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번호의 지배에서 벗어나자 (2018.8.18)

아수나로
2018-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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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의 지배에서 벗어나자


지난 2018년 8월 9일, 국가인권위원회 아동권리위원회는 학교의 성차별적인 출석번호 지정 관행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남학생은 1번부터, 여학생은 51번부터 출석번호를 부여하는 것이 여학생에 대한 차별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차별행위는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다. 남학생에게만 앞번호를 부여하는 것은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우선시되고 중요하다는 차별 의식을 만들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제3호는 합리적인 이유 없이 성별 등을 이유로 하여 특정한 사람을 구별하는 것을 평등권 침해의 차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학교는 설문조사를 통해 학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반영해 결정한 일이라고 주장했으나, 인권위는 다수결로 결정했다고 해서 성차별적인 관행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결정을 환영한다. 인권위는 이미 지난 2005년에도 성차별적인 출석번호 순서에 관해 인권침해라 결정한 바 있으며, 서울교육청 등 각 교육청에서도 이에 대한 시정 권고를 한 바 있다. 우리 사회가 성차별적인 관행을 인지하며 바로잡아나가고 있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지금도 많은 학교에서는 다양한 차별들이 관행이라는 이름 아래 진행되고 있다. 차별은 사소한 것에서부터 우리의 일상과 학교에서 곳곳에 뿌리내리고 기존의 차별 의식을 지속-강화하는 데 기여한다.


한편, 상당수의 학교는 성별 구분 대신 가나다순 출석번호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가나다순 정렬법 역시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특정 성씨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번호를 부여하는 것 역시 합리적이지 않은 이유로 사람을 구분하는 평등권 침해 행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번호를 부여해야 한다면 무작위 번호 부여 방식과 같이 학생들의 평등권을 최대한 보장하는 번호 부여 방식이 적용되어야 한다.


출석번호가 개인을 지칭하기 위해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어야 하는지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24601. 장발장의 수형 번호다. 교도소에서는 수형자를 이름이 아니라 번호로 부른다. 교도소는 수형자를 이름 대신 번호로 부름으로써 개인의 개성을 죽인다. 이름을 뺏고 번호를 부여하는 순간, 주체적 개인은 사라지고 관리 대상인 객체, 수형자 24601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집단의 구성원을 이름 대신 번호로 부르는 행위는 단지 행정 편의를 위한 것뿐만이 아니라, 개인의 개성을 죽여 집단적 통제를 원활히 하기 위한 것임이 크다. 군대 또한 군번을 이용해 개인을 집단에 편입시켜 관리하고 통제한다. 한국 학교의 출석번호 역시 일제강점기 시절 학생들을 유사시 병력으로 활용하기 위해 군번을 대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학교의 출석번호와 군대의 군번의 모습이 닮아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교도소의 수형 번호, 군대의 군번, 학교의 출석번호는 관리와 통제라는 동일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변했다. 학교는 더는 예비 병력을 양성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다. 학생들은 관리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 학교는 학생들의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배움을 보장하기 위한 공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학생들은 존중과 이해를 받아야 한다. 바뀐 세상에서, 출석번호는 어울리지 않는다. 성차별적인 출석번호가 사회의 인식을 반영함과 동시에 성차별적 인식을 재생산하듯이, 학생을 출석번호로 부르는 행위는 학생을 관리와 통제의 대상으로 보는 사회적 인식을 재생산하기 때문이다.


번호가 지배하는 학교에서 벗어나자. 모든 사람에게는 이름이 있다. 사람의 이름에는 각자의 인격과 개성이 담겨 있다. 학생을 이름으로 부름으로써 학생을 온전한 인격체로서 존중해 나가자.


2018 8 18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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