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눈으로 본 학교 폭력 4]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학교폭력을 당했다

아수나로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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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학교폭력을 당했다

- 학교는 다른 의견을 말할 수 없는 공간? 변화 위해 모두가 노력해야


글쓴이 : 이윤

게재일 : 21.04.15 오마이뉴스, 21.04.19 일다 게재

기사 링크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35250&CMPT_CD=SEARCH (오마이뉴스)

https://n.news.naver.com/article/007/0000006763 (일다)

Photo by Jen Theodore on Unsplash   


학교와 교육의 이야기를 할 때 빠짐없이 나오는 주제가 있다. 학교폭력이다.


학교폭력이 지금처럼 심각하게 다뤄지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전에는 학생들 사이에 일어나는 작은 다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따돌림과 같은 학생들 사이의 학교폭력이 물 위로 올라오고, 인터넷상에서 일어나는 사이버 학교폭력이 화제가 되면서 학교폭력은 우리 사회가 해결해 나가야 할 큰 문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하지만 학교폭력은 정말 사라져 가고 있을까?


페미니즘에 대한 증오, 학교 안에서 폭발하다


3년 전 학교 내 청소년 페미니스트들이 겪는 학교폭력에 대한 주제가 잠깐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학교 내에는 청소년이 있는 곳이니 당연하게도 인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는 학생들이 있었고, 그중엔 페미니스트인 학생도 있었다.


이들은 책을 읽거나 저널을 통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일상 속에서 존재하던 '불편함'들의 실체를 알게 되었다. 모든 청소년 페미니스트가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자신의 의견을 강력히 주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학생은 일상생활 속에서 그들이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묵인하고 생활했다. 자신의 생각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말하기까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기를 가지고 이를 토로한 학생들에게 다가온 것들이 좋은 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바로 페미니즘에 대한 증오를 토대로 한 학교폭력 때문이다.


이 폭력에는 실체가 없다. 아무도 왜 페미니스트가 나쁜지, 페미니즘 발언을 한 것이 괴롭힘의 대상이 되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가해자들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해자들에게 있어서 페미니스트는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사람들이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그냥 대다수 사람이 페미니스트를 욕했기 때문에 그들도 페미니스트를 괴롭혔을 뿐이다. 그리고 이 무지에서 비롯된 폭력은 고스란히 페미니스트 학생이 받게 되었다.


나는 이러한 학교폭력의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 이 일은 3년 전인 중학교 3학년 때 겪은 일이지만, 아직도 나는 학교폭력에 대해 원만하게 대처할 자신이 없다.


내가 겪은 일들은 좋지만은 않게 끝났다. 내가 학교에서 페미니즘에 관련된, 당시 많은 학생이 좋아하던 유행어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이후 나는 학교폭력을 당했다.


시작은 8명 정도 되는 남학생들이 나를 둘러싸고 큰소리로 욕설과 폭언을 한 것이었다. 이때 나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었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쓰러져서 우는 것뿐이었다.


그 이후로 3개월간 나와 같은 학년의 거의 모든 남학생이 나를 향해 욕설을 뱉었다. 수업 중간에 반 남학생들로부터 욕설을 들은 적이 있었고, 복도에서 한 남학생이 내 등을 발로 차 교복에 발자국이 생긴 적도 있었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모두가 나에게 참으라고 했다


괴롭힘으로 힘들었던 3개월 동안 교사와 다른 친구들은 내게 참으라고만 했다. 내가 반응을 하니까 남학생들이 나를 더 괴롭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누군가 나를 차고 갈 때조차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3개월동안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음에도 학교폭력은 끊이지 않았고, 결국 나는 담임교사에게 학교폭력위원회(아래 학폭위) 소집을 요청했다. 그러나 거절당했다. 3번째 요청에서야 결국 학폭위를 열 수 있게 되었다.


담임교사는 내게 종이 한 장을 줬다.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날짜, 시간, 사람 등을 포함해 적으라고 했다. 나는 그 사이에 일어난 모든 일을 기억하지 않으려고 애썼기 때문에, 상세한 일을 적을 만한 기억이 없었다.


그러한 기억이 없음에도 나는 종이 절반을 넘게 수월히 써 내려갔다. 방학 중에 학폭위가 열렸다. 방학 중에 친권자와 함께 방문한 학교는 덥고 조용했다. 꽤 큰 타원형 탁자가 방의 대부분을 채웠고, 그 탁자 주위로 몇 명의 사람이 앉아있었다.


그들은 나에게 질문 몇 가지를 던졌고, 나는 그 질문에 최대한 똑바로 답하려고 노력했다. 결과는 악몽과도 같았다.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사과했고, 충분히 반성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니 아무런 처분도 내리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가해자들은 내게 어떠한 사과의 말도 한 적이 없었고, 나는 그들에게서 반성하는 태도를 본 적이 없었음에도 말이다. 학폭위가 끝난 후 내가 겪은 모든 일은 별것 아닌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나는 남은 반년 동안의 시간을 지난 3개월과 똑같이 보내야 했다. 그들은 여전히 복도를 걷는 나를 향해 욕설을 뱉었고, 나는 최선을 다해 무시했다.


3년 전 청소년 페미니스트가 겪은 학교폭력이 SNS에서 화제가 되었을 때, 나 역시 내 피해 경험담을 SNS에 올린 적이 있었고, 기사화되기까지 했다. 기사화되고 난 후 해당 지역 학교폭력 전담 경찰관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난 더 이상 도움을 요청할 힘이 없었다. 학교에서 배운 것대로 가해자들을 무시하고,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학폭위까지 열었음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서 더 이상 다른 곳에 도움을 청해봤자 나만 실망해 갈 뿐이라고 생각했다.


보호자도 내 생각을 싫어하지 않을까?


내가 겪은 학교폭력만이 청소년 페미니스트에 대한 학교폭력의 전부는 아니다. 이 문제가 화제가 되었을 당시에도 많은 청소년 페미니스트가 겪었던 학교폭력 사례가 나왔었다. 그중엔 언어적인 폭력이나 간접적인 괴롭힘이 아닌 직접적인 폭력을 당했던 피해자들도 많았다.


그 많은 사례 중 공통점은 피해자들이 받았던 폭언에는 모두 페미니즘에 관한 혐오적인 표현이 많았다는 것이다. 이 페미니스트 학생들이 당했던 일들은 학교폭력임이 당연하다. 하지만 이 많은 학생 중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맞은 조치를 받을 수 있었을까?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사회적으로 편견과 혐오의 대상이 되는 소수 의견을 가졌다는 이유로 일어나는 학교폭력의 피해자는 보호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기가 더 어렵다. 일반적인 학교폭력도 보호자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힘든 것이 사실인데, 이런 학교폭력에서는 모두가 학교폭력의 원인이 피해자 때문이고, 피해자에게 잘못이 있다고 말하며, 피해자가 변하기를 종용한다.


또한 피해자는 보호자가 자기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이미 학교에서 폭언을 당했으니 보호자 또한 자신의 생각을 싫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만약 진짜 그렇게 된다면 피해자는 학교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아닌 학교폭력과 함께 가정폭력을 견뎌야 할 수도 있다. 피해자는 이런 상황을 가정하면서 도움을 요청하고 최선의 방안을 찾는 것이 아닌 현재 자신에게 놓인 상황을 견디는 것을 택하게 된다.


보호자가 아니라 교사나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지만, 내가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편견을 가지고 부당한 판단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결국 보호자에게 이야기가 흘러갈 수밖에 없다. 학교는 아직 도움을 요청하기 쉬운 환경이 아니다.


괴롭힘은 나조차 내 생각을 부정하게 만든다


학교폭력에는 원인이 없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학교폭력에는 특정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런 학교폭력의 원인은 무엇일까. 아마 대다수의 학생과 다른 의견이 원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일차원적인 원인은 이 이유가 맞을 것이다. 의견 차이를 원인으로 한 학교폭력은 피해 학생에게 하여금 자신의 생각이 문제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사람은 지속적으로 괴롭힘과 압박을 받으면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너의 생각이 괴롭힘의 원인이라고 말한다면, 피해 당사자는 자신을 탓할 것이고 자신의 생각을 탓할 것이다.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에서 생각을 말했을 때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아주 작은 괴롭힘과 험담이 자신의 생각을 부정하게 만든다는 것을. 내가 그렇다. 나는 아직도 페미니즘에 관련된 의제를 접하는 것이 껄끄럽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꺼냈을 때 또다시 비슷한 폭력을 접하게 될까 봐 지레 겁먹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청소년 페미니스트만이 겪는 문제만이 아닐 것이다. 페미니스트뿐만 아니라 비건, 노동권, 퀴어 문제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청소년들이 똑같이 고민하는 문제이다. 지속적인 괴롭힘은 정상적인 생각을 힘들게 만들고 자신의 생각을 의심하고 탓하게 만들어서 결국 남들과 다른 의견을 꺼내기 힘들게 만든다.


이 폭력의 결과가 정상치 않다는 것은 모두가 인지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이런 결과를, 학교폭력을 막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무엇을 해야 한다고 명확한 지시를 내릴 수도 없고 잘 모르지만, 이 하나에 관해서는 모두에게 청하고 싶다.


학교폭력에 대해 관심을 가져줬으면 하는 것이다. 직접적인 도움은 어렵지만 피해자의 경험에, 관련된 기사나 글에 관해 관심을 두는 것 또한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옛날에 괜찮았던 것들이 점점 괜찮지 않은 것들이 되어가는 것처럼, 학교폭력이 쉽게 넘어갈 일이 아니게 되길 바란다.


12년 동안 학교에서 생활하고, 학교폭력을 겪고, 수많은 학교폭력 사례를 보며 느낀 것은 학교는 사람이 성장하기 좋은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사회가 현재의 학교를 교육기관으로 사용하면서 자기 의견이 없는 사람을 길러내고자 하는 것이라면 학교는 바뀌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사회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는 길은 이 방향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는 마땅히 바뀌어야 할 것이고, 더 건강한 사회를 원한다면 많은 사람이 학교 내 학생의 고통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학교의 변화를 위해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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