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눈으로 본 학교 폭력 2] '평범한' 학교폭력 가해자, 내가 겪은 '사소한' 학폭 - '강력한 처벌' 논의된 2011년, 내가 피해를 말하지 못한 이유

아수나로
2021-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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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학교폭력 가해자, 내가 겪은 '사소한' 학폭

'강력한 처벌' 논의된 2011년, 내가 피해를 말하지 못한 이유 


- 글쓴이 : 무근지

- 기고일 : 21.04.06 오마이뉴스에 게재

- 기사 링크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733191&CMPT_CD=SEARCH


ⓒ연합뉴스 


[이전 기사] 학교폭력, 왜 그때 해결하지 못했을까? http://omn.kr/1sq64


운동선수, 연예인을 가해자로 지목하는 학교폭력 폭로와 그에 대한 진실 공방이 멈추지 않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은 보통 20대 초반으로, 2011년에 발생한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을 기점으로 수많은 학교폭력 근절 대책이 쏟아져 나온 시기에 청소년기를 보냈다.


나도 그들의 또래이고, 당시 학교폭력 피해자였다. 당시 학교폭력의 양상과 사람들의 인식, 제도의 영향 등을 피부로 느꼈다. 모두의 경험은 다를 테고, 나의 경험이 그들을 대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나는 '사소한' 학교폭력에 초점을 두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나의 경험과 생각을 말해보려 한다.


누가 가해자인가?



괴롭힘의 발단은 안경닦이 한 장이었다. 중학생이 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취미가 비슷한 몇몇 친구들과 한 애니메이션 행사에 다녀왔다. 우리는 그곳에서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진 물건들을 샀고, 아무 생각 없이 학교에 가져갔다. 그리고 그날 우리는 '기분 나쁜 오타쿠들'이 되었다.


괴롭힘의 종류는 다양했다. 온 학교에서 들리는 "아 오늘 기분 OOO 같다"라는 욕에는 내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 사물함을 망가뜨리거나 물건을 버리고 모르는 척하거나, 구석에 사람을 몰아넣고 여럿이 둘러싸 욕설을 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로 표현 할 수 있는 에피소드들보다 고통스러웠던 것은 어떤 '계급'에 속하게 되는 일이었다. 학교에는 계급이 있었다. 성적이 어떻다거나, 외모가 저렇다거나. 명확한 기준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모든 학생들이 누가 '잘나가는' 앤지, '찐따'인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회에서 내 계급은 '그래도 되는' 사람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무시하거나 깔봐도 되는 사람. 상을 받아 강당 단상에 올라도 박수쳐주지 않아도 되는 사람. 같은 모둠으로 묶였을 때 찌푸린 얼굴을 숨기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 눈에 보이지도, 손으로 만져지지도 않는, 하지만 모두가 동참하고 있는, 그 갑갑한 분위기가 나를 옭매었다.


2011년에 있었던 대구 중학생 자살사건 이후, 학교폭력 실태조사실시, 스쿨 폴리스의 배치, 가해 사실 생활기록부 기재, 교내 CCTV 설치 확대 등 많은 학교폭력 대책이 등장했다.


하지만 당시 피해자였던 나에게 이 모든 것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 모든 대책들은 '악마'와도 같은 가해자를 처벌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일들은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 그저 행한 일이었다. 그 누구의 생기부도 위협받지 않았고, 그 어떤 스쿨 폴리스도 출동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더 괴로웠다. 아무도 내가 겪은 일이 폭력이라고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에.


그렇지만 만약 그때의 나에게 누군가를 가해자로 지목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대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도대체 누구를 지목한단 말인가? 가해자는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는데. 그날 "기분 OOO 같다"고 말한 사람이 한둘일까? 발표를 앞두고 비웃음당할 거라며 지레 떨었던 것은 누구의 탓인가? 앞자리 남자애? 방관하던 교사?


나는 지금의 유명인 학교폭력 이슈 중 어떤 고발에 대해 반박에 반박이 반복되고 있는 이유가 위와 비슷한 이유 때문이 아닌가 추측한다. 아마 그렇다면 그 논박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가해와 방관이 뒤섞인 분위기 속에서 일어난 일은 가해자를 특정하기도, 단죄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사소한' 폭력


엄중한 처벌을 통해 학교폭력을 방지하겠다는 수많은 대책은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내가 겪은 것이 정말 가해자로 지목될 누군가의 인생을 끝장낼 정도의 대단한 폭력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벌 수위가 높아졌다고 폭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경우에는 피해자들이 자신이 느낀 고통의 심각성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사소한' 것이라고 치부하게 하여 도움을 요청하기 더 어렵게 만든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그랬듯이 말이다.


학교폭력에 개입하는 정책의 목표는 가해자 처벌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피해자 지원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피해자가 자신이 겪는 고통을 '사소하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그리고 특정한 가해자를 짚을 수 없더라도 자신의 폭력 피해 사실을 마음 편히 알리고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지금의 유명인 고발 양상은 단순한 재밋거리로 편집되어 언론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떠돌고 있다. 학교폭력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피해자가 뒤늦게라도 회복하기 위해서 어떤 대책이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로 이어지지 못하고 가해자를 악마화하고 단죄하는 데 그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학교폭력을 예방하기는커녕, 지금처럼 자극적인 가십거리로 소비하는 데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누구도 사소한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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