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인터뷰] 밀양OO고등학교 학생회장이었던 박경석 일반회원과 만나다

아수나로 부산지부
2022-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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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경석 일반회원이 부산일반노조 조끼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밀양 ㅇㅇ고등학교 3기 총학생회 회장이었던

박경석 일반회원으로부터 이야기를 듣다.


진행 및 기록 : 김찬
편집 : 이라다


학생회장 당선 과정

중학교 때도 학생회장을 했다. 전교생이 40명도 되지 않는 소규모 학교였는데, 한명 한명 만나서 찍어달라고 했다. 그런 데서 다른 사람들과 차별점을 뒀다. 내가 당신들과 좀 더 친밀하고, 내 문제는 당신들의 문제와 같다고 말했다. 고등학교에서도 같은 전략을 썼다. 90명 정도가 있는 학교였는데, 방마다 모여서 얘기할 수 있는 기숙사라는 장점을 활용했다. 3학년 표가 많이 나왔는데, 내가 1, 2학년 때부터 학생회나 학생회 바깥에서 사회적인 목소리를 내고 학교를 바꿔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왔기 때문에 지지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다른 후보들은 입시 같은 것들을 중시했는데 나는 학생운동 하겠다는 마음으로 당선이 되었던 것 같다.

학생들에게 일상적으로 친밀하게 다가가고, 공개적인 자리에서는 구체적이고 급진적인 것을 요구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하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신뢰를 얻었다. 나에게는 신뢰 관계를 만든다는 기본 원칙이 있었다. 내가 믿을만한 구석이 있어야 나를 대표자로 뽑을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행동과 요구와 실천이 대중에게 얼마나 크게 다가갈까? 어떻게 내 행동과 요구가 대중의 요구가 되게 할 것인가? 이런 고민들이 필요하다. 큰 학교든 작은 학교든 똑같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의 경우는 작은 학교였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다가가기 쉬운 점도 있었겠지만, 같은 맥락에서 큰 학교도 일상적인 실천을 하는 등 전략을 잘 짜야 한다.

나중에 흐지부지 되긴 했지만 같이 집회 나가고, 부산 노동절 대회 오고, 노동절 전날에 술 마시면서 밤새 노동영화 보고, 노동절 기본 이해 교육 하고 그랬던 조직이 있었다. 하반기에 들어가면서 만들어 두면 좋다. 공개적인 선거운동도 필요하지만 학생들의 소문이라든지, 분위기라든지, 이런 것들을 잘 활용해야한다. 

교사들이 이야기하는 성실도는 너무 ‘불성실’한게 아니라면 별로 중요하지 않다.  학생들도 대중과 다를 바 없이 이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같은 학교에서 학생으로서의 삶을 동시대에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이 중요하다.

 학생회장이 되면 ‘이런 요구를 해도 되는 걸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된다. 동아리에서는 ‘지금 어떤 요구를 해야겠다’ 싶으면 바로 지르고 집회하고 대자보를 붙였다. 2학년 때 사회언론 동아리에서는 한국지엠 비정규직들의 투쟁에 같이 가자고 했었다. 그런데 학생회장이 되고 나서 학생회 간부들에게는 그렇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너무 급진적으로 다가가면 이 사람들이 떨어질지도 모르겠다는 우려도 있었지만 학생회장이 되고 나서 자기검열을 한 것도 있었다.

 대신 학생회에서는 학교와 원없이 싸워볼 수 있다. 구도를 잘 세우고, 판을 잘 짜고, 요구안 잘 짜고, 학생들만 잘 조직되면 정말 원없이 싸워볼 수 있다. 동아리와 다르게 학교를 바꿀 수 있는 흐름을 만들어 볼 수 있고 지역사회까지 손댈 수 있는 무기다. 노사협의회는 어떤 권한도 없지만 노동조합은 법적 권한이 있는 것처럼, 학생회도 힘이 있다.



학생회에서 했던 활동들

3월 : 학생회 집행부를 조직하다

학교에 불만이 있는, 기존의 학생회를 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주로 인선을 해서 집행부를 꾸렸다. 부회장으로 당선이 된 친구가 성향이 보수적이라 집행부 인선에 개입하지 않아서 나만 간부를 인선했다. 그리고 집행부 체계를 변경했다. 원래 학생회에 실무 단위 부서가 선도부, 문체부, 총무부, 환경부, 도서부가 있었는데, 선도부를 기획부로, 환경부를 홍보부로 개정했고 총무부 역할을 강화했다. 결정 단위는 맨 위에 있던 교장, 생활부장, 교감을 뺀 후 대의원제도를 넣었다. 원래 학생회에 의결 단위가 없었고, 학교의 결재와 허가를 받는 구조였는데 처음 학생회부터 최고 의사결정 단위를 새로 꾸렸다.


4월 : 세월호 5주기 추모 행사를 주최하다

4월 15일, 학교 안에서 세월호 5주기 추모 행사를 했다. 학교 강당에 모여 세월호 관련 영상을 보고, ‘잊지 않을게’ 같은 노래를 같이 부르고 ‘바위처럼’과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공연했다. 리본은 세월호시민모임에서 받았다. 행사 마치고 뒷자리에서 엽서도 썼는데, 그림 그리는 친구들이 직접 디자인해서 스티커와 엽서를 만들었다. 엽서를 모아서 줄로 이어 중앙현관에 게시했다. 현수막을 만들었는데 가운데에 노란 리본을 넣어두고, 주변에 학생들이 아크릴 물감으로 손도장을 찍게 했다. 4월 한 달동안 추모기간을 정하고 게시를 했다. 현수막 만들고 엽서 만든 건 학생들이 좋아했고 기억에 남아했다. 


[사진] 세월호 추모 행사에 참여한 밀양영화고등학교 학생들이 둘러앉아서 엽서에 글을 적고 있다


 아쉬운 점은, 장소 배치를 학교에서 원래 하던 대로 하지 않고, 강당이나 운동장에 둘러 앉아서 문화재를 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싶다. 수평적인 관계에서 함께 즐기는 문화재를 했어야 했는데, 학교가 주최했던 행사를 그대로 벤치마킹하다보니 학생들에게 딱딱하게 다가갔던 것 같다. 학교에서 사전 탄압이 있었다.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지 말라고 했는데, 문화재 도중 묵념할 때 임을 위한 행진곡 반주를 틀었다. 학교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운동성을 녹여내려고 했다. 그리고 이 행사 후에 독감에 걸렸다. 너무 아파서 집회 끝나고 쓰러졌다…


4월 : 대의원대회를 소집하다

학생인권조례제정을 위한 경남촛불시민연대 가입 여부 안건이 발의되어 대의원대회를 소집했다. 사전에 조직을 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안을 던졌는데, 그 바람에 부결되어 버렸다. 일부 학생이 교권 침해 등의 이유로 학생인권조례제정운동을 하면 안된다고 하면서, 안에 반대하고 악선전을 했다. 그래서 약간 편법을 써서, 학생회 소속인 학생인권부가 지역 연대 사업의 개념으로 촛불시민연대에 참여했다. 

 

5월 : 체육대회를 준비하다


[사진] 체육대회를 즐기는 학생들


 사업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스타일 차이가 많이 드러나게 된다. 그러면서 갈등이 불거진다.  체육대회가 큰 행사이다 보니 의견차이가 생겼다. 부서들끼리, 간부끼리 엄청 싸웠다. 활동을 안 해본 사람들이 하기 어려운 일이 있는 것 같다. 조직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책임과 권한을 맡겼을 때 옆에서 붙잡아주고 가이드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했다.  우여곡절 끝에 체육대회를 했고, 결국에는 잘 마무리 되었으니까 갈등이 봉합되는 듯 싶었다.

학생회 간부로 3학년들을 많이 인선했는데 체육대회 이후로 3학년들이 입시에 들어갔다. 핵심직책을 맡았던 3학년들이 활동을 포기해버리니까 학생회 동력이 조금씩 빠지기 시작했다.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6월: 기숙사 생활 문제로 학교와 싸우다

회의에서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교장이 나를 불렀다. 불러서는 학생회와 학교는 서로 잘 풀어가야 할 관계이지 교섭의 대상이 아니다, 이런 얘기를 했다. 벌써부터 학생회 기를 꺾으려고 하는 분위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기숙사에서 학생들의 생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기숙사 방 안에서 외부 음식을 먹으면 경위서를 써야 하고, 불을 켜고 있으면 경위서를 써야 하는 등 생활 통제가 심했다. 기숙사 사감이 방송으로 시끄럽다고 소리를 지르고 그랬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해 말이 많았다.

학교가 영화를 가르치는 고등학교라 연출가나 배우가 되려고 하는 이들이 있었는데, 배우는 몸매 관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외부 음식을 먹어야 했다. 자기 입시에 민감한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기숙사에 외부 음식 반입을 막는 학교에 대한 불만이 커져서, 결국 학부모들 귀에도 들어갔다. 그래서 학부모회가 학교에 찾아와서 따지기 시작했다.

학부모회에 대해서도 얘기할 게 많다. 원래 1, 2기 학부모회 간부진은 민주적인 학교운영과 입시가 위주가 아닌 대안교육과정을 중시했는데, 내가 학생회장이 된 3기 학부모회부터 기조가 바뀌었다. 3기 회장 부회장 둘 다 학교 입시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입시경쟁 반대를 기조로 사업을 구성했으니까 노선은 맞지 않았다. 그런데 기숙사 문제에 있어서는 궤를 같이 했다. 학부모회장이 우리에게 먼저 만나자고 했고, 우리는 학생회가 학교와 협상을 할테니 학부모회가 압박을 넣어달라고 요청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하다가 단체교섭을 하자는 안이 나왔다. 노동조합을 보면 특정 사안에 대해서만 협약하는 특별단체협약이 있다. 예를 들자면, 한국철도공사의 자회사에 소속된 비정규직들의 권리를 철도노조가 단체협약만으로는 정리할 수 없다. 그래서 비정규직 문제를 가지고 특별 교섭을 통해서 특별단체협약을 만드는데, 그런 형태를 따온거다. 기숙사 문제에 맞춰서 교섭하기 위해 교섭특별위원회를 구성했고, 사무국장과 기획부 부원들이 교섭요구안을 만들었다.

면담에는 학부모 대표 몇 명과 학생회 3명, 그리고 학교 측에서는 교무부장과 생활부장이 참여했다. 교장은 책임을 회피하고 빠졌다. 학교는 끝까지 못하겠다고 했고, 우리는 숨겨서라도 음식물을 기숙사에 들여오겠다고 했고, 학부모회는 음식 먹는 게 뭐가 문제냐고 했다. 결국에는 학교에서 기숙사 음식물 반입을 허용한다고 밝혔다. 기숙사 방 안에는 음식을 들고 들어가지 말아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해서 기숙사 각 층마다 냉장고를 설치하고 상자 안에 과자를 넣어둬서 중앙현관에서 먹을 수 있도록 했다. 원래는 우리가 사감 교사와 적대적인 관계였는데, 사감이 학교비정규직노조 소속이라서 총파업 이후 사이가 좋아졌다. 그 관계를 이용해 사감과 잘 얘기해서 나중에는 기숙사 방 안에서 음식을 먹는 것도 허용이 되고 그랬다.

또한 기숙사를 비롯한 학교생활 전반에서 실질적으로 학생인권이 보장되게 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협약을 맺는 것을 넘어서, 학생생활규정를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런 판단에 따라서 학칙개정위원회에도 참여했었다.


[사진] 학칙개정위원회에서 학부모 대표와 학교측 대표, 학생측 대표가 의견교환을 하고 있다.

원래는 학교와 단체협약을 맺는 게 목적이었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그나마 성과라고 한다면 학교와 학생회가 같은 테이블 위에서 협상을 했다는 점, 명문화하지는 못했지만 기숙사 음식물 반입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한계점이 많다. 학생회를 중심으로 학생들이 조직화되었다면 여러가지 투쟁도 배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대중조직화가 되지 못한 건 한계이다. 무엇보다 나의 의지만 앞섰다. 동아리와 달리 학생회는 학생 전체의 조직인데 내가 독선적으로 행동했던 것 같다. 특히 교섭 부분에서, 요구안에 대한 의사를 수렴해야 했고, 간부들의 의지를 확인해서 의지가 없다면 교육을 하던가 교섭을 미루던가 해야 했다. 하지만 1학기 안에 끝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간부들을 압박했고, 그래서 교섭이 실패했다.

내가 졸업하고 나서도 학교가 자기들 입맛대로 규정을 바꾸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단체협약을 하려고 했다. 단체협약이 유지되면 투쟁의 성과가 이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 전에 학교에 들렀는데 교섭 이전처럼 하더라…


7월: 학교비정규직 총파업에 연대하다.

2019년 7월에 민주노총에서 공공부문 비정규직들을 중심으로 총파업을 했고 우리 학교에 근무하시던 교육공무직들이 전원 파업에 들어갔다. 처음에는 학교 조합원들이 파업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학교에 조합원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급식소 문 앞에 조합원 분들이 파업에 들어간다, 학생들의 응원을 부탁한다고 대자보를 붙이셨다. 부랴부랴 집행부 회의를 열어서 대자보에 응원 메시지를 달고, 학생회에서 총파업 지지 성명서 내고, 행동지침 내리고, 총파업 관련 교육을 진행하자고 결의했다. 나는 대자보를 썼고, 총파업 전날 총파업을 하는 이유에 대해 교육했고, 학생회 행동 지침을 내렸고, 총파업 지역연대 참여 조직을 했다.


[사진] 공공부문 비정규직 총파업 당시 제작한 학생회 행동지침의 일부

광주지부장을 따라다니면서 찍은 영상이 있었다. 그걸 보면서 학생 한명이 울었는데, 그런 게 기억에 남는 것 같다. 급식소 조합원들과 친하게 지내던 학생들이 조합원들한테 음료수 사다주고 하는 것 보면서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나머지 평학생들 관심이 저조했다. 그 사람들을 조직하지 못한 건 내 책임이다. 총파업 연대는 내가 알려지는 계기였는데, 내가 알려지는 게 아니라 밀양영화고 총학생회가 결합한다는 게 드러나야 했다. 그런데 학생회장이 그냥 개념있게 연대한다는 것이 강조되었다. 학생들을 조직하고 공동의 목소리를 내게 만들어야 했는데 실패했다. 다른 사람들과 보조를 맞췄어야 했는데 내 의지만 너무 높았다.


학생회 활동이 꺾이다

여름방학을 틈타서 1박 2일짜리 간부 수련회를 하자고 했다. 학생인권조례 교육도 하고, 영화보고 분임토론도 하고, 음식도 만들어 먹는 대략적인 계획을 짰고 간부진 내부에서 합의가 됐었다. 그런데 중간에, 입시준비를 해야 하니 수련회를 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반기에는 학생회 활동을 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나도 의지가 확 꺾였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활동하는데 쟤네는 왜 저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의지도 있고 역량도 있던 구성원 한 명이 나하고 대판 싸우고 나가버렸다. 활동을 잠시 그만뒀다가 부회장하고 다시 와서는 2학년 집행부를 꾸릴 테니 개학하면 권한을 넘기라고 했다. 정치적으로 내가 실패했다. 권한을 모두 넘겼다. 차라리 그렇게 해서 2학년 학생회가 잘 돌아갔으면 후회하지 않았을 거다. 어용이 되어버린 것도 아니고, 아무 활동도 못하고 가만히만 있더라. 그러면서 욕은 학생회장인 내가 다 먹었다. 9월부터는 다 포기하고 지냈다.

그런 시기를 보내고 나의 학교 안 활동은 마무리되었다.


하지 못했던 활동들

원래 2학기 때 정세에 맞추어 총노선과 투쟁 기조를 설정해서 학교를 대상으로 열심히 투쟁을 하려고 했었다. 학생 총회에서 하반기에 재정 독립을 하기로 의결했는데 사무국장, 총무부장 다 증발하는 바람에 집행되지 못했다. 총여학생 특별위원회도 만들려고 했었다. 학교에 3학년을 중심으로 페미니즘 동아리가 생겼었다. 내부적으로 책도 읽고 하반기에는 텀블벅 후원을 받아서 여성 홈리스를 지원하는 등의 활동을 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총여학생회를 구성해보려고 했는데, 조직적 흐름에는 관심이 없더라.


학생회 활동 총평

입시가 문제다. 확고한 목적 의식이 있는 활동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의식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흔들렸고, 나도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흔들렸다. 외부조직과 연결되어있어야 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수나로에서 활동함과 동시에 학생회 활동을 함으로써 지원을 받던지 했어야 했는데, 뼈저리게 후회된다. 경남학생인권조례 때문에 지역 상황도 좋았는데 그런 관계를 끊어냈으니까 아쉽다. 나를 동지의 관점에서 비판할 사람이 없었다. 결국 나는 혼자 독선적으로 움직이고, 집행부에서는 내가 이해가 안되고, 일반 학생들은 지치고…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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