할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가 일부 지역에서 제정되면서, 외부에서는 마치 학생인권 문제는 거의 다 해결된 듯 보거나 그것이 소위 민주진보교육감들의 정책인 듯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학생인권의 현실과 지금까지의 운동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아직도 지난한 학생인권 문제들이 남아 있으며 여기까지 진전해오기까지 아수나로를 비롯한 많은 주체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알 것이다. 아수나로는 두발자유 운동에서부터 학생인권조례 제정, 그리고 그 이후에도 지속되는 학생인권 운동의 이후 활동에까지, 여전히 운동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중요한 한 축의 역할을 하고 있다.



첫 걸음 : 두발자유 운동


  아수나로가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시절에 만든 첫 번째 종이 유인물이 ‘두발자유화 가이드라인’이었고, 아수나로가 초기에 온라인에서 배포한 청소년인권 주장 글이 ‘두발자유 해야 하는 99가지 이유’ 등인 것을 보더라도 아수나로의 첫 걸음에 두발자유 운동의 흔적은 뚜렷하다. 이는 두발자유가 학생들이 가장 공감하기 쉬운 이슈였기 때문이며 아수나로가 처음 만들어진 2005년 무렵에 두발자유를 주제로 한 온라인 서명운동, 학내 행동 등이 벌어지면서 가장 잘 알려진 이슈가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2000년에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이 큰 호응을 얻었으나 제대로 해결이 되지 못했던 경험이 있기에 이 문제를 개선하는 것은 청소년운동 단체들의 공동 관심사였다. 아수나로도 청소년인권연구포럼 때부터 2005년 두발자유 운동을 준비하는 연대체에 참여했던 바 있다.


  2006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출범하고 나서도 주된 활동 이슈는 두발자유였다. 전국 공통의 활동 의제로 두발자유 운동을 이어나가기로 공식 결정을 했고, 2006년 결성된 청소년인권단체들의 연대체인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도 2005년의 분위기를 이어가서 두발자유 운동을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여러 단체들의 공동 주최로 2006년 5월 14일에 ‘두발자유, 바로 지금!’이라는 이름으로 학생인권을 요구하는 거리 집회를 서울 광화문에서 열었다. 그리고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두발자전거 행진’ 등의 활동을 했다. 아수나로 서울지부도 거리에서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서명을 모으는 활동을 했다.


  두발자유 운동은 2005년부터 여러 가지 학교 내 운동으로도 표출되었다. 2005년에 서울 송파공업고등학교, 경기도 성남 풍생고등학교 등에서 종이비행기 시위, 운동장 시위 등이 열렸고 학생들이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락카시위를 몰래 하는 일도 여러 학교에서 일어났다. 아수나로의 활동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서울 양동중학교에서 학생들이 두발자유 학내시위를 하는 것을 지원하고 학교가 학생들을 징계하려는 것을 막는 등의 역할을 했다. 그리고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학내 행동은 2006~2007년 동안에도 수원 청명고등학교, 서울 세민정보산업고등학교 등에서 일어났고 아수나로는 이에 대해 학생들과 상담을 하고 같이 준비를 하거나 지원을 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인천 예일고등학교, 서울 동성고등학교, 서울 중앙고등학교, 울산 옥동중학교‧신정중학교 등에서는 아수나로 활동회원이 직접 두발자유를 비롯한 학생인권 보장을 요구하는 1인시위를 하거나 학내시위를 열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서울 독산고등학교에 학생들과 연계하여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자전거 항의 시위를 ‘스쿨어택’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학생들의 운동은, 학내 시위나 직접 행동 외에도 서명운동, 설문조사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아수나로 활동회원들은 학교 안에서 두발규정 개정에 관한 학생 설문조사를 한 후 학교 측에 이를 근거로 두발규정 개정을 요구하거나, 서명운동을 통해 두발자유화를 요구하곤 했다.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아수나로의 전단지를 학교 안에서 몰래 배포하는 활동도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초기 아수나로의 두발자유 운동은, 과거의 두발자유 운동의 분위기와 명맥, 논리 등을 기반 삼아서 학교 안팎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는 2000년대 중반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대중적으로 일어나고 있었고 관련한 자생적 활동들이 많이 일어날 수 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학생인권 주요 의제들의 확장


  학생인권 운동의 가장 대표적인 얼굴이 두발자유이기는 했으나 두발자유 외에도 여러 가지 학생인권의 대표적 의제들이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와 아수나로의 활동에 의해 공론화되었다. 예컨대 아수나로 울산지부는 울산 효정고등학교에서 일어난 체벌 사건에 대해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주도적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동성고등학교나 옥동중학교‧신정중학교의 학내 운동들도 요구사항으로 두발자유만을 내건 것은 아니었다. 학생의 사상의 자유 보장, 강제적인 보충자율학습 중단, 소지품 검사 중단, 체벌금지 등의 그 학교 안에서 학생들이 불만을 느끼고 인권침해라고 느끼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종합하여 주장했다. 2008년 경남 용마고등학교에서는 아수나로의 활동회원이 동아리를 만들어 서명운동을 추진하고 학교에서 이를 제지하자 학내시위를 준비했다가 탄압으로 인해 무산된 사건이 있었다. 용마고 학생들이 요구한 것에도 두발자유와 체벌금지 등에 더해서 등하교시 후문 이용 허용 등 학생들의 의견을 묵살하는 일방적인 학교 운영에 대한 문제제기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대략적으로 2006년에서 2008년까지의 기간은 다양한 학생인권의 논리를 개발하고 공론화하고 제기하는 활동들이 이루어졌다. 과거의 연구 결과나 토론 등을 참조하여 체벌금지를 주장하는 논리를 정리했고, 소지품 검사나 휴대전화 규제 등에 대해서도 아수나로에서 입장을 정리했다. 휴대전화 규제는 2000년대 초중반 이후 새롭게 나온 의제였고 아수나로는 이 문제를 사생활의 자유 및 개인정보에 대한 권리만이 아니라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수업 방식에 대한 비판을 담아서 학생인권의 문제로 포함시켰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도 휴대전화 규제를 주제로 하여 교사, 학부모 등이 참여하는 토론회를 열어 논리를 가다듬었다.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도 휴대전화를 압수하거나 완전히 소지를 금지하는 행위는 인권침해라는 결정을 이끌어냈다. 이런 주장들은 청소년활동가들과 학교 안에서 항의하고 활동을 만드는 학생들에게 힘이 되었다.


  학교 안에서 다양한 활동들이 일어나면서 이에 관한 탄압과 인권 문제들도 불거졌다. 2007년, 경기도 안양 평촌고에서는 학교 안에서 학생인권 행사를 알리는 전단지를 배포한 아수나로 활동회원을 징계하기 위한 선도위원회를 열려고 하여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하고 학교에 항의하여 징계를 철회시켰다. 이처럼 학교로부터의 탄압이 끊이지 않았기에 학생들의 언론‧표현의 자유를 확보하기 위한 활동은 수시로 일어났다. 서명운동을 하다가 용지를 압수당하는 사례, 학내시위를 하려 했다고 체벌이나 징계를 당하는 사례 등도 있었다. 이에 맞서는 것은 말하자면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얻어내기 위한 활동’이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청소년의 집회‧시위의 자유, 언론‧표현의 자유, 학교 운영에 참여할 권리 등을 주장했다.


  이러한 학생인권 주장의 확장은 거리집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6년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 등이 연 거리집회의 명칭은 <두발자유, 바로 지금>이었다. 2007년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연 거리집회는 <미친 학교를 혁명하라>였고, 그 슬로건으로는 “▲ 두발용의복장 전면자유화! ▲ 휴대폰 등 소지품검사, 압수 폐지! ▲ 체벌, 욕설, 폭력, 당장 그만! ▲ 입시살인, 입시신분제 즐! ▲ 학교에도 민주주의를!” 5개를 표방했다. 학생인권의 주요 의제로 두발복장자유, 체벌금지, 사생활의 자유, 표현‧집회의 자유 및 민주적 참여권, 입시경쟁교육 반대를 제시한 셈이다. 아수나로나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가 모으고 다듬은 학생인권 의제들은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라기보다는 과거 청소년운동의 역사 속에서 제기되었던 이야기들을 한데 모은 것이었다. 비록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그 의의는 산발적으로 나왔던 이야기들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하는 논거를 정리하고 ‘학생인권’의 대표적 의제들로 제시하는 활동을 했다는 데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학생인권법안 등에도 주된 내용으로 반영되었고 이후에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는 과정에도 반영되었다.


  다른 한편, 아수나로는 변화하는 학생인권 상황에 맞춰 입장을 내고 개악을 저지하는 등의 활동도 했다. 2008~2009년 무렵 교육부는 체벌을 금지하지는 않았으면서도 체벌의 대체수단으로 ‘그린마일리지’라는 이름의 상벌점제도를 도입하기로 하고 시범 운영하고 있었다. 2009년 경상남도 교육청은 이 그린마일리지 제도를 최초로 전면 시행하려고 했다. 또한 경상남도 교육위원회에서는 학교에서 휴대전화를 금지하는 조례를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아수나로 경남중부지부는 상벌점제를 비판하고 휴대전화금지조례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벌이며 교육청에 민원을 제기하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2009년 울산지부와 서울지부에서도 각자 지역에서 추진되는 휴대전화금지조례에 대해 학생 설문조사를 실시하거나 반대 의견을 밝히고 플래시몹을 여는 등의 활동을 했다.


  상벌점제는 체벌금지 주장이 힘을 얻으면서 교육부가 내놓은 안이었으며, 현재도 여러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아수나로는 상벌점제가 전면 도입될 무렵부터 체벌금지는 환영하지만 체벌을 벌점으로 대체한다는 방식은 잘못된 접근법이라고 비판했다. 억압적이고 규제 위주의 학교 문화와 규칙을 바꾸고 수업 방식 등을 바꿔야지, 체벌을 대체하는 통제 수단으로서 강력한 상벌점제를 도입한다는 발상은 잘못된 것이란 점과 상벌점제로 인해서 생겨날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상벌점제를 비판하는 활동은 이후에도 전국적으로 이어져서, 상벌점제 운용으로 인해 학생들 수십 명을 퇴학시킨 학교에 항의하고 과도한 징벌로 퇴학당한 학생들을 복학시킬 것을 요구하거나 학교의 규정을 개정하도록 요구하는 활동들을 했다.



제도화 : 학생인권법안과 학생인권조례


  2000년대에 다양한 학생인권 이슈들이 공론화되었지만 어느 것 하나 뚜렷한 해결을 보지는 못한 채 5~6년이 흘렀다. 이로 인해서 청소년운동을 새롭게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자는 결의에 따라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나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가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답보 상태는 또 다른 움직임을 낳았는데, 바로 학생인권을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이었다. 학생인권에 대한 각종 요구들은, 개별 학교 차원에서는 성과를 얻은 경우도 있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학교들의 탄압과 정부 관료들의 무시에 가로막히고 있었다. 입법적인 방식으로 법 등을 만드는 것은 이런 문제들을 돌파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이러한 제도화의 움직임은 2005~2006년쯤, 광주에서 시민단체들이 학생인권조례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나 2006년 〈민주노동당〉에서 학생인권법안(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마련하여 최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것으로 가시화되었다. 그 이전에도 2004년 부산에서 있었던 학생인권 관련 토론회에서 한 시의원이 학생인권조례를 만들어서 학생인권을 개선해보자고 제안했던 기록이 있다.


  최초로 거론되었던 광주 학생인권조례는 교육청의 소극적 태도 등으로 적극적으로 논의되지 못했다. ‘학생인권법안’은 2006년 이후 청소년운동의 주된 이슈 중 하나가 되었다. 학생인권법안의 내용을 간추리면 두발복장자유, 체벌금지, 차별금지, 종교의 자유, 강제보충자율학습 금지, 학생회 자치권 및 학교운영참여 보장의 내용을 초중등교육법 안에 학생의 인권 항목으로 신설하자는 개정안이었다. 이러한 운동은 운동의 구체적 내용보다는 ‘법안’을 내세우게 된다는 점에서 다소 어려운 점이 있었지만, 그동안 있었던 학생인권의 요구들을 하나로 모아서 ‘법안 통과’라는 구체적 목표를 명확하게 추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다. 아수나로를 포함하여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학생인권법안 통과 요구 서명운동을 전개해서 전국적으로 서명을 모았고 학교 안에서도 학생인 회원들이나 지지자들이 서명을 모아서 우편으로 모아달라고 홍보했다. 그리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나 〈흥사단〉 등 교육운동단체들과 연대하여 학생인권법 통과를 촉구하는 거리 집회 등을 열었다.


  하지만 학생인권법안은 2008년, 원안 통과가 좌절되었다. 〈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서 적극적으로 반대했으며 처음에는 애매한 태도였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교총〉의 반대 의견에 따라 법안 통과에 합의하지 않았다. 결국 학생인권법안은 “헌법과 국제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라는 원칙적인 조문 한 줄을 초중등교육법에 새기는 데 그쳤다. 당시 국회 다수당이던 〈열린우리당〉도 학생인권법안에 대해서는 별 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전교조 역시 지지하는 입장이기는 했지만 통과를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는 않았다.


  이후 제도화 이슈는 각 지역으로, 조례 문제로 넘어갔다. 교육감 직선제 도입과 지방자치의 활성화 등으로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것이 가능한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2008년 당선된 경기도교육감 김상곤이나 2008년 서울시교육감 선거에 출마했던 (하지만 낙선했던) 주경복 후보 등은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공약했었다. 그리고 이에 따라 2009년 경기도에서 최초로 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기 위해 나섰고, 2010년 상반기에는 체계적인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의 초안이 마련되었다. 그동안 청소년운동이 만들어온 많은 논리들과 학생인권의 문제들이 반영되었고 일본의 아동인권조례나 과거 논의된 광주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법안 등이 주된 참고 대상이 되었다.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2009년 이후 학생인권에 관한 활동의 최전선에서는 다소 물러나서 페미니즘, 노동인권, 보호주의 등 청소년인권의 의제를 넓히는 데 힘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학생인권조례에 관한 활동은 청소년운동 단체로서는 주로 아수나로가 도맡아서 진행했다. 아수나로 회원을 비롯한 청소년인권활동가들은 자문위원이나 학생참여기획단 운영 등에 참여해서 최대한 인권적인 조례 내용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아수나로 수원지부 등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서 학생들의 서명운동을 전개해서 도의회에 전달하며 통과를 촉구했다.


  이후 2010년 전국 교육감 선거에서는 소위 ‘민주진보교육감’으로 분류되는 후보들이 6개 지역에서 당선되었고 이들은 대개 학생인권조례를 공약으로 걸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2010년 10월, 경기도는 전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를 공포하고 시행하게 된다. 또한 2010년 10월, 서울 지역의 여러 시민사회단체들은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서울 운동본부〉를 꾸리고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을 시작했다. 2011년에는 광주와 전북 등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서 교육청이 안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다. 경남과 충북에서도 아수나로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해 주민발의 운동을 시작했다.


  경기도에서부터도 그랬지만,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과정은 험난했다. 서울은 수도라는 이유로 특히 더욱 주목을 받았고 많은 쟁점들이 튀어 나왔다. 더군다나 많은 단체들이 참여했음에도 주민발의 서명을 모으는 것은 매우 지지부진했다. 6개월의 기간 동안 서울시 선거권자의 1% ― 8만 1885명의 만 19세 이상 비청소년의 서명을 받아내야만 주민발의가 성공할 수 있었지만, 주민발의를 시작하고 3개월이 지나도록 서명은 5천 명을 채 넘지 못했다. 2011년 초, 자기 조직에서 몇 명을 모아보겠다던 많은 조직 서명 약속들이 지켜지지 못했고 주민발의가 실패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들이 나왔다.


  수도권 지역의 아수나로 활동회원들과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서 함께 해온 활동가들은 학생인권 운동에 큰 후퇴가 될 주민발의 실패라는 상황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비청소년만 서명을 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주민발의 초기에는 홍보 활동 및 청소년 조직화에 주로 초점을 맞추고 있던 아수나로 등 청소년활동가들은, 이전의 기획들을 포기하고 몸과 시간을 바쳐 거리 서명에 나섰다. 청소년활동가들을 중심으로 민주노총과 인권단체들 등의 몇몇 활동가들이 매일 같이 “차별과 폭력 없는 학교를 만들자!”라고 외치며 거리 서명을 받았고 여러 단체의 각종 행사마다 쫓아다니면서 서명을 받았다. 봄부터는 주말에 소속 단체들을 독려하여 여러 곳에서 동시에 서명을 받았다. 그 결과 거리 서명만으로 2만 명이 넘는 서명을 모아냈다. 이에 더해 각종 온라인 홍보, 주민발의 기간 중에 일어난 학생인권 침해 사건에 대한 대응과 공론화, 언론의 기획 기사 보도 등을 통해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알게 된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우편을 통해 서명에 참여해주면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는 가까스로 기준을 넘겨 성공했다. 7월에 다시 재보완 서명을 받는 일이 있기는 했으나, 우여곡절 끝에 주민발의 요건을 성사하여,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안은 서울시의회에 발의되었다.


  그러나 서울시의회에 조례를 발의한 게 끝이 아니었다. 여러 언론들에서 학생인권조례 속의 당연한 조항들, 집회의 자유나 사상의 자유 등에 대해 색깔론을 제기하고 공격에 나섰다. 근본주의적 기독교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속에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임신 및 출산 여부’를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한 조항을 가지고 동성애를 조장한다거나 10대 출산을 조장한다는 얼토당토않은 공격을 하며 반대에 나섰다. 이에 대해 학생인권조례 서울 운동본부는 시의원들과 민주당 등을 설득하고 압박하는 활동에 나섰고, 성소수자 단체들은 서울시의회를 점거하고 원안 통과를 요구하는 농성에 들어갔다. 그 결과 2011년 12월, 서울시의회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었다. 이에 대해 교육부와 (당시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 상태였는데) 서울교육감 대행인 부교육감이 재의 요구를 하는 등 훼방을 놓았으나,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석방된 이후 2012년 1월 드디어 서울학생인권조례를 공포했다. 이는 차별금지 등의 조항은 원안이 유지되었으나 집회의 자유나 복장의 자유, 정보인권, 학교규칙개정 절차 등에 관한 부분들은 일부 훼손된 안이었다.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무산될 뻔한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겨 서울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된 것 자체만으로도 큰 성과였다고 할 수 있다.


  서울 학생인권조례가 통과, 시행되기 얼마 전인 2011년 하반기 광주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서울에 비하면 큰 논란 없이 제정, 공포되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2012년 전북에서도 학생인권조례가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교육청이 발의한 조례가 교육위원회에서 통과되지 못했고, 그 이후 민주당 도의원은 종교의 자유, 두발복장자유, 성소수자 차별금지, 표현의 자유, 사생활의 자유 등에 관한 중요한 조항들이 삭제된 수정안을 발의했고 〈전교조 전북지부〉 등도 후퇴한 수정안의 통과에 동조했다. 이에 아수나로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반발하여 도의회를 점거하고 수정안 상정을 반대하기도 했다. 그러한 활동의 결과 전라북도에서도 2013년, 비교적 원안에 가까운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어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교육부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며 학교 규칙에서 용의복장에 관한 내용을 정할 수 있다고 해서 상위법 위반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 두발자유에 대한 내용이 크게 후퇴한 결점이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반면, 경남과 충북에서는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가 성공했으나 교육청에서 이를 상위법 위반이라며 발의를 거부하거나 도의회에서 부결시킨 탓에 제정에 실패했다. 또한 전라남도나 강원도, 인천 등에서는 교육청 혹은 시민사회단체들이 ‘학교인권조례’, ‘교육공동체인권조례’ 등의 이름으로 학생인권조례의 일부 내용을 가져오되 학생인권조례의 근본적 내용과 원칙을 후퇴시키는 조례를 만들려고 하기도 했다. 이는 모두 아수나로를 비롯한 단체들의 비판, 또는 그조차도 수용하지 못하겠다는 보수정당·단체 등의 반대로 제정되지 못했다.


  교육부와 새누리당이 서울 학생인권조례 이후에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고 교육감 및 교육감 후보들도 당장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적극적인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가까운 시일 내에 학생인권조례가 추가로 제정되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로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를 무력화하기 위해서 시행령을 개정하고 무효 소송을 남발했다. 비록 소송의 결과는 서울의 경우는 절차를 어겨서 각하, 전북의 경우는 학생인권조례는 상위법 위반이 아니며 정당하다는 판결로 기각당하는 등 교육부의 완패였지만, 시행령 개정과 강력한 반대 입장 표명 등으로 학생인권조례의 시행과 정착에는 큰 악영향을 끼쳤다.


  학생인권조례를 둘러싼 일련의 상황들은 우리 사회 안에서 학생인권 운동을 둘러싼 상황들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먼저, 학생인권조례를 통해서 한국의 학생인권 상황은 어느 정도 진일보하게 되었다. 학생인권조례 시행 지역에서는 두발규제가 많이 약화되거나 일부 학교들은 두발자유화가 이루어졌으며 강제적 보충자율학습도 줄어드는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한계도 명확했는데, 학생인권조례 안에는 두발자유·체벌금지·강제보충자율학습금지 외에도 다양한 인권 보장 조항들이 있지만 그 대다수가 학교 현장에 뿌리내리지 못했고 교육청에서도 학생인권조례의 광범위한 내용들을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다.


  또한 소위 ‘진보적’ 교육시민사회단체들은 조례를 만드는 과정에서 학생인권에 대해 지지하더라도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 일쑤였고 단체 구성원들이나 회원들 사이에도 학생인권에 대한 감수성이나 인식은 충분히 공유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이는 서울 주민발의 과정이나 전북의 의회 논의 과정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현실이었다.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조직 서명을 모은 경남과 충북의 경우에도 과연 학생인권에 대한 내용이 시민사회 안에서 충분히 공유되었는지는 다소 의심스러운 면이 있다. 운동 사회 바깥에서는 학생인권조례를 통해서 학생인권 보장이 눈에 보이는 현실로 힘을 가지게 되자, 이에 대한 반동도 강해졌다. 성소수자 차별금지 문제 및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새로운 이슈가 부각되었고 색깔론, 교권 붕괴, 학교폭력 등의 담론이 학생인권을 공격하는 데 동원되었다.


  아수나로 내부적으로는, 학생인권조례는 아수나로가 많은 역량을 쏟게 만든 활동이었고 활동회원들을 피로하게 만들기도 했다. 조례 시행 이후에도 조례가 제대로 정착될 수 있도록 홍보하고 의견을 제출하고 견제하는 등의 활동을 꾸준히 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학교 현장에 대중적 조직이 없는 아수나로를 비롯한 청소년운동은 여러 한계를 느끼기도 했고 교육청과 학교들도 제대로 홍보하지 않는 학생인권조례를 발로 뛰면서 알리고 인권침해에 대응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학생인권조례는 아수나로의 운동 성과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이 때문에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저항하지 않고 교육청에 신고만 하는 데서 만족하게 되었다거나 운동이 조례를 지키라는 주장에 갇히게 되었다는 내부적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는 달리 말하면 아수나로에게 학생인권조례는 새로운 운동 방식을 모색하고 학생인권 문제를 새롭게 다룰 방법을 찾아야 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뜻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현실을 알고 알리는 실태조사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운동이 시작될 무렵, 아수나로에서는 학생인권의 현실을 공론화하고 알리기 위한 운동 방식의 하나로 ‘실태조사’를 시작했다. 과거에도 특정 학생인권 문제에 대해 학생들의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를 하거나 사례 조사를 한 적은 있지만 설문조사의 형태로 다수의 학생들에게 실태조사를 실시한 것은 2009년이 최초였다. 2009년, 이명박 정부 이후 학생인권의 현실을 조사해보자는 제안이 나왔고 이에 따라 온라인과 인쇄한 설문지를 이용하여 전국적인 중고등학생 대상 학생인권 실태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에는 교사단체나 학부모단체들, 다른 시민단체 등이 협력했다. 조사 내용은 그동안 학생인권의 주된 문제로 제기된 것들을 담았고 학생인권조례나 이명박 정부의 교육 정책 등에 대한 의견 조사도 포함되었다. 많은 시행착오와 밤을 새는 노력 끝에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되었고 이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 이듬해인 2010년, 아수나로는 새로운 이슈를 발굴하는 차원에서 ‘연애 탄압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이 조사는 몇몇 지역의 몇 개 학교들의 공개된 학칙들을 조사하고 학생들로부터 사례를 수집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과반의 학교들에서 ‘불건전한 이성교제’나 ‘풍기문란’ 행위를 처벌하는 학칙을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했으며 몇몇 학교들에서는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면 벌점을 주거나 징계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는 사례가 드러났다. 연애 탄압 실태조사는 사생활의 자유 문제로 새로운 의제를 제기한 것이면서, 학생인권조례 이후로 쟁점이 되기 시작한 성적 자기결정권 등의 이슈와 정면으로 마주한 것이었다.


  아수나로가 자체적으로 진행한 것은 아니지만 아수나로가 참여한 연대체에서도 학생인권에 대한 실태조사를 꾸준히 진행했다. 〈학생인권조례 서울 운동본부〉에서도 주민발의를 시작하기 전에 학생인권에 관한 서울 실태조사를 진행하여 결과를 발표했다. 또한 주민발의 운동 진행 도중에도 학교 안의 ‘차별과 언어폭력’을 주제로 실태조사를 실시하면서 일상 속의 학생인권 침해를 이슈화시켰다.


  전국적으로 학생인권조례의 정착과 제정을 위한 논의가 활발하던 2012년 결성된 연대체인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에서도 2013년 이후 학생인권에 대한 실태조사를 꾸준히 하고 있다. 이는 학생인권조례들이 몇몇 지역에서 시행된 이후로 학생인권이 충분히 보장되고 있지 않느냐는 인식을 깨고, 여전히 학생인권 현실이 열악하며 학생인권조례가 시행 중인 지역의 경우 다른 지역에 비해 얼마나 학생인권이 나아졌는지, 이후 과제는 무엇인지 등을 조사하는 데 목적이 있다.


  실태조사는 학생인권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사회에 알리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는 의의가 있다. 이는 어느 정도 이상 자원을 확보한 아수나로가 학생인권 문제를 현실의 수치와 사례를 통해 이야기하기 위해 선택한 운동 방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라 지역별로 학생들이 심각하게 경험하는 학생인권 사안을 알고 이를 운동 기획에 참고할 수도 있다. 다만 실태조사 방식은 아수나로보다도 전문성과 예산을 갖춘 곳에서 하는 것에 적절하며, 실태조사가 학생들을 조직화하고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운동의 역량을 소모하고 재충전하지는 못하면서 학생들로부터 멀어지는 방식이었다는 내부적 비판도 있다.



오래된 과제, 새로운 과제


  2013년 겨울, 서울 은평구 예일디자인고등학교에서 아수나로 활동회원인 고3 학생이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며 피켓을 들고 1인시위에 나섰다. 교사들은 그 학생에 대해 모함하는 발언들을 했다. 다른 일부 학생들도 이에 동조하여 그 학생이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이유나, 그 학생 때문에 수능시험 이후에도 정상 수업을 해야 한다는 등의 오해로 언어폭력을 가했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학교는 일단 학생들의 종교의 자유를 존중하고 종교 수업을 할 때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2015년, 대전의 충남중학교에서는 아수나로 활동회원인 중3 학생이 학교의 두발규제와 체벌을 비판하는 전단지를 배포하다가 학교로부터 징계 통보를 받았다. 무단결석과 교사지시불이행, 그리고 ‘학생을 선동하여 질서를 문란하게 한 행위’를 이유로 그 학생에게는 교내봉사 징계가 결정되었다. 아수나로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하고 학교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며 항의했고, 징계는 공식 철회되지는 않았으나 집행되지도 않았다.


  이러한 모습들은 2004년 강의석이 서울 대광고에서 종교의 자유를 요구하며 1인시위와 단식을 한 모습, 그리고 2007년 경기도 평촌고에서 아수나로 회원이 전단지를 배포했다가 징계를 받을 뻔했던 모습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학생인권 상황이 분명히 개선되고 진전된 성과가 있지만 여전히 오래된 과제들이 완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남아 있다. 과거에 있었던 것과 같은 탄압과 대응이 반복되고, 어떤 때는 더 나은 결과를 얻기도 하고 어떤 때는 별로 나아진 게 없는 현실에 좌절하기도 한다. 학생들의 민주적인 자치와 참여와 같은 문제들도 답보 상태에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학교 민주주의나 학생 자치를 활성화하자는 정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실질적인 참여의 권한과 권력 분배, 학생들의 정치 역량 확대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듯싶다. 이런 오래된 과제들은 두발규제 문제와 같이 눈에 띄는 지역별 편차로 더욱 확연하게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학생인권조례 제정 지역에서조차도 체벌과 두발규제 같은 가장 기본적인 문제들도 해결이 완전히 되지는 못한 실정이다.


  이러한 오래된 과제들이 남아 있는 가운데, 학생인권에 관한 새로운 과제들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변화하는 교육 환경과 ‘교육불가능’ 상황, 경제적 위기 속에서 학교 교육 자체, 사회적 상황 자체가 학생들에게 주는 절망감 등도 커지고 있고, 문제가 되는 학생들을 학교로부터 배제하고 탈락시키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체벌금지나 두발자유, 표현의 자유 등 어느 정도 현실화된 학생인권 보장의 사안들은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쟁점이 되었다. 학생들이 학교 안에서 교과서나 철도민영화 문제 등에 대해 대자보를 부착하는 등의 행동에 대해 정부와 보수언론들, 극우단체들 등은 이를 기존의 정치 구도 속에서 해석하며 과민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체벌금지나 두발자유가 북한의 지시에 의해 학교를 붕괴시키려는 ‘내란’이라는 어이없는 주장까지도 〈교총〉의 공식 입장 속에서 나오고 있다. 이처럼 학생인권이 정치적 쟁점으로 다루어지면서 학생들의 지지나 참여 역시 소극적이 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극복할 조직화와 운동이 필요할 것이다.


  1990년대부터 반복되어온 공식이지만, ‘학교폭력’이라는 명칭으로 이루어지는 학생 간 괴롭힘‧폭력‧차별(학생간 괴롭힘)에 대한 논의 역시 학생인권을 공격하는 용도로 쓰이며 해결 과제가 되고 있다. 학생간 괴롭힘의 문제는 중대한 학생인권 문제의 일부임은 분명하며 이를 방지하고 대처하기 위한 합리적이고 종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언론 등은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학생들을 ‘인권을 가질 자격이 없는 존재’인 듯 묘사하고 마치 학생인권의 보장으로 인해 이러한 사건이 일어난다는 식의 잘못된 해석 구도를 만들어 학생인권을 후퇴시키고 학생들에 대한 통제와 처벌을 강화하려고 들고 있다. 또한 일각에서는 학생 간 괴롭힘 문제를 일부 문제적 가해자들을 강력하게 처벌하고 배제하기만 하면 해결되는 문제인 것처럼 단순하게 생각하는 정서적 반응이 존재하고 있다.


  아수나로나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는 ‘학교폭력’ 관련 법의 개정안을 만들어 제안하거나, 학생 간 괴롭힘 사안에 관해 개별 사건에 대해 대처하거나, 폭력과 차별 없는 학교, 인권친화적 학교를 만들자는 목소리를 내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역부족이며 아수나로 등 청소년인권운동이 학교폭력을 옹호하거나 방치한다는 식의 악선전마저 나오고 있다. 이를 일종의 청소년혐오 현상의 일부로 보고 ‘학교폭력’ 담론으로 학생인권을 공격하는 데 대한 꾸준한 대응이 있어야 한다. 이와 유사하게 학생인권의 보장으로 인해서 교실이 ‘붕괴’한다거나 교사들의 노동이 힘들어진다는 등, 학교의 노동‧교육 환경 및 구조적 원인으로 인한 문제들을 학생인권의 탓으로 떠넘기는 주장도 계속해서 나오고 있고 마찬가지로 대응이 필요하다.


  학생들 중 소수자와 차별에 관한 이슈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지만 여전히 새로운 과제라고 볼 수 있다. 빈곤이나 성적이 하위인 것, 성별 등의 차별 사안들이 있고, 또 이주민과 성소수자, 장애인 학생 등의 차별 사안들도 대두되고 있다. 학생들 사이의 차별 문제도 오래 전부터 있어왔고 최근에는 더욱 눈에 띄고 있다. 특히 학생인권조례가 쟁점이 된 이후로는 청소년 성소수자와 성적 자기결정권 등이 첨예한 쟁점으로 부상했다. 이에 관해서는 아직은 근본적인 도전보다는 차별금지와 과도한 처벌 및 혐오 등에 반대하는 기초적인 대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후에는 당사자들의 조직화 및 행동으로 견고한 정서적 혐오와 통제의 벽을 깨는 것이 필요하다. 아수나로 외에도 다른 청소년단체 및 성소수자단체들의 활동과 함께 가야 할 것이다.


  학생인권 운동은 아수나로 10년의 운동 역사 속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어낸 중심적인 운동이면서 동시에 아수나로 활동의 한계를 볼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다. 학생인권 운동은 아수나로가 과거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서 시작한 운동의 출발점이었으면서 앞으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교육운동과 학생인권 운동 사이의 벽을 허물고, 학생인권이 우리 사회에서 충분하며 돌이킬 수 없는 진전을 이루었을 때, 아수나로 역시 하나의 과제를 완수했다고 자평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10주년자료집 - 10년활동의 역사] 두발자유부터 학생인권조례까지 그리고 그 이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ASUNARO])작성자 onlyasunaroca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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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수나로
2020-06-23
조회 5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의 탄생 과정]

(2016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10주년 기념 자료집 〈어설픈하지만 망하지 않은〉 수록





  1990년대에 싹을 틔웠던 청소년운동(또는 청소년인권운동)은, 2000년대 중반까지 두발자유, 체벌금지, 강제보충자율학습과 0교시 폐지, 학교 종교자유, 아르바이트 청소년의 노동인권, 선거권 제한 연령 인하, 정보인권 등 많은 이슈들을 공론화시켰다. 그러나 수없이 대두되는 이슈들에 비해서 청소년운동의 세력과 기반은 불안정했다. 전국 조직을 지향했던 단체들도 대개 만들어진 지 3~4년 만에 사라졌고, 다른 청소년운동 조직들 역시 2~3년을 넘기기가 어려웠다. 오랜 역사와 뿌리를 가진 청소년운동 단체들 중 일부는 계속 남아 있었지만, 2000년대에 청소년인권을 위한 새로운 관점과 성격을 가지고 자생적으로 만들어졌던 청소년운동 조직들은 다들 생존에 어려움을 겪곤 했다.


  다른 한편으로 청소년운동의 주체들은 사회 상황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다양한 방식의 운동을 시도했다. 지역에 기반을 둔 단체를 만들려고 하기도 했고, 진보정당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미 활동하던 청소년활동가들을 규합하여 전국적인 단체를 만들려 했던 〈청소년의 힘으로〉와 같은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운동들은 모두 중요한 의의가 있었으나,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청소년운동의 주체를 만드는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의 결성과 활동


  아수나로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더 나은 청소년운동을 만들기 위해서 조직되었다. 〈전국중고등학생연합〉에서 활동했던 사람들, 그리고 경남 진주의 〈행동하는 청소년〉이나, 〈청소년의 힘으로〉에서 활동했던 사람들 등이, 청소년운동의 흐름을 계승하면서 더 발전한 청소년운동을 만들기 위해서 2004년 하반기에 모여서 결성했던 것이 바로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였던 것이다.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는, 이전의 청소년운동이 제대로 청소년인권이나 청소년운동에 대해 연구하지 못했고 자료를 축적시키지 못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만들어졌으며, 더 나은 청소년운동을 위해 연구하고 자료를 만들고 청소년운동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다.


  따라서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의 주된 활동은 청소년운동에 대한 연구와 자료 찾기 등이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학생인권에 대한 논문을 찾아서 함께 공부하고, 청소년노동에 관한 활동을 하는 활동가를 찾아가서 인터뷰를 해 정리하거나, 오랜 역사를 가진 인권단체를 인터뷰하여 운동방법론에 대한 조언을 듣는 등의 활동을 했다.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는 또한, 《청소년의 눈으로》라는 이름의 신문을 발간하는 활동도 했다. 이는 원래 〈행동하는 청소년〉이 발간하던 이메일 웹진을 계승하여, 종이 신문으로 낸 것이었다. 《청소년의 눈으로》에서는 당시 청소년운동의 주요 사건들을 전달하는 동시에 아수나로에서 연구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가공하여 전달하는 기사를 실었다. 《청소년의 눈으로》 발간은 청소년인권에 대한 아수나로의 관점과 주장을 청소년활동가들 사이에서 공유하는 기능도 했다.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는 단지 연구를 목적으로 한 모임은 아니었다. 청소년운동이 마주한 현안에 직접 대응하고 개입하기도 했고, 청소년 당사자들이 만든 청소년운동 조직을 지원하는 역할을 꾀하기도 했다. 두발자유 운동이 2005년에 대중적으로 전개되자 집회를 준비하는 연대체에 참여했고 ‘두발자유화를 위한 가이드라인’이라는 유인물을 만들어서 배포했다. 또한 다음 카페에서 만들어져서 학생인권과 온라인게임 셧다운제 반대 운동 등을 한 〈한국청소년모임〉이나, 전주에서 만들어진 〈전북청소년인권모임〉 등의 조직들을 지원하고 함께했다.


  2005년 하반기,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는 청소년운동의 주체들을 만들고자 하는 기획의 일환으로 〈학생인권공동행동〉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거리집회를 기획하는 등의 활동을 했으나 역량의 부족, 비청소년 활동가와 청소년 활동가를 분리해서 일어나는 어려움 등, 여러 한계에 부딪혔다. 2005년 내신등급제 반대 촛불집회와 두발자유 운동 등의 사건과 〈학생인권공동행동〉의 실패 등을 경험한 뒤,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의 멤버들은 아수나로를 직접 청소년운동 조직으로 전환하고 비청소년과 청소년이 함께하는 단체로 만드는 구상을 하게 되었다.


  100% 지켜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20살이 넘은 사람들이 직접 청소년운동에 함께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고 청소년들의 주체성을 훼손할까봐 꺼리는 문화를 가진 곳들도 있는 형편이었다. 아수나로가 명시적으로 비청소년과 청소년이 함께하는 전국적인 청소년운동 조직을 표방한 것은 운동 내적으로는 중요한 의의가 있는 일이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로의 전환


  이에 따라 2006년 2월, 청소년인권연구포럼 아수나로의 멤버 중 4명이 서울에 모여서 청소년과 비청소년이 함께 활동하는 운동 조직을 만들기로 결의하고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로 이름을 바꾼다. 아수나로에는 경남 진주의 〈행동하는 청소년〉이 진주지부로 병합하기로 했으며, 서울에서는 그동안 활동했던 멤버들이 서울지부를 만들기로 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초기에는 연대체 〈청소년인권활동가네트워크〉에 참여하여 이슈를 만들고 활동을 해나갔으며, 지부들은 각자 자기 지역에서 운동을 만들어나갔다. 2006년에 만들어지고 얼마 안 되어서 〈전국중고등학생연합〉에서 과거에 활동했던 사람이 참여하여 광주지부를 만들었고, 울산지부나 대전지부 등도 만들어졌다. 아수나로는 반년에서 1년 여의 활동 후에 기본원칙과 회칙 등을 결정하고 더 체계적인 운동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는 이처럼 청소년인권운동의 역사를 거치며 축적되어 온 것들의 결실이다. 어느 단체이건 역사의 산물이 아니겠느냐마는, 아수나로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5년 이후까지 면면히 이어져온 청소년인권운동의 흐름 속에서, 실패했던 경험들, 성공했던 경험들이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경험들에 의해 형성된 아수나로의 특징은 청소년인권에 대한 원칙적인 지향, 전국적인 청소년운동 조직 지향, 청소년의 직접 행동에 대한 강조, 비청소년과 청소년이 함께하는 참여와 활동, 진보적인 성격을 견지하며 연대하지만 청소년운동으로서의 중심을 잃지 않겠다는 경계심, 청소년 억압이 사회구조적인 문제라는 인식 등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