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활동가 인터뷰] "불만을 이야기했을 때 의제가 되고 활동이 된다." 적운님 인터뷰

아수나로
2020-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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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 인터뷰] "불만을 이야기했을 때 의제가 되고 활동이 된다." 적운님 인터뷰



아수나로에서 계간으로 소식지를 발간하면서 매번 활동가 인터뷰를 한 편씩 싣도록 했습니다. 이번 인터뷰는 천안지부에서 활동하고 계신 적운님의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아수나로 활동을 하시게 되었는지, 적운님과 함께 활동하기 위해 다른 회원들이 알아야 할 점은 무엇인지 인터뷰를 통해 확인해보세요!



▲ 적운님이 보내주신 적운님의 모습. 평소에 마라탕과 술을 좋아하신다. 정말 똑같이 생기셨다!! (인터뷰어 인증) 


아수나로는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나?


사실 가입을 2번 했다. 중학생 때 처음 가입했었는데 그 때는 학업이 있기도 했고, 활동이라는 게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서 첫 모임을 나간 이후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았는데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너무 힘들어서 자퇴를 하게 됐다. 자퇴하기 전 마지막 수학여행 날 아침에 불현듯 아수나로가 떠올랐다. 이알한테 문자를 보내서 “몇 년 전에 가입했던 사람인데, 자퇴해서 다시 활동할 수 있게 되었어요” 라고 했다. 그러면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 적운님이 이알님에게 보낸 문자. 적운님의 옛 활동명은 찬야다.


두 번째로 가입하고 나서는 활동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처음 가입했을 때와 달랐던 것은?


처음 모임에 참여했을 때, 당시 있었던 회원 중 한 명이 삐라 어쩌고, 집회에서 연행될 때 어떻게 해야 된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데 왠지 폭력적인 시위 현장이 연상되고 소위 ‘빨간’ 느낌이 강해서 부담스러웠다. 그 때는 자퇴를 할 생각이 없었으니까 학업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다시 들어왔을 때는 그런 이야기를 했던 회원이 나갔고 이알만 혼자 있었다. 비슷하게 작이님이 들어왔는데 같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나쁘지 않았다.


자퇴 고민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중학생 때부터 학업 스트레스가 심했고 정신 건강이 많이 안 좋아졌다. 어떻게든 버티면서 지냈는데 고등학교 들어오고 나서 친구들과 심리적으로 갈등을 빚게 됐다. 친구 관계에서도, 학업에서도, 가정 내에서도 지쳤다. 이대로는 내가 왜 학교를 다니는지 모르겠고, 일어나서 학교 갔다가 다시 집 와서 자는 일상이 반복되는 게 너무 무의미했다. 그래서 자퇴를 결심했다.


아수나로에서 활동을 하기까지 어떤 생각의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는 주변에 어떤 어른들이 말하거나 요구하는 게 당연한 건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 허무했다. 예를 들면, 초등학생 때까지만 해도 집 안에서 가족들, 친척들을 따라다니면서 밥을 같이 먹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다양한 집안 환경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드라마에서는 화목한 가정만 나오는데 주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아빠가 안 계신 친구도 있고, 가족들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집도 있다고 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신선한 충격이었다. 한번 깨지기 시작하니까 다른 것들도 그렇게 보게 됐다. “너희가 화장하면 피부 상한다, 그래서 못하게 하는 거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이 말이 진짜일까? 교사들은 그러면 왜 화장을 하는 걸까?’ 이런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 동안 급진적으로 변했는데 대립되는 의견들 사이에서 어떤 게 맞는지 갈팡질팡했던 것 같다.


본인은 화장을 했는지?


원래 하지 않았다가 사회 시간에 인권을 처음 배우게 되었다. 자율권이라는 개념을 배웠는데, 배운 걸 적용해보니 학교에서는 자율권을 다 침해하고 있었다. 문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이후로 반항하는 의미로 피부 화장도 하고 입술, 눈 화장도 했다. 그러다보니 재밌다고 느끼게 됐다. 예전에는 진하게 했는데 요즘에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거나 밤을 샐 때만 한다. 자퇴하고 나서는 반항을 하는 의미보다는 재밌어서 하는 게 크다. 코스프레하는 취미가 있어서 그 때도 화장을 진하게 한다.


코스프레에 대해 더 이야기해달라.


SNS에서 처음 접하고 재밌겠다 싶어서 가발을 처음 사봤다. 근데 계속 숨겨야 될 것 같고 사람들이 이해를 못해줄 것 같아서 잠깐 하고 못했다. 그러다가 일 년쯤 뒤에 문득 생각이 다시 나서 좀 더 본격적으로 하게 됐다. 그 후에는 행사도 가고, 사실 올 해 초까지 갔는데 코로나 때문에 못 가고 있다. 서울랜드에서 코코페스티벌이라는 행사가 있는데 입장권도 저렴하고 놀이기구를 무료로 탈 수 있다. 그래서 거길 갔었다.


학창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큰 에피소드가 별로 없다. 얌전히 선생님 말 잘 듣고, 친구들한테 또라이 소리 듣는 학생이었다. 그러다가 자퇴를 할 때 친구들과 말하지 않고 확 해버렸다. 사실 정신 상태가 좋지 않아서 말할 힘이 없었다. 그 당시에 그나마 관심사가 맞았던, 트위터 친구였던 사람들과만 연락이 닿는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는 다른 위치에서 다르게 응원하고 있다. 활동지원비를 받다보니 개인 용돈이 조금 여유로워서 시험 기간에 친구들한테 기프티콘을 보낸다. 그게 익숙해지니까 자꾸 사달라고 하긴 하는데... 한 친구가 지금 계속 미쯔 시리얼을 사달라고 한다.


학교 친구들과 아수나로에서 만난 사람들은 어떻게 달랐나.


활동가가 아닌 친구들은 불만이 있으면 조금 욕하다가 수긍한다. 원인이 되는 대상에 따지기 보다는 주변 친구들한테 욕하는 정도로 그친다. 그런데 여기는 그런 이야기를 하면 의제로 만들고 활동을 해보자고 한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그렇게 힘들면 같이 고쳐 볼 생각을 해보자’고 하고 싶기도 한데,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체념하고 받아들이니까. 친구들이 그렇게 사는 게 편하다고 해서 이해는 하는 편이다.


활동을 지속하게 하는 요소는 무엇일까.


지금은 단체에 적응하기도 했고, 단체에서 만난 인간관계도 생겼다. 무엇보다 단체 활동을 하면서 ‘이런 것도 인권 침해이구나’ 하는 것들을 점점 더 알게 되니까 불편해지는 게 많아졌다. 그런데 그걸 주변에 말하면 대부분 이해를 못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니까 여기 와서 말할 수밖에 없다. 이미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리는 느낌이다.

처음에 충격 받았던 게 언니 오빠에 대해서 쓰지 않는 것이었다. 미성년자에 대한 통제나 억압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일상적인 표현들에도 나이주의가 작용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타협점은 있는 것 같다. 친척 동생들이나 예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들한테 누나라고 부르지 말라고 할 수도 없어서. 새로 알게 된 사람들한테는 “누나/언니라고 부르지 않으셔도 되어요.”라고 말한다.


적운님과 같이 활동하기 위해 알아야 할 점?


지부 활동을 계속 하고 싶은데 때때로 몸이 안 따라준다.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갑자기 잠수를 탄다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장이 났다는 뜻이다. 컨디션의 기복이 심한 편이다. 또, 아직 부모와 같이 살고 있어서 가정 때문에 구속되는 점이 있다. 통금이 있지는 않은데 말없이 너무 늦게 들어간다거나 집안에 일이 있는데 활동을 하러 나가면 부모와 눈치 싸움을 한다. 갑자기 할머니가 식사하자고 하면 거절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정해진 일정을 참여하지 못하게 될 때가 있다.


활동하면서 본 아수나로는 어떤가? 따끔한 한 마디를 하자면?


개인적으로 활동을 몇 년째 하고 있는데도 어떤 장벽이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술을 마시다가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고 주변 사람들이 따라 부른다. 나는 민중가요 같은 것도 하나도 모르는데... 이제 적응해서 그냥 하하 웃는데 새로 오시는 분들한테는 많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싶다. 운동권은 마이너한 감성이라는 걸 아셔야 한다. ㅋㅋ


마지막으로 인터뷰한 소감을 말해 달라.


평범한 인터뷰 질문이기는 했는데 잘 기억이 안 나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조금 힘들었다. 내 이야기를 이렇게 한 시간 가까이 한 적이 거의 없다. 남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잘 하는데 내 이야기를 한 경험은 별로 없었다. 스스로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 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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