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청소년 대상 성폭력의 해결책은 의제강간 연령 기준 상향이 아니다 (2016.2.19)

아수나로
2016-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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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대상 성폭력의 해결책은 의제강간 연령 기준 상향이 아니다 

지난 12월 남인순 의원 등이 ‘의제강간 연령 기준’을 현 만 13세에서 16세로 상향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12월 초, 한국여성변호사회가 주최하고 여성 의원들의 축사로 진행된 의제강간 연령 기준 상향을 논의한 국회토론회가 열렸었는데,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해당 내용의 법안이 발의된 것이다.

의제강간 연령 기준이란, 그 기준이 되는 연령 미만의 사람과 성관계를 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한 기준으로 몇 살 미만의 사람은 성적 행동 및 성관계에 동의할 ‘능력’이 없다고 보고 그와의 성관계는 강간으로 간주할 때 적용되는 기준이다. 현 발의안에서는 만 16세 미만인 사람과 만 19세 이상인 사람이 성관계를 하는 경우를 기준으로 잡고 있다.

의제강간 연령 상향 논의에 청소년은 없었다

얼마 전, 연예기획사 대표가 여자 중학생을 강간한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무죄 판결을 받아 사회적 논란이 되었다. 무죄 판결이 내려진 데에는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성폭력의 특성에 대한 법원의 무지가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여러 단체들은 의제강간 연령 기준 상향을 더욱 강력히 주장했고, 그러한 주장들은 특히 ‘여성’의 요구와 목소리로 조명되었다. 실제로 의제강간 연령 기준 상향을 논의한 국회토론회는 여성단체가 주도하였고,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를 수행한다고 평가받는 남인순 의원이 해당 법안을 발의하였다.

그런데 과연 그것은 ‘여성’의 요구이자 목소리였을까, 우리는 의문을 품는다. 혹시 ‘비청소년 여성’의 목소리는 아니었을까? 국회토론회가 열렸지만 청소년의 인권과 입장을 대변해온 청소년운동에는 발제자로도 토론자로도 섭외 요청이 오지 않았다. 단지 그 자리에는 의제강간 연령 기준 상향은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말하는 비청소년들이 있었을 뿐이다. 그들은 ‘청소년의 미성숙함’을 청소년의 성적자기결정권을 다소 침해하는 한이 있더라도 의제강간 연령 상향이 정당화할 근거로 들었다. 의제강간 연령 상향은 비록 그 처벌 대상이 비청소년이라 하더라도 청소년의 ‘성관계 동의능력’, ‘판단 능력’, ‘성적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전제 하에서 논의되었다. 여성운동과 페미니즘의 역사는 다양한 여성 주체가 주체화되면서 성장해왔다. 하지만 그들은 다양한 여성 주체를 말하면서도 청소년 여성은 주체가 되지 못할, ‘미성숙한’, 비청소년 여성이 보호해주어야 할 존재로 격하시키고 있다.

배경에 있는 것은 청소년의 성에 대한 편견

"13∼18세에게 성인영화는 불허하면서 성행위는 허용하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너무 많이 허용하고 있다" 2010년, 이은재 한나라당 의원이 국정감사 때 의제강간 연령 기준 상향을 주장하며 한 말이다. “‘법을 지켜가며’ 성적 자유를 누리겠다는 청소년을 방치하지 않으려면 허용 기준연령을 높여야 한다." 서울신문에 났던 사설의 내용이다. 현재 의제강간 연령 기준을 상향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청소년을 비청소년이 나이권력을 이용해 자행할 수 있는 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청소년들이 성적 자유를 누리는 것이 꼴 보기 싫어서’ 그를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대중적으로 청소년의 성행동이나 성적인 표현을 하는 청소년을 혐오하는 정서와 이데올로기들이 있다. 이런 혐오감은 ‘청소년을 성으로부터 보호해야지’라는 보호주의적 감성과 크게 구분되지 않고 뒤섞여서 흘러 다닌다.

어떤 집단이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질 만한지 아닌지를 국가가 판단하여 일률적 규제를 가하는 것은 많은 문제점과 쟁점을 낳을 법한 이슈다. 그러나 청소년에 관해서 의제강간 연령을 확대하려는 법안에 대해서는 별다른 사회적 반대나 제대로 된 논쟁도 벌어지지 않고 있다. 청소년의 성에 대한 혐오감과 편견, 청소년을 미성숙한 존재로 격하시키는 사회적 낙인이 우리 사회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덕분이다. 의제강간 연령 기준 상향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청소년이 성적 실천을 했을 때 겪게 되는 낙인의 문제에 대해 얼마나 생각해 보았을까? 우리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연애 때문에 징계당하지 않을 권리를 말하고, 우리의 성 자체를 금기시하는 사회적 억압에 문제제기하고 있지만 우리의 목소리는 여전히 가닿지 않고 있다. 하지만 ‘청소년을 보호하겠다’며 나서는 어른들의 주장은 이렇게 잘 먹히고 빠르게 법안 발의도 된다. 물론 청소년의 이야기를 들으려는 시늉도 않은 채로 법안을 내놓아도 되고 말이다.

청소년과 청소년의 성에 대한 편견은, 청소년들을 당연히 무성(無性)적 존재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그 결과 청소년들이 성적 상황에 놓인다면 무조건 피해자일 것이라고 전제하게 된다. 물론 나이와 성별에 따른 권력관계 등, 청소년, 특히 여성 청소년이 더 쉽게 성폭력 피해를 겪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곧 청소년들의 성적 주체성과 수행성을 일반적으로 부정해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의제강간 제도를 강화하려는 것은 청소년이 비청소년과의 관계에서 일방적으로 피해자일 것이며, 주체성을 가질 수 없다고 규정하려는 것이다. 또한 앞서 보았듯이 청소년의 성적 자유를 법적으로 압살하려는 의도와도 결코 완전히 떨어질 수 없다. 여성의 성욕이나 성적 주체성을 없는 듯 취급하는 사회에 대해 여성운동은 어떤 목소리를 내왔는가? 여성의 성과 성적자기결정권을 말해왔지 않았는가? 사회에서 어떤 집단의 성욕이 금기시되거나 없는 듯 취급된다는 것은 그 사회가 그 집단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접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이다. 청소년도 마찬가지 처지에 있다.

의제강간 제도로는 해결될 수 없다

청소년들이 비청소년들에 의해 나이권력과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 피해를 경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교사에 의해, 부모에 의해, 고용주에 의해 권력을 이용한 성폭력을 겪거나 목격하는 것은 청소년의 일상에서 드물지 않은 일이고, 청소년에 비해 사회경제적 자원이 많은 비청소년이 청소년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것 또한 구조적으로 일어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이 사회에서 청소년의 인권 현실이 열악하기 때문이고, 청소년에게 비청소년과 동등할 수 있는 사회경제적 자원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며, 청소년을 성적으로 이용당하기 쉬운 위치에 머물게 하는 부실한-섹스하지 말라고나 하는-성교육 때문이다. 청소년이 비청소년에 의해 이러한 폭력을 겪지 않으려면 우리가 비청소년과 동등해져야 한다. 나이권력과 지위를 이용한 성폭력의 문제는 나이권력 자체를 없애고 교사-학생, 부모-자식, 고용주-노동자 관계 등 청소년이 약자의 위치에 놓이게 되는 관계를 평등하게 만들어 해결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성폭력 피해를 겪고도 신고하길 망설이는 것은 부모에게 알려질까봐 우려하기 때문이고, 성폭력을 경험한 당시 정황이 술을 마시고 있었다거나 기타 어른들의 눈에 ‘청소년답지’않은 행동을 했던 정황이라서 비난받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청소년의 신체와 행동에 덧씌워지는 낙인을 제거해야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피해를 호소할 수 있다.

청소년이 겪는 성폭력의 해결책으로 의제강간 연령 상향을 내놓는 것은, 청소년의 주체성과 성적자기결정권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마련하는 대신 청소년의 성적자기결정 능력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처사이다. 게다가 청소년이 타인과 맺는 관계에 대해 공권력이 개입해야 하는 문제로 전환하여 사회적 낙인을 강화하고 가정이나 학교에의 종속을 강화하는 결과를 불러오게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지금도 가정이나 학교에서 청소년의 (특히 비청소년과의)연애를 탄압하거나 그에 징계를 내리는 일이 흔한데, 청소년이 그에 불복종하면 그 대가가 부모와 교사에 의한 신고로 시작해 상대방에 대한 공권력의 처벌로 돌아올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나이권력과 지위를 이용한 비청소년의 청소년에 대한 성폭력은 나이라는 일괄적 기준으로 의제강간을 적용하여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는 청소년 인권의 신장과 나이권력 철폐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며, 성폭력 사안에 대한 사법체계의 나이와 성에 따른 권력에 대한 민감도를 높여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다. 때문에 우리는 의제강간 연령을 상향하려는 법안 발의나 그를 위한 논의에 강한 우려를 표하는 바이다.


2016. 02. 19.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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