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개악 시도 규탄한다
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의 전면 개정안을 경기도의회에 제출했다. 명칭부터 ‘학생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이하 학생권리책임조례)’로 바꾸는 등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례라는 학생인권조례의 입법 취지를 근본부터 부정하는 방향의 개정이다. 최초로 제정된 학생인권조례인 경기도 조례를 졸속으로 후퇴시키려는 경기도교육청의 이러한 행보는 더욱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학생인권 후퇴만 가득한 개정안
‘학생인권’의 핵심은, 학생은 인간이며 조건 없이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 나이나 학생이라는 위치를 이유로 부당하게 인권을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권리책임조례안은 명칭에서부터 틀린 논리를 담고 있다. 제4조의2 ‘학생 및 보호자의 책임’에서는 ‘학생은 학생의 다양한 권리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탐구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라고 하며, 마치 권리가 책임과 의무의 대가인 양 호도하고 있다. 인권은 모든 사람이 서로를 동등하게 존중해야 한다는 약속이지, ‘권리를 보장받으려면 의무부터 다하라’라는 식으로 거래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정작 학교에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은폐한다. 이 밖에도 ‘학생 및 보호자의 책임’ 조항에는 임의적으로 해석되어 학생인권을 위축시킬 여지가 있는 문제적 내용들이 많다. 가령 제4항의 “학습자의 윤리의식”이나 “학내의 질서를 문란하게 하여서는 안 된다” 등의 표현은 학생의 인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과도하게 해석, 악용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학생권리책임조례안은 기존 학생인권조례에 비해 각종 헌법적·보편적 인권들을 후퇴시키려 하고 있다. 제5조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서는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은근슬쩍 예시된 차별 사유들을 삭제하였다. 이는 무엇이 사회적 문제로서 소수자 차별인지를 눈가림할 것이고, 어떤 것이 부당한 차별인지를 더욱 판단하기 어렵게 한다. 이러한 개악은 성소수자 차별·혐오를 내세워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해 온 일부 보수세력에 동조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학생인권조례 제25조 상벌점제 금지 조항을 삭제한 점 또한 짚지 않을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가 상벌점제를 금지한 이유는 상점과 벌점이라는 숫자의 논리로 학생들에게 상과 벌을 부과하는 방식이 반인권적이고 반교육적이기 때문이었다. 상벌점제는 학교들이 체벌 금지 이후 강압적 학칙을 그대로 유지하며 체벌의 대체재로 즐겨 선택하는 제도이기도 했다. 또한 제25조에 교육부의 생활지도 고시를 반영한 조항을 추가했는데, 고시에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상담함에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은 학생인권조례의 취지에 어긋난다. 생활지도라는 명목으로 상벌점제, 소지품 압수 등의 인권 침해가 일어나는 것을 방임하겠다는 것으로까지 읽힌다.
학생권리책임조례안은 ‘학생은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라는 등 여러 차례 학습권과 교육활동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활동이나 학습을 수업 시간에 교사의 지시와 통제에 따르는 것으로 매우 좁게 이해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학교에 있는 여러 학생들은 서로 속도와 사고방식, 교육 참여 정도와 방식이 다르며, 이를 서로 맞춰 가는 것 자체가 교육과 학습의 과정인 것이다. 이와 같은 포괄적 고려 없이 단순히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지켜라’라고 강조하는 것은, 학교와 교사가 정한 수업시간과 질서를 따르라는 말의 포장일 뿐이다.
그 외에도 야간자율학습·보충수업 등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학생 의견을 존중한다’라고 표현을 약화시키는 등 세세한 후퇴 지점들은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학생인권 구제 절차를 축소, 왜곡시키는 것은 더욱 심각하다. 학생권리책임조례안은 학생인권 침해 사안에 대해 조사하고 구제 조치를 하던 학생인권옹호관을 ‘학생생활인성담당관’으로 변경하고, 직무 수행을 지원하던 사무기구와 교육지원청별 학생인권상담실도 삭제했다. 학생인권침해 구제를 위한 인력과 기구를 없애고 ‘학생생활인성담당관’이라는 이름만 봐선 구제 업무를 하는지 알기도 어려운 해괴한 직위로 대신하겠단 것은 학생인권 구제 절차를 무력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교육청의 책무부터 다하라
2022년 11월, 경기도교육청 측은 시민사회단체들과 면담에서 학생인권조례 후퇴는 없을 거라는 답을 내놓았던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학생권리책임조례안은 학생인권의 내용과 관련 제도를 후퇴시키는 것으로, 경기도교육청과 임태희 교육감의 의중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경기도교육청은 ‘학생 권리와 책임의 균형’, ‘학생인권과 교권의 균형’ 등을 내세운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교사들의 노동권 문제 및 고충 등은 학생인권 탓이 아니다.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교사를 지원해야 할 교육청 자신의 책무를 고민하기보다는 학생인권과 학생인권조례를 희생양 삼아 공격하는 모습은 실로 무책임하다.
본래 인권은 ‘하고 싶은 것을 맘대로 할 수 있는 권리’나 ‘남에게 상처를 줄 권리’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만약 학생인권조례를 그렇게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면 오해를 바로잡고 제대로 알리는 것 자체가 교육청의 중요한 책임이다. 학생인권이 과해서 교권이 실추됐다는 경기도교육청이야말로 인권을 틀리게 이해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학생을 인간으로 대우하고 인권을 존중하라는 것은 과할 수도, 불균형할 수도 없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고 학생권리책임조례로 대체된다면 학생인권 침해를 조장할 우려가 크며, 학생인권 침해가 일어나도 적절한 구제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을 위험도 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이 학교 규칙 등에 품는 불만과 교사들이 감당해야 하는 갈등의 소지 또한 늘어날 것이다. 이는 학생과 교사 어느 쪽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육부나 경기도교육청 등이 애꿎은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하고, 교사의 힘듦에 대해 학생인권에서 원인을 찾는 것은 그것이 ‘가장 값싼 방식’이기 때문이다. 인력 충원, 교육환경 및 교육과정의 개선, 학생 지원 프로그램 개발 등은 인적·재정적 부담이 드는 더딘 길이다. 반면에 학생인권을 위축시키면서 교사 개개인에게 처벌과 통제의 권력을 쥐어주는 방식은 간편하고 즉효적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그건 교사들에게 지도의 부담과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자 교육청의 역할을 줄이고 학교 현장에서 인권 침해와 분쟁의 위험을 키우는 일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좀 더 값싸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수자 인권 보장을 후퇴시키는 것’이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경기도교육청이 제출한 학생권리책임조례안에 강력 반대하며, 학생인권 보장 책무를 방기하려는 경기도교육청을 규탄한다.
2023년 9월 27일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
[성명] 경기도교육청의 학생인권조례 개악 시도 규탄한다
경기도교육청이 학생인권조례의 전면 개정안을 경기도의회에 제출했다. 명칭부터 ‘학생의 권리와 책임에 관한 조례(이하 학생권리책임조례)’로 바꾸는 등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조례라는 학생인권조례의 입법 취지를 근본부터 부정하는 방향의 개정이다. 최초로 제정된 학생인권조례인 경기도 조례를 졸속으로 후퇴시키려는 경기도교육청의 이러한 행보는 더욱 우려스러울 수밖에 없다.
학생인권 후퇴만 가득한 개정안
‘학생인권’의 핵심은, 학생은 인간이며 조건 없이 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 나이나 학생이라는 위치를 이유로 부당하게 인권을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생권리책임조례안은 명칭에서부터 틀린 논리를 담고 있다. 제4조의2 ‘학생 및 보호자의 책임’에서는 ‘학생은 학생의 다양한 권리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탐구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라고 하며, 마치 권리가 책임과 의무의 대가인 양 호도하고 있다. 인권은 모든 사람이 서로를 동등하게 존중해야 한다는 약속이지, ‘권리를 보장받으려면 의무부터 다하라’라는 식으로 거래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정작 학교에 학생의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할 의무가 있다는 것을 은폐한다. 이 밖에도 ‘학생 및 보호자의 책임’ 조항에는 임의적으로 해석되어 학생인권을 위축시킬 여지가 있는 문제적 내용들이 많다. 가령 제4항의 “학습자의 윤리의식”이나 “학내의 질서를 문란하게 하여서는 안 된다” 등의 표현은 학생의 인권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과도하게 해석, 악용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학생권리책임조례안은 기존 학생인권조례에 비해 각종 헌법적·보편적 인권들을 후퇴시키려 하고 있다. 제5조 ‘차별받지 않을 권리’에서는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은근슬쩍 예시된 차별 사유들을 삭제하였다. 이는 무엇이 사회적 문제로서 소수자 차별인지를 눈가림할 것이고, 어떤 것이 부당한 차별인지를 더욱 판단하기 어렵게 한다. 이러한 개악은 성소수자 차별·혐오를 내세워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해 온 일부 보수세력에 동조한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
학생인권조례 제25조 상벌점제 금지 조항을 삭제한 점 또한 짚지 않을 수 없다. 학생인권조례가 상벌점제를 금지한 이유는 상점과 벌점이라는 숫자의 논리로 학생들에게 상과 벌을 부과하는 방식이 반인권적이고 반교육적이기 때문이었다. 상벌점제는 학교들이 체벌 금지 이후 강압적 학칙을 그대로 유지하며 체벌의 대체재로 즐겨 선택하는 제도이기도 했다. 또한 제25조에 교육부의 생활지도 고시를 반영한 조항을 추가했는데, 고시에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내용이 상담함에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은 학생인권조례의 취지에 어긋난다. 생활지도라는 명목으로 상벌점제, 소지품 압수 등의 인권 침해가 일어나는 것을 방임하겠다는 것으로까지 읽힌다.
학생권리책임조례안은 ‘학생은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라는 등 여러 차례 학습권과 교육활동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활동이나 학습을 수업 시간에 교사의 지시와 통제에 따르는 것으로 매우 좁게 이해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학교에 있는 여러 학생들은 서로 속도와 사고방식, 교육 참여 정도와 방식이 다르며, 이를 서로 맞춰 가는 것 자체가 교육과 학습의 과정인 것이다. 이와 같은 포괄적 고려 없이 단순히 ‘다른 학생의 학습권을 지켜라’라고 강조하는 것은, 학교와 교사가 정한 수업시간과 질서를 따르라는 말의 포장일 뿐이다.
그 외에도 야간자율학습·보충수업 등을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학생 의견을 존중한다’라고 표현을 약화시키는 등 세세한 후퇴 지점들은 다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학생인권 구제 절차를 축소, 왜곡시키는 것은 더욱 심각하다. 학생권리책임조례안은 학생인권 침해 사안에 대해 조사하고 구제 조치를 하던 학생인권옹호관을 ‘학생생활인성담당관’으로 변경하고, 직무 수행을 지원하던 사무기구와 교육지원청별 학생인권상담실도 삭제했다. 학생인권침해 구제를 위한 인력과 기구를 없애고 ‘학생생활인성담당관’이라는 이름만 봐선 구제 업무를 하는지 알기도 어려운 해괴한 직위로 대신하겠단 것은 학생인권 구제 절차를 무력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교육청의 책무부터 다하라
2022년 11월, 경기도교육청 측은 시민사회단체들과 면담에서 학생인권조례 후퇴는 없을 거라는 답을 내놓았던 바 있다. 그러나 이번에 나온 학생권리책임조례안은 학생인권의 내용과 관련 제도를 후퇴시키는 것으로, 경기도교육청과 임태희 교육감의 의중을 명백히 드러내고 있다. 그러면서 경기도교육청은 ‘학생 권리와 책임의 균형’, ‘학생인권과 교권의 균형’ 등을 내세운다. 그러나 최근 불거진 교사들의 노동권 문제 및 고충 등은 학생인권 탓이 아니다. 교육환경을 개선하고 교사를 지원해야 할 교육청 자신의 책무를 고민하기보다는 학생인권과 학생인권조례를 희생양 삼아 공격하는 모습은 실로 무책임하다.
본래 인권은 ‘하고 싶은 것을 맘대로 할 수 있는 권리’나 ‘남에게 상처를 줄 권리’였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만약 학생인권조례를 그렇게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면 오해를 바로잡고 제대로 알리는 것 자체가 교육청의 중요한 책임이다. 학생인권이 과해서 교권이 실추됐다는 경기도교육청이야말로 인권을 틀리게 이해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학생을 인간으로 대우하고 인권을 존중하라는 것은 과할 수도, 불균형할 수도 없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되고 학생권리책임조례로 대체된다면 학생인권 침해를 조장할 우려가 크며, 학생인권 침해가 일어나도 적절한 구제 절차가 이루어지지 않을 위험도 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이 학교 규칙 등에 품는 불만과 교사들이 감당해야 하는 갈등의 소지 또한 늘어날 것이다. 이는 학생과 교사 어느 쪽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교육부나 경기도교육청 등이 애꿎은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하고, 교사의 힘듦에 대해 학생인권에서 원인을 찾는 것은 그것이 ‘가장 값싼 방식’이기 때문이다. 인력 충원, 교육환경 및 교육과정의 개선, 학생 지원 프로그램 개발 등은 인적·재정적 부담이 드는 더딘 길이다. 반면에 학생인권을 위축시키면서 교사 개개인에게 처벌과 통제의 권력을 쥐어주는 방식은 간편하고 즉효적으로도 보인다. 그러나 바꿔 말하면 그건 교사들에게 지도의 부담과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자 교육청의 역할을 줄이고 학교 현장에서 인권 침해와 분쟁의 위험을 키우는 일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좀 더 값싸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수자 인권 보장을 후퇴시키는 것’이 허용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경기도교육청이 제출한 학생권리책임조례안에 강력 반대하며, 학생인권 보장 책무를 방기하려는 경기도교육청을 규탄한다.
2023년 9월 27일
학생인권법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전국행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