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논평927기후정의행진 청소년 참가단 선언문(2025)

2025-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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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7기후정의행진 청소년 참가단 선언문(2025)

2025년 현재,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청소년-시민들에게 기후위기는 실체적 위협으로 다가왔다. 청소년들은 기후위기에 맞서 ‘정부의 미흡한 대응이 기후위기를 가속화하고 청소년들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했다’며 헌법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하는 등 곳곳에서 기후정의를 위한 실천을 이어왔다. 

그러나 청소년들은 여전히 기후위기 문제에서 보호받아야 할 미래 세대,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만 여겨져 왔다. 하지만 12·3 내란에 맞서 광장에 나와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켜낸 청소년들의 모습에서 보듯, 청소년은 현재적 당사자로서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 행동하는 주체이다. 그렇기에 927기후정의행진에 함께 참여하는 우리 청소년들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 기후위기 시대에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는 더욱더 확대되어야 한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올해 전남 함평과 무안, 경기 가평 등지에서는 시간당 100mm가 넘는 ‘극한 호우’가 13차례나 관측된 한편, 강릉은 여름철 전례없는 가뭄에 시달려 일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제는 기후변화를 ‘예방’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같이 닥쳐오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에도 빠듯하다. 특히 청소년은 세대 간의 기후불평등으로 인해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기후위기의 피해자이다. 2020년에 태어난 청소년들은 1960년에 태어난 조부모 세대보다 홍수⋅가뭄⋅산불 등 극한 기후로 고통받는 삶을 살 가능성이 최소 두 배 이상 높다. 기후위기의 현상이 더 이상 ‘미래’의 일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 발생하고 있는다는 점에서, 당사자인 청소년은 기후대응을 위한 논의의 장에 포함되어야 하며, 이는 가장 기후위기에 취약한 청소년들에게 자결권을 보장해주는 것과 같다. 

그러나 현재 ‘청소년’이라는 정치적 주체는 기후담론과 관련된 결정에 참여할 길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온전한 정치적 권리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어른’들의 주도 하에 청소년에게 발언의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는 청소년이 ‘요구하는 내용’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그저  대화의 장에 초대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러한 모습은 기후위기의 당사자인 청소년으로 하여금 자신들의 목소리도 듣지 않는 ‘어른’들에 의해 기후위기가 해결될 리 만무하다는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청소년이 기후위기에 대해 걱정하고 일상적인 실천을 하는 정도의 관심은 대견해 하지만, 정치적 해결과 대책을 요구하며 기후정의를 외치는 것에 대해서는 비난받는다. 이는 청소년의 정치적 참여를 불온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며, ‘어른’들의 입맛에 맞는 ‘기후 위기에 적당한 수준의 관심’만을 원하는 것이다. 청소년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할 때 비로소 기후정의는 실현된다. 더 공부하고 나중에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기후위기에 대해서 함께 논의할 수 있어야 한다. 기후위기 앞에서는 청소년, 비청소년 할 것 없이 모두가 '위기에 놓인' 인류일 뿐이다. 누가 말하던 귀기울이지 않으면 우리는 밀려오는 재해 앞에서 멸망을 피할 수 없다. 


🔸 청소년의 생활시간 보장과 생활 양식의 자유로 기후정의 실현하자

학교 안에서부터 단일화된 생활양식에서 탈피해야한다. 현재 대부분의 학교에서 그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는 교복은 각자 다른 몸이 느끼는 더위와 추위를 무시하고 획일적 복장을 강요하는 인권침해이다. 또한 저렴하게 지어져 열 효율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체온 조절에 취약할 수밖에 없고, 급식을 개개인의 건강 상태나 채식 등의 신념에 따라 결정할 수 없다. 하지만 학생들은 피교육자라는 정체성 앞에서 무력해짐과 동시에 학교의 규칙과 시스템을 바꾸기 어려워진다. 이렇게 ‘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기후위기 시대에 더욱 취약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를 바꿔내자. 학교는 학생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공간으로서 그들이 직접 이곳을 어떻게 사용할지 논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기관인 학교에서부터 남의 결정에 따라야 하는 삶을 강요당한다면 그들은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법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고 보호할 수 있는 방법도 배울 수 없다. 

지금 청소년들에게는 과거와 달리 다방면의 생활양식을 가지고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필요하다. 끊임없이 능력계발을 요구받는 대부분의 청소년에게 기후행동을 할 시간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은 또 다른 착취에 불과하다. 대신 그들의 학습 시간을 줄여야 한다. 많은 자원이 소모되는 장시간의 학습은 기후위기 시대에도 적합하지 않고, 청소년이 학업 활동 외에 본인이 원하는 활동을 선택할 기회가 줄어들어 다양한 배움을 얻는 것을 저해한다. 또한 학교 밖에서도 청소년들이 양육자를 비롯한 타인의 통제 아래서 살아가지 않고 스스로 삶의 방식을 고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청소년들이 눈치보지 않고 떳떳하게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만 그들이 진정으로 기후정의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청소년을 이윤/경제성장을 위한 자원으로 여기는 입시경쟁교육을 멈춰라

성장만을 외치는 사회는 청소년에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미래래를 강요한다. 경쟁의 승리가 안정적인 삶을 영위해준다는 허구의 약속 뒤에는 청소년들을 그저 회사의 이윤과 국가의 경제성장을 위한 자원으로만 여기는 사실이 숨어 있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라는 말은 그러한 사실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청소년은 이런 사회 안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할 시간없이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만을 요구받는다. 단순히 입시경쟁에서 얼마나 좋은 성과를 거두는 지를 통해 한 사람의 가치가 정해지고 있다. 그렇게 청소년은 열심히 공부하여 ‘높은 가치를 가지는 자원’이 되도록 교육받고 있다. 

그러나 성장은 더 많은 생산을 위해 탄소 배출을 증가하고, 지구의 생태적 한계를 무시하며 자원을 계속하여 채취하고 소비한다. 또한 부유한 사람과 기업일수록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하며, 기후위기에 막중한 책임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현실 안에서 지금의 교육은 청소년을 기후위기를 심화시키는 사람이 되도록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일상화된 입시경쟁은 기후위기 해결마저 생기부에 넣어 대학입시에 활용할 소재로 전락시킨다. 학교에서는 ‘에코’와 ‘그린’이라는 미명 하에 그린워싱에 가까운 교육을 제공하고, 입시경쟁에서 ‘승리한’ 부유층이 기후위기에 더욱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부정의를 말하지 않는다. 또한 청소년이 기후위기에 관심을 가지려 해도 지금의 교육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입시경쟁이 낳은 과중한 학습 시간은 청소년이 기후위기에 대해 알아보고 대응할 시간마저 빼앗고 있다. 게다가 입시경쟁교육을 위해 불필요한 자원이 너무나 낭비되고 있다. 문제집과 시험지의 출력과 운송은 탄소배출을 늘리고 기후위기를 악화시킨다. 

더 이상 청소년을 성장을 위한 자원으로 치부하지 말아야 한다. 입시경쟁교육을 당장 멈추고 학습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 기후위기 시대, 청소년의 정치적 권리 확대하라!

🔸 청소년의 생활시간 보장과 생활 양식의 자유로 기후정의 실현하자!

🔸 청소년을 이윤/경제성장을 위한 자원으로 여기는 입시경쟁교육을 멈춰라!


2025. 0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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