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의 눈으로 본 학교 폭력 5] 전교생 앞에서 '커밍아웃'하다

아수나로
2021-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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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에서 '커밍아웃'하다

- 젠더퀴어의 학교에서 살아남기... 성중립 화장실, 교복 선택권 등 차별로부터 보호받아야  


글쓴이 : 이다솜

게재일 : 21.04.22 오마이뉴스

기사 링크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47/0002310208?sid=102

ⓒ unspalsh 


학교폭력이 이슈가 되고 있다. 유명인들의 학교폭력 가해를 고발하고 공론화하는 등 논란이 뜨겁다. 그런데 이런 이슈에서 성소수자 같은 소수자의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당하거나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괴롭힘당하는 등 다른 학생들에 비해 더 쉽게 학교폭력에 노출되고 있음에도 말이다.


이들은 학교폭력에 더 쉽게 노출될 뿐만 아니라 보호받거나 도움받기도 힘들다. 나는 성소수자 당사자로서 학교에 다니며 경험했던 것들과 함께 성소수자가 안전하게 학교에 다니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커밍아웃을 결심하다


나는 현재 중·고 통합 6년제 기숙형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으며, 올해로 6학년이 되었다. 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친한 친구의 커밍아웃을 계기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성소수자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다. 이 과정은 내가 과거에 느꼈던 '남·여로 나뉜 줄에 서기 싫었던 것'과 같은 감정들의 언어를 찾는 과정이 되었다. 그렇게 1학년 겨울방학이 되기 전, 나는 나를 젠더퀴어(여성과 남성이라는 젠더 체계에서 벗어난 사람), 범성애자(모든 성별 혹은 성별에 관계없이 성적·감정적 끌림을 경험하는 사람)라고 정체화했다.


스스로를 성소수자로 인식하고 나니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그전까지는 불편하다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여자'화장실, '여자'기숙사에 들어가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여자화장실에 가기 싫어 물을 덜 마시게 됐고, 학교에서 종종 하게 되는 설문에 남·여로 나뉜 선택지 중 어느 것도 선택하지 못해 몇 분이고 붙잡고 있기도 했다.


기숙사 방에서 선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잘생긴 남자', '좋아하는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나왔다. 학교 행사에서는 남·여로 짝지어 손을 잡게 하거나, 남학생이 '여장'을 하고 나와 공연하는 것을 웃음거리로 소비하기도 했다. '여장'을 웃음거리로 소비하는 것은, 트렌스젠더를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학교는 하나부터 열까지 '성별 이분법적'이고 '이성애 중심적'이었다. 성소수자가 학교 안에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런 문화 속에 살면서 나는 매번 나의 존재가 지워지는 느낌을 받아 힘들어했다. 나에게 학교는 단순히 '배움을 얻는 곳'이 아닌, 내가 경험하고 있는 가장 큰 사회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일상적인 차별이 매우 폭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나의 존재를 알림으로써 이러한 문화를 바꾸고, 안전한 공간으로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커밍아웃을 결심하게 되었다.


커밍아웃 이후 학교가 달라졌다


2학년 2학기였던 2017년 10월에 전교생 앞에서 커밍아웃을 했다. 발표 자료를 준비해 젠더 퀴어가 무엇인지, 어떻게 정체화를 하게 되었고, 왜 커밍아웃을 결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커밍아웃 이후, 학교는 정말 많이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학교 안에 성소수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성애 중심적인 문화, 성별 이분법적인 문화를 정면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게이냐?' 같은 혐오적인 말이 거의 사라졌고, '남자친구', '여자친구'라는 말 대신 '애인'이라는 말을 지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남·여로 나뉘어 있던 것들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설문조사를 할 때 최대한 성별 구분을 뺀다거나, 역할을 남·여로 나누는 것도 조심하게 되었다.


쉽게 커밍아웃을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누가 아웃팅(성별 정체성에 대해 본인의 동의 없이 밝혀지는 행위) 당해 따돌림 당하다가 결국 자퇴했다더라' 하는 말을 들으면 겁이 나기도 했다. 학교 구성원 모두가 나를 이해하고 존중할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도 없었고, 괴롭힘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해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커밍아웃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변 환경이 잘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내가 괴롭힘당하더라도 나를 지지해 줄 동료들이 있었다. 친한 친구들에게 커밍아웃했을 때, 모두가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주었다. 커밍아웃하기 전 만들어진 성소수자 모임도 있었다. 그리고 학교 안에는 인권에 대해 공부하고 목소리 내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학교에 비해 인권친화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커밍아웃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는 전에 비해 더욱 안전한 학교가 되었지만, 나는 그 과정에서 폭력을 경험했다. 커밍아웃 이후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나에게는 성소수자라는 정체성 말고도 다양한 정체성이 존재했으나 나를 '성소수자로서만' 바라보는 것이었다.


수업시간에,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 등 성소수자에 관한 이야기가 잠깐이라도 나오면 모두가 나를 쳐다봤다. 무언가 차별적인 상황이 있으면 나를 찾아오는 횟수가 많았고, 그 상황을 내가 해결해 주기를 기대했다. 나의 정체성 중 하나를 공개한 것이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하겠다는 선언이 된 듯했다. 내가 뭔가 실수하거나 잘못하면 그것을 성소수자 전체의 문제로 받아들일까 봐 늘 조심하게 되었다.


학교 대나무숲에 '동성애자가 옆에 있으면 자신을 좋아할 것 같아 꺼려진다' 같은 글이 올라오는 등 익명이 보장된 장소에서는 여전히 성소수자를 혐오했다. 여전히 행사에서 남·여로 짝을 짓고, '여장'을 웃음거리로 소비하는 문화 또한 바뀌지 않았다.


성소수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수용하는 학교이지만, 여전히 나를 포함한 성소수자들은 각종 차별과 혐오에 노출되어 있다. 그 이유는, 비성소수자가 성소수자를 '인정해 줄 수 있는', '수용해 줄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인정해 주지 않을 권력도, 자신이 원하는 만큼만 이해해 줄 권력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모든 학생에겐 안전하게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


반면 성소수자에게는 위험을 감수하며 자신을 드러내고 부딪치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숨기는 방법밖에는 없다. 많은 성소수자 학생이 학교를 떠나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4년에 발표한 성적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실태조사에 따르면, 차별 및 괴롭힘을 당했던 성소수자 중 11.8%가 결석, 6.5%가 진학포기, 4.3% 자퇴, 3.2%가 전학을 경험하였다.


성소수자 학생들 또한 비성소수자 학생들과 다를 바 없이 교육받을 권리가 있으며, 차별받지 않고 안전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받아야 한다. 성소수자 학생들이 안전하게 학교에 다니기 위해서는 성중립 화장실 설치, 교복 선택권 보장, 학교 내 인권센터 설치 등 차별과 혐오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적극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이제는 문화적으로 지속되는 차별과 혐오, 폭력을 끊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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